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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반식민지' 사회" 발언 김기종, 과거 논문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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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3.09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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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순한 의도의 미국문화 직간접으로 받아들여"…'반미·친북·반자본주의'

(서울=뉴스1) 박현우 기자 =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를 흉기로 공격한 김기종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대표가 9일 오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휠체어를 탄 채 차량에 탑승해 있다. 2015.3.9/뉴스1 © News1 한재호 기자
마크 리퍼트 주한미국대사를 흉기로 공격한 김기종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대표가 9일 오후 서울 종로경찰서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 휠체어를 탄 채 차량에 탑승해 있다. 2015.3.9/뉴스1 © News1 한재호 기자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는 의심을 받는 김기종(55) 우리마당 독도지킴이 대표가 경찰조사에서 "우리나라는 반식민지 사회"라고 발언한 가운데 과거 그의 논문에서도 이런 사상을 엿볼 수 있는 표현이 수차례 등장하는 것으로 9일 확인됐다.

김씨는 지난 1995년 12월 '남한 사회 통일문화운동의 과제'라는 제목의 숭실대 통일정책대학원 석사학위 논문을 제출했다.

김씨는 논문 서두에 "지식인이 중심이 돼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 실천한 여러 노력들을 '문화운동' 관점에서 민족 동질성 확보라는 이름으로 재조명해 보겠다"고 취지를 밝혔다.

논문의 큰 방향도 역시 '유럽공동체(EU)가 문화교류를 통해 사회문화적 통합을 이뤄냈는데 단일민족으로 오랜 문화적 전통을 같이한 남북의 통일조건이 훨씬 높다'는 내용이다.

통일의 구체적인 방법으로 김씨는 "동질성을 공감할 수 있는 민속, 국악, 전통사상, 통과의례 등 쉽게 어울릴 수 있는 것부터 실천하는 프로그램 개발과 나아가 오늘의 민족 현실이 살아 있는 생활문화로써 공동의 '전통문화'를 바탕으로한 '통일문화의 창출 노력"을 들기도 했다.

70쪽 분량의 논문의 전체적인 방향은 당초 취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자세히 들여다 보니 김씨의 '반미', '친북', '반자본주의' 등 성향이 뚜렷이 드러났다.

김씨는 "오늘날 대다수의 자본주의 사회가 무차별한 경쟁의 결과로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지만 전인류적 자원낭비와 환경오염, 부익부 빈익빈의 심화 등 복잡하고 폭발성이 강한 여러 문제에 직면해 있다"며 자본주의를 깎아내렸다.

그러면서 "자본주의 또는 사회주의는 보다 평등하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자 인류가 창출해 낸 체제로써 앞으로도 변화 발전함을 주지해야 한다"며 남한과 북한의 체제를 동등한 입장에서 평가하는 듯한 모습을 보였다.


9일 오후 서울 광화문빌딩 앞에서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주최로 열린 '한미동맹 강화로 종북세력 척결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김기종씨의 사진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5.3.9/뉴스1 © News1 한재호 기자
9일 오후 서울 광화문빌딩 앞에서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주최로 열린 '한미동맹 강화로 종북세력 척결대회'에서 참석자들이 김기종씨의 사진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2015.3.9/뉴스1 © News1 한재호 기자
나아가 "북한의 경우 사회주의적 문화 속에서 태어나고 교육 받았기 때문에 사회주의적 경제원리와 행위원칙에 긍정적인 가치를 갖고 있을 뿐이라고 의연하게 해석해 볼 여유가 필요하다"며 관대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그는 "(1980년대 후반) 통일에 대한 청년학생들을 비롯한 일반 시민들의 열기와 관심이 장애에 부딪혔다"며 "정부 당국자나 경제인의 방북은 묵인하면서 순수한 통일 열정의 대학생이나 예술인, 종교인의 방북은 안된다는 건 논리의 모순"이라는 주장도 했다.

또 분단을 극복하기 위한 수많은 실천적 성과를 쌓은 통일운동단체의 활동으로 '한반도(조선) 평화와 통일을 위한 범민족대회(범민족대회)' 등을 꼽기도 했는데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홈페이지 등에 따르면 범민족대회는 1990년대 북한, 남한 등에 결성된 범민련의 근간이 되는 활동이다.

범민련은 김씨의 논문 발표 후 1년여가 지난 1997년 대법원 판결로 이적단체로 규정된 단체다.

반면 미국에 대해서는 '외세', '불순한 의도의 외래문화' 등 표현으로 낮게 평가했다.

그는 '분단의 배후조정자인 외세와 그에 천착하는 일부 반민족적 행위가 끊이지 않음으로써 가시화되는 분단 고착화'를 통일운동의 배경으로 꼽는가 하면 "미·소로부터 불순한 의도의 외래문화를 직간접으로 받아들인 탓에 서로 다른 사회문화접변을 겪었음을 확인했다"고도 썼다.

20년 전에 발표된 논문이기에 현재 시점과 단순비교하는 게 이치에 맞지 않을 수 있다.

다만 북한·통일분야를 연구하는 A교수는 "1994년 김일성이 사망한 뒤 북한이 핵을 개발하면서 1995~1997년은 북한이 고립됐고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 시대'였다"고 회상했다.

A교수는 "1995년 2월에 범민련 남측본부가 출범했는데 범민련이 연방제 통일, 주한미군 철수, 국보법 폐지 등을 강하게 주장하다 대법원으로부터 이적단체로 규정됐다"며 "북한이 어려운 시기에 친북·종북주의자들은 북한에 지원을 더 해줘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김씨의 논문에 대해 학교 측은 "당시 관계자가 공동체 문화를 중심으로 남북교류를 모색했던 재기발랄한 학생이 있었던 것은 기억하지만 20년 전이라 논문 내용에 대해서는 자세히 기억하지 못한다고 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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