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빈 회장의 '거화취실' 와인의 매력

부르고뉴 클로 드 부조 크랑크뤼 포도밭(배경)과 프리에르 로크 클로 드 부조 와인/사진=고재윤 교수, 그래픽=유정수 디자이너

프랑스의 대문호 빅토르 위고(Victor-Marie Hugo)는 신은 물을 만들었지만 인간은 와인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기업인은 자신의 꿈을 실현하고자 기업을 세우고 경영하면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의 꿈과 비전은 롯데제과, 롯데칠성음료(롯데주류), 롯데 푸드, 롯데호텔 등 롯데의 식품계열사를 통해 성공적으로 실현되고 있다.


신 회장은 첫 번째 작품인 '클라우드'로 맥주 시장에서 돌풍을 일으켰고, 와인 불모지인 한국에 와인사업 육성이라는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하며 경북 영천에서 와인을 생산해 롯데의 새로운 브랜드 파워와 이미지를 선보이려 하고 있다.

신 회장이 즐겨 마신다고 알려진 호주 와인 '옐로우 테일(Yellow tail)'은 롯데 주류가 수입해 2014년 국내 론칭 10주년을 맞이했는데 미국에서 일어난 엘로우 테일의 신드롬이 한국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옐로우 테일'은 1969년 이태리 출신의 필리포 카셀라(Filippo Casella)가 설립한 와이너리로 현재 2세인 존 카셀라(John Casella)가 운영하고 있으며, 2005년에 호주 수출 명예의 전당에 가입했고 2009년과 2010년 연속으로 호주 최고의 와인 가문으로 선정되는 기염을 토했다.


아버지 신격호 회장은 '거화취실(去華就實: 겉으로 드러나는 화려함을 배제하고 내실을 지향한다)'을 생활신조로 삼았는데, 신동빈 회장이 회장으로 취임할 때 취임식 없이 출근한 모습이나, 옐로우 테일을 즐겨 마시는 모습에서도 아버지의 '거화취실'의 정신을 찾아 볼 수 있다.

그리고 회장으로 승진한 후 처음 참석한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만찬에서 내놓은 와인도 겉모습의 화려함보다는 내실을 택해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전경련 회장단 만찬을 맡은 신 회장은 롯데호텔의 미쉐린 가이드 2스타 레스토랑인 ‘피에르 가니에르’에서 평소 자신이 좋아하는 ‘동 페리뇽 2002(Dom Perignon 2002)’, ‘조셉 드루앵 코르동 샤르마뉴 2007(Joseph Drouhin Corton-Charlemagne 2007)’, ‘조셉 드루앵 포마르 2007(Joseph Drouhin Pommard 2007)’ 등 가격대비 품질과 가치가 우수한 와인을 선택했다.

부르고뉴 와인 마니아인 신 회장은 최근 도메인 로버트 아르누(Domaine Robert Arnoux)의 로마네 생비방(Romanee-St-Vivant), 도메인 프리에르 로크(Prieure Roch)의 클로 드 베제(Clos de Beze), 클로 드 부조(Clos de Vougeot) 와인을 즐겨 마시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도메인 와인은 한국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최고 와인 평론가인 로버트 파커가 93점 이상을 준 부르고뉴의 유명한 와인으로 '거화취실'의 롯데그룹 경영철학에 잘 부합되는 와인이다. 신 회장은 부르고뉴 와인 한잔을 마실 때마다 그 속에 자신의 꿈이 담겨져 있다고 여기지 않을까 생각된다.

이 와인들은 매우 단단한 구조감을 갖고 있으면서 장기숙성을 해야 하는 특등급(Grand Cru)와인으로 단단한 경영구조를 통해 기업이 영원히 존속 발전한다는 롯데그룹의 경영철학과 일맥상통한다.

도메인 로버트 아르누는 5대째 내려오는 전통 와인 생산자로 프티 로마네 꽁티(Petit DRC)라고 불리는데, 한때 쇠락해 가던 아르누 집안은 1990년 로베르 아르누(Robert Arnoux)가 사망하고 사위인 파스칼 라쇼(Pascal Lachaux)가 물려받은 후 본격적으로 훌륭한 포도밭들의 개성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1990년대에 '프티 로마네꽁티'로 다시 부각되기 시작했다.

이 와인은 부르고뉴 마니아들에게도 이율배반적이면서 향과 맛의 집중도가 뛰어난 가격대비 품질이 매우 우수한 와인으로 정평이 나 있으며, 마음을 줄듯 안 줄듯 하는 도도한 ‘금발미녀’와 같은 와인으로 불리고 있다.

도메인 프리에르 로크는 로마네꽁티의 공동 오너였던 헨리 르로이(Henry Leroy)의 외손자이자 라루 비즈 르로이(Lalou Bize Leroy)여사의 조카인 헨리 프리에르 로크(Henry Prieure Roch)가 1988년 뉘생 조르주(Nuits St Georges) 외곽지역에서 출발했다. 중세 수도사들의 고문서로부터 내려져오는 전통적인 자연주의 유기농법을 적용, 밝고 화려한 부르고뉴 와인은 아니지만 소박하면서도 도도하고 우아한 품격이 느껴지는 와인을 생산해 한번 이 와인의 매력에 빠지면 헤어날 수 없도록 만들고 있다.

2013년 6월 박근혜 대통령이 중국에 방문했을 때 공식 만찬주로 사용된 중국의 장유와인은 프랑스 보르도 와인에 견줄 수 있을 만한 와인인데, 롯데그룹에서 만드는 영천와인도 로버트 아르누(Domaine Robert Arnoux)의 로마네 생비방(Romanee-St-Vivant), 도메인 프리에르 로크(Prieure Roch)의 클로 드 부조(Clos de Vougeot) 만큼 품질 좋은 와인으로 양조되어 호주의 옐로우 테일 와인처럼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캐리커처=임종철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