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독립성이 최우선 과제인가

/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최광 국민연금이사장과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이 불미스럽게 동반 퇴진하는 사태가 발생했음에도 500조원(가입자 2000만명, 1인당 2500만원)이 넘는 국민의 재산을 걱정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대신 기금운용본부의 분리독립을 둘러싼 공방만 난무하고 있다. 그렇다면 운용본부의 독립 문제가 국민의 재산과 노후를 위한 최우선 아젠다인가?

독립을 주장하는 측은 국민재산의 증식을 강조해 운용본부가 운용에 전념할 수 없을 만큼 다단계의 의사결정체계와 보수적이고 비효율적이며 비전문적이면서 시장후행적인 운용여건이 수익률을 높이기 어렵게 만든다고 주장한다.


반면에 현행 유지를 주장하는 측은 국민 노후 생활의 최후 보루임을 들어 안정성을 강조한다. 공사로 독립시 감시와 통제가 약화될 수 밖에 없어 투기적 운용으로 인한 손실 가능성이 발생하고 독립으로 수익성이 좋아진다는 근거도 희박하다는 주장이다.

어떤 자금운용이든지 ‘수익성’과 ‘안전성’ 두 기준이 가장 중요한 운용 원칙이 되는 것은 상식이다. 자금의 성격마다 우선순위가 다르지만 국민연금의 성격을 고려하면 안정성이 최우선 기준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국민연금의 투자정책서인 ‘국민연금기금운용지침’에 규정된 제4조(기금운용 원칙)에는 첫번째가 ‘수익성’이고 두번째가 ‘안정성’이다.

매우 정교하고 엄밀하게 구축된 위험관리와 내부통제 체제가 ‘안정성’의 기본을 담보하고 있기 때문에 ‘수익성’이 선행 원칙으로 규정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결국 기금운용본부의 모든 역량은 수익성 제고에 모아져야 하고 구축된 리스크관리 체제는 상시 수정 개선하면서 수익성 원칙을 통제 및 지원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그러므로 기금운용본부의 분리독립이 수익성 제고에 도움이 된다는 보장이 없다면 논의 순서는 재고돼야 한다. 현행 체제 내에서 수익성을 제고할 수 있는 제반 조치가 가능하다면 독립 문제는 사족이 될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과감히 독립해야 한다. 결국 수익성 제고를 위한 혁신조치가 무엇이고 그것이 가능한 지 여부에 대한 논의가 더 시급한 것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의 최고의사결정기관인 기금운용위원회에 매년 보고되는 기금운용성과 평가자료 중 운용전략별 수익기여도를 살펴보면, 전략적 자산배분의 효과가 거의 100%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주식·채권·대체투자 등 자산군별 전략적 포트폴리오 비중이 수익률 결정에 절대적인 효과를 미치고, 일부 미세한 자산비중 조절 및 종목선택 효과는 미미한 것을 시사한다. 이런 현상은 일정 수준 이상의 거액 펀드에는 공통된 현상이지만 국민연금과 같이 초거대 펀드의 경우는 그 정도가 더 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결국 국민연금기금의 '전략적 자산배분'을 최적화시키는 방향으로 운용 프로세스와 시스템을 개혁하는 문제가 국민연금의 수익성을 제고하는 최우선 과제가 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운용본부의 분리독립여부는 종속변수에 지나지 않는다. 즉, 전략적 자산배분의 고도화에 도움이 되는 방안이 무엇이냐가 최우선 아젠다여야 한다.

현행의 기금운용 체제는 정부의 행정관리 구조와 동일한 규정과 지침, 위계적 위원회 조직으로 돼 있어 다분히 관료적이고 형식적일 뿐 아니라 타성적인 경향이 불가피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현재 최고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및 실무평가위원회의 위원들은 대부분 실제 자산운용의 현장 경험이 부족한 인력으로 구성돼 있을 뿐 아니라, 최종 의사결정에 따른 현실적인 책임이 없으므로 전략적 자산배분의 최적화를 위한 실효적인 활동이 어렵다고 할 수 있다.

외부인사 20~40명으로 구성된 투자정책전문위원회가 있지만 비상설이고, 검토·심의 중심의 자문기능만 수행해 의미 있는 활동을 하기 어렵다. 한편, 내부의 실무진들은 대내외 보고와 감사 자료 준비로 운용 업무에 전념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대내외 규정과 지침을 따라가기에도 힘겨운 실정이다. 이런 구조와 여건 하에서 얼마나 치열하고 정교하게 상정안들이 작성되고 검토되는지 확신이 가지 않는다.

따라서 의사결정의 몰입도를 높이고 실효성과 책임성을 강화하는 쪽으로 조직혁신이 시급하다. 산업·금융·경제 분야의 최고 현장 전문가를 중심으로 위원을 구성하고 신속한 의사결정에 장애가 되는 수평적·수직적 다수의 위원회를 통폐합하고 단일화하여 책임과 권한 및 그에 합당한 보상이 연계되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의사결정기구로 혁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위원회의 운영도 상근체제로 바꿀 필요가 있다. 지금처럼 비상근으로 운영되면 실효적인 활동과 고민이 불가능하다. 또한 위원회의 위상도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에 버금가는 수준으로 격상될 필요가 있다. 국민의 재산과 노후를 책임지는 중대성을 고려하면 그 만한 위상이 절대 무겁다고 볼 수 없다.

한편 위원회의 역량이 불필요한 부분에 낭비되지 않도록 위원회의 활동 목표를 단순하고 명확하게 설정해야 한다. 그 목표는 수익성 제고이고 수단은 ‘전략적 자산배분’ 지표가 될 필요가 있다.

위원회의 산하 조직도 위원회의 기능과 역할을 지원하는 조직으로 바꾸고 기타 부분은 분리 내지 이관하여 모든 활동을 한 곳으로 집중하는 것이 최대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금통위가 ‘물가’에 집중하듯이 운용위원회는 ‘전략적 자산배분’에 집중하는 것이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의 독립과 관련하여 오랫동안 전개되는 논의의 저변에는 국민재산 증식이라는 공통된 고민이 있다. 현행 행정적이고 관료적인 의사결정체제는 관리와 통제에 촛점이 맞추어진 수동적 구조로서 자산운용과 같은 능동적인 재산증식 활동에는 부적합한 구조이다.

기금운용본부가 독립이 되든 안되든 현행과 같은 의사결정체제를 탈피할 수 없다면 아까운 시간만 낭비할 가능성이 높다. 하루빨리 능동적 의사결정 체제로의 환골탈퇴가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