청춘들아, 살아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란다

성장소설 ‘동정 없는 세상’의 ‘동정’은 ‘남의 어려운 처지를 자기 일처럼 알아주거나 가없게 여기는 마음’보다는 ‘한 번도 성관계를 갖지 않은 순결, 또는 그런 사람’의 ‘동정’에 가깝다. 소설의 주인공으로 이제 갓 수학능력시험을 치른 고3 수험생 준호가 진실로 원하는 세상이다.

준호는 ‘숙경 씨’라 부르는 엄마, ‘명호 씨’라 부르는 삼촌과 산다. 아빠는 없다. 명호 씨는 명문대 법대를 졸업했으나 고시에 실패해 헤어 디자이너인 누나에게 얹혀사는 백수다. 그의 심볼은 추리닝과 슬리퍼, 골방의 책들이다. 준호는 순한 담배를 피는 명호 씨와 달리 ‘천 원 한 장으로 깔끔하게 살 수 있는 사나이의 담배 88라이트’를 선호한다.


“한번 하자”, “싫어”라는 준호, 서영의 대사로 시작되는 만큼 준호의 24시간 관심사는 ‘동정을 떼는 일’이다. 지난해 단짝 경식이가 동정을 뗀 후 1 년 넘게 준호와 영석이를 애 취급했다. 그런데 영석이 마저 미아리에 가서 동정을 뗐다는 자랑을 듣고는 더더욱 안달이 났다. 틈만 나면 모범생 여자 친구 서영이를 졸라 보는데 철이 다 든 서영이는 까딱도 하지 않는다.

준호는 누구누구가 몇 살에 동정을 뗐는지 빠삭하다. 존 에프 케네디가 동정을 뗀 것은 17세 때였다. 알렉상드르 뒤마도, 스탕달도 나이 17세에 여자를 알았다. 13세에 결혼한 간디도, 십대 초반의 이춘풍도, 이팔청춘 춘향이도, 하물며 나이 스물에 준호를 낳은 숙경 씨도 모두 십대 때 동정을 뗐던 것이다. 준호가 스무 살이 되기 전에 반드시 여자를 알고 동정을 떼고 어른이 돼야 하는 이유다.

주인공이 동정에 관심이 많다 뿐이지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일절 건전하다. 엄마와 삼촌을 숙경 씨, 명호 씨로 부를 때 벌써 느낌이 오는 유쾌와 발랄함으로 수능 끝낸 청소년들의 일상을 훑어가는 소설이라 펴자마자 끝에 이르고 만다.


이성적 어른 역할의 명호 씨는 만화방을 열었고, 공부와 담 쌓았던 준호가 대학을 위해 머리를 싸맸다. 그러자 서영이 마침내 ‘사랑하는 남자 친구’의 소원을 들어준다. 작가는 이 대목을 그림처럼 아름답게 묘사했다.

그래, 청춘들아! 음란비디오는 모두 쌩 거짓말이란다. 실제의 사랑은 “아아, 살아 있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이구나”라는 준호의 감탄처럼 그렇게 아름다운 것이란다. 준호가 원하는 대학에 가고 서영이와의 아름다운 사랑도 끝까지 가기를 빈다.

◇동정 없는 세상=박현욱 성장소설. 문학동네 펴냄. 186 쪽. 1만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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