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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小說) 광복 70년 한국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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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5.08.27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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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철 교수 칼럼]8월호

▲경기대 박상철 교수
▲경기대 박상철 교수
‘소설’이라는 표현을 한 것은 이 칼럼이 사회과학적 논쟁과 객관적 고민의 결과물이라기보다는 필자의 주장과 입장이 많이 반영되었다는 고백이고, 약간의 사회과학적 겸손이기도 하다.
‘광복 70년’이라고 한 것은 한국의 민주주의 역사를 수식한 용어로서 한국의 민주적 정당의 역사를 이해하기 편하면서도 담담하게 얘기하고자 함이다. 광복 70년 한국정당은 소설 같게도, 신비롭게도 전혀 변하지 않았고 상당부분 퇴행·퇴화·퇴보된 면도 있다.
지금 집권세력과 집권여당은 제2공화국 시절과 그들이 잃어버렸다던 지난 10년을 빼고는 줄곧 한국정치를 집권해왔고 지금 정당의 문패는 새누리당인데 권력에 종속적이고 청와대의 지배를 받는 여전히 영혼이 없는 정당이 되어있다. 새누리당은 광복 70년 세월동안 그대로이거나 사실상 퇴보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1955년 민주당 창당 이후 야당 60년 역사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60년 전의 민주당은 정권교체의 대안으로서 정파간의 강한 통합력과 국민의 정치적 최후 보루 및 희망의 역할을 충분히 했다. 1955년 민주당이 있어서 헌정사상 최초로 민주적 정권교체가 있었지만 지금의 새정치민주연합은 계파정치와 지역주의 위의 구조물로서만 존재하고 있다. 분명한 퇴행이요 퇴화이다.

자유당은 왜 생겼나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상해임시정부의 초대 대통령이었고 독립운동가로서 미국에서 박사학위까지 받은 한국인이다. 한국 초대 대통령으로서 갖출 것을 다 갖추고 항일무장투장 외에도 국제적 외교력을 발휘하는 보기 드문 한국의 독립운동가였다.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도 오스트리아 항일 외교 과정에서 어느 호텔 커피숍에서 첫 만남을 시작하였고 오스트리아가 오스트레일리아인줄 알고 많은 한국 사람들이 호주댁이라고 불렀다.
미국에서 독립운동을 한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미국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그의 롤모델이었다. 조지 워싱턴의 정당관(政黨觀)은 매우 부정적이고 적대적이었다. ‘정당은 패거리 정치의 온상이기 때문에 정당은 생겨나서는 안된다.
정당이 생기면 대통령을 그만 두겠다’라고 말한 조지 워싱턴은 자신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현대 민주정치의 생명선인 미국 정당의 탄생과 함께 대통령을 그만 두었다. 이승만 전 대통령도 정당에 대해 매우 적대적이었다. 정당 없이 국회에서 선출된 이승만 초대대통령은 무소속이었다.
광복 70년 중 한국을 특징지운 가장 중요한 시간은 1945년부터 1948년 해방정국 3년이었다. 당시 대한민국 제헌헌법 기초작업은 동경대학에서 내각제를 공부한 유진오 박사의 몫이었다. 내각제만이 민주적인 방식으로 공부한 유진오 박사는 민주정치의 핵심 주체로서 정당을 상정하고 내각책임제 제헌헌법을 준비했다.
결국 초대 대통령이 되었지만 이승만 당시 박사에게는 ‘대통령’이 없는 유진오 박사의 초안에 대해서 강한 거부와 타협을 시도했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을 국회에서 뽑는 사상 초유의 대통령제 헌법이 탄생된 것이다.
내각제와 대통령제는 광의의 정부형태로서 택일할 서로 다른 방식의 민주주의 통치구조이다. 대통령제 방식도 아닌 내각제 방식도 아닌 속은 내각제요 껍질은 대통령제인 기형적 민주주의와 묘한 헌법이 우리의 제헌헌법이다.
정당을 갖지 않은 이승만 대통령이 6.25 전쟁 중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서 또 의회에서 대통령에 당선될 자신이 없었다. 전쟁 중에 국가원수 대통령을 바꾼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들지만 당시 국회는 온통 야당만이 존재했는데 이는 이승만 대통령이 정당을 갖고 있지 않은 결과였다.
국회 간선제로는 대통령 재선이 거의 불가능할 것이기에 대통령 직선제로 개헌한 것이 바로 제1차 개헌이다. 이 과정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드디어 정당을 갖게 되고 그것이 자유당이었다.
자유당은 왜 생겼을까? 이승만 대통령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초대 당수인 이승만 대통령은 자유당을 만들면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했다. 자유당이 이승만 대통령을 만든 것은 아니기 때문에 대통령 권력을 위해서 존재할 뿐이었다.
자유당은 권력창출적, 본래 의미의 정당이 아닌 권력에 의해서 피조된, 만들어진 정당이었다. 한국 정당사에 있어서 집권정당의 출발이 대통령과 이러한 관계를 맺으면서 민주적 진화를 거의 못하게 했다. 잘못된 출발이었다.

