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조홍근의 내 몸 건강 설명서] 와인이 정말 심장병을 예방해주나요?

머니투데이

조홍근 연세조홍근내과 원장

조홍근원장사진

조홍근원장프로필

많은 사람들이 “적당한 음주는 심장병 예방에 좋다”는 말을 합니다. 특히 레드와인은 심장에 좋아 매일 한 잔 정도 마시는 것이 아예 안 마시는 것보다 몸에 좋다고 말하며 실천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정말 그럴까요?

와인이 심장에 좋다는 주장은 1990년대 어떤 연구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프랑스, 미국, 영국의 식생활을 조사한 결과 콜레스테롤을 올리는 포화지방은 프랑스 사람들이 더 많이 섭취하는데 심장병이나 비만은 오히려 영미에서 더 많이 나타난다는 역학 연구 결과였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포화지방은 심장병 발생의 주범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런 포화지방을 프랑스 사람이 더 먹는데 심장병 발병률은 더 적은지, 이는 큰 난제였습니다. 그래서 이 발견을 ‘프렌치 패러독스(French Paradox)’라고 합니다.

당시 연구자들은 원인을 와인에서 찾았습니다. 프랑스 사람들이 레드와인을 많이 마셨기 때문입니다. 레드와인을 분석한 결과 항산화제인 폴리페놀이 많고 그중에서도 아주 강력한 항산화제 레스베라트롤(resveratrol)이 다량 함유되어 있었습니다. 와인의 항산화 효과와 항응고 효과가 프랑스 사람들의 심장병 발병을 예방했다고 생각했으며, 이 연구를 기점으로 와인이 세계적인 열풍을 몰아 당시 기울어 가던 와인 산업이 부활했습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 신화를 믿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이후 등장한 여러 연구들에 의하면 프렌치 파라독스는 와인 때문이 아닙니다! 전체를 못 보고 요인 하나하나만 따진, 근시안적 연구의 대표 사례입니다. 당시 연구를 재분석하면 포화지방이야 프랑스 사람들이 더 많이 먹지만 그 대신 더 많은 채소, 더 많은 과일, 더 많은 통밀빵을 먹었습니다. 반면 버터는 더 적게 먹었고요.

현실의 영국과 프랑스의 식단을 제대로 비교했다면 저런 결론은 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영국 식단은 정말 보잘것없지요. 가공식품에 냉동식품 범벅인데다가 질 나쁜 채소와 빵, 튀긴 음식 천지입니다. 식사가 질적으로 다릅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먹는 행위를 인생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일로 여깁니다. 식사 시간도 길고 밥 먹으면서 전화를 받거나 노트북을 보는 행위를 이해하지 못합니다(요즘은 좀 달라졌습니다). 아침은 가볍게 먹지만 20년 전만 해도 점심식사에 90분을 썼고(최근에는 30분도 안 쓴다지만) 저녁식사는 2시간 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음식에 대한 태도와 준비과정입니다. 프랑스는 드물게 대부분의 식자재를 자급자족할 수 있는 나라입니다. 일반 프랑스 가정의 식단에 오르는 음식은 대부분 로컬 푸드라서 매우 신선합니다. 또한 음식의 플레이팅과 색의 조화, 맛을 매우 중요시 여기며 천천히 즐기니 실제 섭취량이 적고 군것질도 거의 하지 않습니다.

프렌치 패러독스의 진실

1. 균형 잡힌 식단(고기, 채소, 과일, 섬유질, 비타민, 무기질)
2. 가공이 덜 된 신선한 식재료
3. 로컬 푸드
4. 슬로푸드와 천천히 먹기(slow food and slow eating)
5. 적은 음식량 섭취
6. 군것질 하지 않기

이처럼 프렌치 패러독스는 사실상 어디서나 통하는 영양햑의 진실입니다. 거기에 와인의 기여도도 약간 포함되어 있습니다,

와인은 분명 술입니다. 그러나 와인을 소주처럼 한 번에 들이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색과 향, 첫맛과 끝맛을 구분하기 위해 천천히 즐기는 술이지요. 자연히 안주도 천천히 먹게 되고 사람들과 대화도 느긋하게 즐길 수 있습니다. 소주를 마구 원샷하면서 불판의 삼겹살을 흡입하듯 먹는 것보다는 훨씬 건강한 음주 방법입니다. 그런 면에서 와인을 일주일에 한두 번 천천히 음미하며 마시면 나쁠 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심장병 예방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학회나 보건단체는 다음과 같이 권고합니다.
1. 비음주자가 심장병 예방을 위해 술을 시작할 필요가 없으며 권하지 않는다.
2. 과음은 심장병은 물론 암, 간경화, 사고사의 위험을 높이므로 절주나 금주를 권한다.
3. 적당한 음주를 즐기며 건강에 문제가 없다면 그대로 유지하되, 음주가 심장병이나 다른 병의 예방과는 상관없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

저도 와인을 좋아합니다. 특히 호주의 시라즈 와인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석 잔 이상을 마시면 다음날 머리가 아프고 역류성식도염이 생깁니다(와인은 시잖아요. 산도가 높으면 역류성식도염이 옵니다). 대가 없는 것이 없습니다.

균형 잡힌 식단, 가공되지 않은 음식, 천천히 적게 먹는 것이 심장병 예방의 비밀입니다. 와인은 즐겁게, 적당히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