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백화점 "화재시 수직·수평 확산…대형참사 불보듯"

"불에 쉽게 타는 옷가지도 많고 사람들도 몰리는 곳인데 소방시설은 엉망이네요… 불이 나면 대형참사로 이어질 가능성이 큽니다."

머니투데이는 지난 20~26일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와 서울 시내 주요 백화점 3곳(현대 신촌점, 롯데 본점, 신세계 본점)에 대해 소방점검을 실시했다. 공 교수는 국민안전처 중앙소방기술심의위원회 심의위원 등을 역임한 소방 전문가다.


백화점을 비롯한 대형 유통매장은 화재에 취약한 물건이 많은 반면 유동 인구가 많아 화재 발생 시 대형 인명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러나 조사 결과 서울의 대표적인 백화점의 소방방재시설은 안전기준에 미달하거나, 기준을 충족하더라도 미흡한 경우가 다수 발견됐다. 지적사항에는 과태료 부과 등의 조치가 필요한 위법사항과 법에 어긋나지는 않지만 안전을 위해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으로 평가되는 권고사항이 혼재해 있었다.

공하성 경일대 소방방재학과 교수(사진 왼쪽)는 서울 시내 주요 백현대 신촌점과 롯데 본점 내 방화구획(파란색 선)에 장애물이 걸쳐 있어 방화셔터가 바닥까지 내려올 수 없다고 설명했다. /사진=김민중 기자

◇ 불 나면 위 아래, 옆으로 급속 확산

조사 대상 백화점 3곳 모두 불이 나면 널리 확산 위험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불이 나면 천장에서 내려오는 '방화셔터'를 이용, 불이 붙은 공간을 격리해 확산을 막는 방화구획이 허술한 탓이다.

우선 대부분의 엘리베이터 앞에 방화구획이 설치되지 않았다. 신세계 본점 구관의 경우 1층 에스컬레이터 앞에도 방화구획이 없었다. 엘리베이터 등의 소재를 불에 잘 타지 않도록 설치하면 안전기준에 미달하진 않지만, 이대로라면 화재 발생 시 화염 또는 연기가 엘리베이터의 길을 따라 여러 층으로 퍼지는 '수직 확산'의 위험이 크다는 진단이다


방화구획이 돼 있어도 화재 시 제대로 작동할 수 없는 경우가 많았다. 방화셔터가 내려오는 지점에 테이블이나 의자 등을 놓거나 심지어 고정 장애물을 설치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화재 시 방화셔터가 바닥까지 내려오지 못 해 불길이 옆으로 퍼지는 '수평확산'을 방지하기 어렵다. 특히 현대 신촌점 1층에서는 에스컬레이터 안전 손잡이가 방화셔터가 내려올 자리를 막고 있기도 했다.

◇ 화재 나면 대피 못 하고 '우왕좌왕' 뻔해

화재 발생 시 대피가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에스컬레이터와 엘리베이터가 정지되므로 비상계단을 통해 대피해야 하지만, 계단으로 향하는 피난안내도가 이용객들이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곳에 설치돼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안전한 곳으로 유도하는 피난 시설이 부실하게 관리된 사례다.

실제로 전문가인 공 교수조차 현장 점검 과정에서 피난안내도를 찾기까지 수십분 걸리기도 했다. 찾다 포기하고 내부 사정에 밝은 백화점 직원들에게 질문했을 때도 한 번에 비상계단의 위치를 가리키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공 교수는 "이런 상황에서 화재가 발생하고 전기가 나가 조명이라도 꺼지면 이용객들은 대부분 비상계단을 찾지 못해 아수라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롯데 본점 피난계단 계단참에 철제구조물(왼쪽)이 있어 화재 시 사람들이 피난하기 어렵고 병목현상으로 뒤엉켜 넘어지는 등 2차피해가 우려된다. 불량하게 설치된 화재감지기도 보인다. /사진=김민중 기자

겨우 비상계단을 찾아도 문제는 남아 있었다. 특히 롯데 본점은 피난계단에 철제 장애물이 놓여 있어 대피 중 병목현상으로 뒤엉켜 넘어지는 등 2차 피해도 예상됐다. 신세계 본점 구관에서는 피난계단으로 꼭대기 층까지 올라갔지만 문을 열자 엉뚱하게 옥상이 아닌 매장이 나왔다. 물론 매장을 거쳐 옥상 정원으로 나갈 수 있었지만 옥상이 바로 나와야 올바르다는 지적이다.

◇ 소방관 출동해도 제대로 진압 어려워

소방관이 출동해도 화재 진압과 인명구조 활동이 제대로 이뤄질 수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소방관이 현장의 화재상황과 피난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실상 '콘트롤타워'인 방재센터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지상 1층이 아닌 지하 층으로 밀려나 있기 때문이다.

롯데 본점과 신세계 본점은 지하 1층, 심지어 현대 신촌점은 지하 5층에 방재센터가 있었다. 특히 현대 신촌점의 경우 화재 시 소방관이 출동해 화재상황 등을 파악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해 진압 등에서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고 예측됐다.

공 교수는 "서울 시내 주요 백화점의 소방시설 현황이 이처럼 낙제 수준이라면 그 외 전국 곳곳에 퍼져 있는 백화점·대형마트의 상황이 어떨지는 불 보듯 뻔하다"며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어 공 교수는 "앞으로 백화점 등은 법을 철저히 지키는 것은 기본이요, 나아가 적극적으로 소방시설을 강화해야 화재 시 대형참사를 막을 수 있다"며 "이제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관행을 버릴 때"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