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기호책통]칼럼 한 편이 책이 될까?

결정을 잘 내리지 못하는 세대를 그린 ‘메이비 세대’(Ge-neration Maybe)는 국내에서는 ‘결정장애 세대’란 제목으로 출간됐다. 기자였던 이 책의 저자 올리버 예게스는 2012년 독일 일간지 ‘디 벨트’에 같은 제목의 기사를 올렸다. 1982년생인 그는 예(Yes), 아니요(No) 대신 글쎄(Maybe)라는 말을 많이 자주 쓰는 자신을 스스로 ‘메이비 세대’라고 불렀다. 이 기사의 파장은 컸다.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지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며 그는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컬럼비아대를 졸업한 윌리엄 데레저위츠는 2008년부터 예일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영문학을 가르쳤다. 그는 아이비리그에서 머문 24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2008년 ‘엘리트 교육의 허점’이란 평론을 소규모 문학계간지인 ‘아메리칸 스콜라’에 발표했다. 이 글은 온라인에서 100만회 이상의 조회수를 기록했다. 이를 계기로 명문대생들 사이에 불만이 넓게 퍼져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그는 전국 대학을 돌며 학생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Excellent Sheep’이란 책을 펴냈다. 이 책은 국내에서 ‘공부의 배신’(다른)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여전히 우리는 책은 어느 정도의 부피를 지녀야만 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래서 두 사례에서처럼 기사나 평론을 확장해 책을 만드는데 일정한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처음의 기사와 칼럼 그 자체가 책이 될 수는 없을까?

아마존이 2013년에 설립한 단편문학 전문 임프린트인 ‘스토리프론트’(StoryFront)는 킨들 전용 디지털 주간 문예지인 ‘데이원’(Day One)을 창간했다. 이 잡지는 매호당 단편소설 한 편과 시 한 수만을 수록했다. 2014년 1월에는 배수아의 단편 ‘푸른 사과가 있는 국도’가 수록된 잡지도 나왔다. 이 소설이 잡지에 실리게 된 ‘성공사례’의 발표를 들으면서 나는 한 권의 책이 과연 어느 정도의 부피여야 할 것인가를 깊게 고민한 적이 있다.

잡지 ‘와이어드’의 창간 편집자인 케빈 켈리는 ‘와이어드’ 2호에 수록된 인터뷰에서 “책은 물체가 아니다. 그것은 지속해서 전개되는 논점이나 내러티브이고, 잡지는 아이디어나 시점의 집합체를 편집자의 시점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라고 했다. 저자나 편집자가 만든 하나의 논점이나 내러티브(스토리)야말로 책의 최소 단위라는 주장이다.


켈리는 같은 인터뷰에서 “웹에서 사람들의 주위지속시간은 몇 분인데 비해 책 한 권을 다 읽으려고 하면 10시간 이상이 필요하다. 그러나 지금까지 영화 한 편을 보는 시간에 다 읽을 수 있는 책은 별로 없다. 잡지의 기사보다 길고, 책보다는 짧은 것, 거기에 비즈니스 기회가 있다”고 예측했다.

그렇다. 결국 길이가 아니라 얼마나 임팩트가 강한 이야기를 담아내는가가 중요하다. 앨범 한 장으로 판매되던 음악이 한 곡 단위로 판매되듯이 논점이 있는 칼럼 한 편도 그 자체로 판매되는 시대가 곧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