한국 정당정치의 전통과 역사는 없는가
정당정치학에서 정당의 기원을 아주 멀리 잡을 때는 영국의 13세기 위그당과 토리당을 꼽고 있다. 이들은 권력을 만들어내고 견제하는 민주정당의 기원은 아니지만 영국 왕의 법과 예산을 합법화 및 합당화 시켜주는 기구로서 정당들이었다.
이 정당들이 영국헌정사에서 내각제를 만들어내고 이념 및 정책정당으로서, 민주정당으로서 발전과 거듭되는 탈바꿈을 해왔던 것이다. 한국에는 이러한 영국의 정당 역사가 광복 70년, 즉 1945년 이전에는 전혀 없었던 것일까? 한국 정당정치학과 정치문화를 깊게 공부하다 보면 영국의 위그당과 토리당 식의 정당기원은 우리에게도 거의 비슷한 시기, 동 시대에 존재했다.
일제의 식민지 사관에 의해서 폄하된 조선의 사색당파의 본질을 한국 정당정치의 기원으로 볼 수 있다. 조선의 왕명과 전례 문제, 정치적 토론을 정권교체라는 권력창출의 현대정당정치 방식이 아닌 범위 내에서 한국 정당정치의 기원은 영국과 마찬가지로 조선왕조와 함께 시작되었다고 단언할 수 있다. 한국 정당정치의 기원이 깊은 만큼 끈기지 않고, 일제시대 역사의 단절동안 망명지에서 독립과 새로운 국가건설을 위해서 많은 애국선열과 정파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이것은 군주주권 시대를 지나서 개막될 국민주권 시대의 정당정치의 배양조건이었다. 한국 정치에 있어서 정당 역사는 결코 일천하지 않다. 다만 광복 70년 민주주적 정당역사에 잘못된 시작이 있었을 뿐이다.

쿠데타가 한국 집권당을 탄생시켰다
혁명과 쿠데타는 현재의 헌법을 무너뜨린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이지만 주체, 즉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서로 구별하는 개념이다. 군인, 경찰 등 국가기관에서 헌법을 부정하고 유린하는 것을 쿠데타라고 하고 국가기관이 아닌 학생, 농민, 노동자, 언론 등 일반 국민이 헌법을 부정하고 유린하는 것을 혁명이라고 한다.
4.19의 주체가 학생이어서 4.19 혁명이라고 하고, 5.16과 5.18의 주체가 군인이어서 쿠데타라고 한다. 혁명은 좋고 쿠데타는 나쁘며 성공하면 혁명이고 실패하면 쿠데타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인식이다. 5.16 군사 쿠데타 이후 5.16을 군사혁명으로 미화시키면서 4.19 혁명을 4.19 의거로 격하시킨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혁명과 쿠데타의 개념적 용어 사용이 4.19 혁명, 5.16 쿠데타라고 정리가 되었다. 5.16과 12.12 및 5.18 쿠데타의 성공 이후 민주공화당과 민주정의당이라는 집권정당이 만들어졌다. 권력에 의해서 정당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이승만 정부 시절 자유당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그 궤를 같이 하고 있다. 비민주적, 권력종속적 한국 집권당의 창당과정은 정당운영에 있어서 비민주적일 수밖에 없게 하고 있었다. 최근에 새누리당의 유승민 원내대표 파동은 광복 70년 한국 집권정당의 잘못된 정당운영 방식이 재현한 것이다. 유승민 전 대표는 대한민국 헌법 제1조를 지키기 위해서 버텼노라고 항변했지만, 좀 더 정밀하게 이야기 하면 헌법 제9조 정당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서 버텼다고 보는 것이 더 맞다. 정당의 헌법인 당헌 절차에 따라서 유승민 원내대표를 물러나게 한 것이 아니라 청와대 권력에 의해서 당헌의 절차를 무시하고 했기 때문에 유승민 대표의 파동은 새누리당에 있어서 일종의 청와대와 친박 쿠데타라고 볼 수 있다. 광복 70년 한국 집권당의 자화상은 그대로이거나 사실상 지나간 세월을 감안하면 퇴보했다.

