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책통]노년 작가들의 로망 '연애소설'

70대 중반인 작가 김주영은 올해 초 한 매체와의 신년 대담에서 “앞으로 계획이 연애를 할 생각이다. 거기서 얻은 경험이나 영감을 가지고 연애 소설을 써보고 싶다"고 말했다.

작가의 연애 소설 집필에 대한 강한 의지를 이렇다. "괴테가 78세에 동네에 있는 18살 먹은 아가씨를 좋아해서 계속 그 처녀에게 청혼했다. 하루는 수려한 외모의 귀부인이 찾아와 ‘당신이 괴테 선생님인가요? 당신이 청혼한 처녀의 어머니입니다. 제가 과부이니 차라리 저와 결혼합시다.’ 괴테는 ‘내가 좋아하는 건 당신 딸이지 당신이 아니다’고 했다. 괴테는 사랑을 이루지 못하고 죽었지만 그 처녀는 괴테가 남긴 사업을 거들면서 평생 수절하고 살았다. 괴테의 진정성에 감복했던 거다.”


박범신의 ‘은교’(문학동네)는 곧은 정신, 높은 품격, 고요한 카리스마 등 고결한 이미지의 시인 이적요가 평생 갈망했으나 이루지 못했던 로망을 그린 소설이다. 그가 유언과 함께 남긴 노트에서 시인은 열일곱 살 한은교를 두고 벌인 갈등 때문에 베스트셀러 ‘심장’의 작가이자 제자인 서지우를 살해했다고 고백했다. 이 작품을 발표할 때 박범신은 60대 중반이었다.

국내 최초의 밀리언셀러 ‘인간시장’의 작가로 고희를 코앞에 둔 김홍신은 최근 연애소설 ‘단 하나의 사랑’(해냄)을 내놓았다. “내 영혼에는 그 사람이 습기처럼 스며들어 있습니다.”로 시작하는 이 소설은 중년 남녀의 애절한 운명적 사랑을 그리고 있다. 유명 여배우 강시울은 말기암을 앓게 되자 재벌 2세인 남편과 이혼하고 기자회견을 자청해 첫사랑인 홍시진과 마지막 순간을 함께하고 싶다는 충격 고백을 한다. 이미 아내와 사별한 지 8년이 지난 홍시진은 자신만을 짝사랑해온 대학 후배 서다정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 ‘지나간 사랑’ 시울과 ‘현재의 사랑’ 다정 사이에서 깊은 고뇌를 하던 시진은 결국 목숨까지 잃을 사랑을 선택하고 만다.

최근 많은 노년 작가들이 연애소설 집필을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털어놓고 있다. 김홍신은 지난 4일의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아내와 사별하고 나니 간절한 사랑이 더욱 그리워졌고 또 실행하고 싶다”고 고백했다. 그는 이번 소설 ‘작가의 말’에서 “신이 만든 것 중에 가장 아름다운 것은 사람이고 사람이 만든 것 중에 가장 찬란한 것은 사랑이다. 사랑은 휘황찬란한 예술”이라고 썼다.


젊은 세대에게 있어 가장 절실한 문제는 ‘일’과 ‘사랑’이다. 네이버 웹소설에서 가장 인기를 누리는 장르는 로맨스다. 웹에 작품을 발표하는 로맨스 작가 중에는 월 1천만 원 이상의 원고료를 받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런데 정작 기성문단에는 일과 사랑을 정면으로 다뤄주는 작가들이 너무 없다. 오죽하면 ‘소설 창작 제로시대’라는 농담까지 나올까? 작가들이 더욱 분발하여 전 세대가 공감하고 감동할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작품들이 나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