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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 거목' 심산 김창숙 명륜동 집 복원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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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8.19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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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7~1957년 10년간 거주한 현대사 주요무대 김창숙연구회 제안에 서울시 기초조사 착수

(서울=뉴스1) 장우성 기자 =
심산 김창숙 (1879~1962) (시대의 창 제공)© News1
심산 김창숙 (1879~1962) (시대의 창 제공)© News1


늦더위에도 대학생들의 발걸음이 분주한 서울 종로구 명륜동 성균관대 정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골목길. 촘촘이 서있는 연립주택 사이로 어른 허벅지 높이의 표석이 하나 놓여있다.

이곳이 일제강점기 대표적 독립운동가, 반독재 운동가이자 성균관대 초대 총장을 지낸 심산 김창숙선생(1879~1962)의 집터라는 짤막한 설명이 새겨져있다.

심산 김창숙 선생이 해방 이후 10년간 기거하며 통일정부 수립운동, 반독재투쟁은 물론 유도(儒道)개혁과 성균관대 건립 활동의 본거지로 삼았던 명륜동 3가 집을 복원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성균관대 교수들을 중심으로 한 ‘심산김창숙연구회’는 최근 서울시와 종로구에 심산의 명륜동 집 복원을 제안했다. 해당 지자체들은 일단 집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기초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

당시 함께 살았던 손녀 김주(75) 씨에 따르면 심산은 1947년부터 1957년까지 10년 동안 이 집에 기거했다. 1946년 성균관대 초대 학장에 취임한 이듬해부터 1957년 이승만 정부와의 불화로 일체의 공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해방후 활동의 핵심적 시기다.

심산은 일제 경찰의 고문 후유증으로 거동이 자유롭지 못했다. 이 때문에 주로 이 집에서 유석 조병옥, 해공 신익희 등 해방 이후 주요 지도자들과 회합을 갖고 정국의 향방을 논의했다고 한다.

1945년 건국동맹 사건으로 일제에 연행돼 경북 왜관경찰서에서 해방을 맞았던 심산은 지지자들의 요청으로 서울에 올라왔다. 첫 거처는 죽첨정(현 서대문구 충정로)의 한 적산가옥이었으나 성균관대 건립을 주도하면서 명륜동 3가로 옮겨 서울에서 가장 오랜 기간 머물렀다.

이 집은 적산가옥으로 약 30평 규모의 일본식 근대형 주택이었다. 널찍한 거실과 3개의 방, 뒷마당이 있었다. 언제 허물어졌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이곳에서 심산을 비롯해 처 장세증(1951년 작고), 충칭(重慶)임시정부에 참여했다가 유명을 달리한 2남 찬기의 부인 손응교(99) 씨와 손자 위(78) 씨, 손녀 주 씨 5명이 한 식구로 살았다.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 3가 87번지에 설치된 심산 선생의 집터 표석. 2015.8.17© News1
서울시 종로구 명륜동 3가 87번지에 설치된 심산 선생의 집터 표석. 2015.8.17© News1



김주 씨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추억이 남아있고 많은 사건이 벌어졌던 명륜3가 집을 꼭 보전하고 싶었다”며 “세월이 지나 찾아보니 연립주택이 들어서 있어 포기한 상태였는데 김창숙연구회 교수들의 노력으로 복원이 추진돼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는 이 집의 정확한 위치와 구조, 없어진 시기 등 기초 정보를 파악하는 대로 전문가 자문 등을 거쳐 복원 타당성을 검토할 예정이다.

심산김창숙연구회 박승희 교수(전 회장)는 “명륜동 3가 집은 심산 선생이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벌이고 성균관대를 일으켜 세우는 데 전력을 다했던 시기의 핵심 공간”이라며 “백범 김구의 경교장, 우남 이승만의 이화장에 견줄 만한 대한민국 현대사의 주요 무대였다. 꼭 복원돼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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