정권교체 못하는 야당이 존재하면 민주국가가 아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야당 60년 기획행사를 준비하면서 무엇을 생각했을까? 아마도 새정치민주연합이 찬란한 야당 역사에 적장자임을 강변하려 했을 것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이 혁신위원회를 만들었다. 만약에 전두환 정권시절 야당 역할을 했던 민한당이 혁신위원회를 만들어서 계속 존재했다면 선명야당으로서 정권교체의 토양이 되었던 신민당이 생겨났을까?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은 공룡에 비유할 수 있다. 티라노사우르사와 같은 강력한 공룡은 시대의 강자가 될 수 없다. 살아남는 자가 강자이다. 공룡은 변화에 적응하지 못했기 때문에 살아남지 못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정권교체의 중심이 되려면 변화에 적응하려는 수많은 실험과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무너뜨려 버려야 할 저수지 뚝이 있다고 치자. 저수지의 물들이 불어나고 불만이 들끓고 결국에 그 뚝을 무너뜨려서 새로운 물길을 만들어내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 잘못된 뚝이 수문에 의해서 물을 막았다 넣었다 수위 조절을 해 낼 경우 시원찮은 뚝은 그대로 유지되게 된다. 혹시 현재 새정치민주연합의 혁신위원회가 들끓고 있는 새정치민주연합의 수위조절을 하고 있는 수문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민해봐야 한다. 새정치민주연합의 아주 아픈 부분 중의 하나가 386→486→586으로 진화하고 있는 올드 젊은 피 정치세력의 존재이다. 많은 486, 586이 탁월한 시대적 감각과 전문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인정할만 하지만 15년 가까이 정치적 생명을 유지하면서 야당의 발전보다는 새로운 변화와 새로운 인재의 충원에 있어서 장애물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만약의 경우 현재 586이 그대로 686까지 간다면 새정치민주연합과 같은 야당은 변화에 둔감할 수밖에 없다. 새로운 사람들의 출입이 거의 없는 새정치민주연합은 변화에 약할 수밖에 없고 변화를 두려워하게 된다. 한국정치에 큰 변화를 주어서 정권교체를 해야 할 새정치민주연합이 변화에 취약하다는 것은 정말 아이러니다. 더 이상의 586의 집단적 존재는 퇴보이다.

‘광복 70년’ 한국 여당과 야당이 변해야 한다
현재 한국 정당정치를 아주 좋지 않게 평가를 한다면 새정치민주연합은 부도 직전이고 새누리당은 청와대의 법정관리를 받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만년야당은 민주주의에 있어서의 야당이 아니다. 그리고 새누리당이 언젠가 박근혜 대통령의 손에서 벗어날 때, 또 누군가 한 사람에게 통제받아서는 안된다. 새정치민주연합이 정권교체능력 결핍증세에 시달린다면 새누리당은 정당자율성 절대결여 중증에 있다 하겠다.
한국 제1, 2정당이 이렇게 되기까지는 국민들의 미필적 협조가 있었다. 지역주의 구도에 함몰된 국민의식, 이념적으로 맹목적인 유권자의 투표 행태, 소수 정치지향적인 사람들의 정치참여와 소외된 국민 등이 오늘날 한국 여당과 야당의 자화상을 유지시켜주었던 것이다. 광복 70년 국민의식은 조금씩 변하고 있다. 골이 깊은 지역주의가 희석되가고 있고, 직접적인 정치참여에 대한 의지가 보편화되고 있는 현상은 한국정치의 대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우리가 항상 새로운 정치를 이야기하지만 내년 제20대 국회의원 총선도 지역주의 구도 하의 정당대결 양상은 무너지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한국정치에 큰 변혁은 당분간 없을 것인가?

제20대 총선에서 당선된 국회의원들은 내년부터 4년간 공천으로부터 자유롭고 바로 그 다음 해에 대통령 선거가 있어서 2016년 정치격동은 쉽게 예고된다. 20대 총선을 향한 각 정당의 공천경쟁은 가히 백가쟁명식의 현란한 레토릭들이 난무할 것이다.
그 와중에 꽤나 괜찮은 정치인들이 제법 나타날 것이다. 새로운 변화를 향해서 텃새를 자처하며 살던 과거 정당행태를 벗어나서 새로운 변화를 향해 날아가는 용감한 철새들이 정당의 중심부에 자리잡을 것이다.
이들의 역할이 얼마나 크냐에 따라서 광복 70년 한국정당의 변화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정당의 변화는 정치주체의 변화를 예고하기 때문에 국가발전을 향한 불가역적 진전으로 높이 평가할만하다.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8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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