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심 고리끼의 '어머니'

여전히 아침에는 해가 뜨고 밤에는 해가 진다. 겨울이라 해 뜨는 시간과 해 지는 시간이 여름보다 훨씬 짧아졌지만 그래도 낮과 밤이 존재하면서 시간은 흐른다. 시간이 흐른다는 것은 무엇일까. 자연은 그대로인데 인간의 뇌에 저장된 일들은 시간 속에 함몰되는 것일까, 아니면 더욱 강하게 인식되는 것일까.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한국에서도 매일 아침 접하는 뉴스가 국내의 잡다한 사건과 더불어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굵직하고 깜짝 놀랄 뉴스로 도배돼 있다. 그만큼 세계가 하나의 공동체처럼 유기적으로 움직여 어느 한 국가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말이다. 남의 나라 일이 내 나랏일처럼 느껴지고 내 근처에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 정도로 세상이 변했다는 것이다.

세계 경기가 침체일로를 겪게 되면서 빈번하게 나타나는 소규모 지역전쟁과 테러와 더불어 미국 같은 나라에서는 쉴 새 없이 총기사건이 일어나 사람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든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이게 인간의 모습이던가'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한다.

“수년에 걸친 착취가 그들의 식욕을 앗아가,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먼저 불타는 보드카가 연약한 위장을 쓸고 지나가야만 했다.” - 막심 고리키 '어머니' 중

1890년대 제정 러시아의 사회상을 작가 막심 고리키는 '어머니'라는 소설을 통해 이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19세기 제정 러시아에서 시골 사람들이나 공장 노동자 계층의 사람들 삶은 그야말로 죽지 못해 사는 인생으로, 괴로움을 잊기 위해 매일 독한 보드카를 마셔야만 했다. 무지몽매한 노동자, 정부의 가혹한 탄압, 아무 생각도 없는 농민들과 언제나 정부의 집요한 추적을 피해 다니며 어떻게든 부조리한 삶을 변화시켜 보려는 사회운동가들이 있었다.


막심 고리키의 '어머니'는 무식하고 가난하고 폭력과 알코올중독자인 아버지로부터 늘 구타당하고 폭력에 시달리며 무시당하고 살아온 존재다. 그녀는 그게 자신의 삶이라고 숙명처럼 받아들인 채 체념하고 살다가 남편이 갑자기 죽게 되자 아들 빠벨만 남게 되었는데 아들은 아버지처럼 술도 마시지 않고 싸움도 하지 않으면서 책만 읽는 것을 보고 놀란다. 무지하지만 아들을 사랑하는 순수하고 겁 많은 어머니는 동지들이라고 하는 사람들과 밤마다 모여 토론하고 자신에게 철학책을 읽어주고 경제에 관해서 이야기해주는 모습을 보고 아들의 장래를 심히 불안해한다. 아들은 어머니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온유한 말투로 대했고 자신들의 비밀스러운 모임에 초대까지 하게 된다. 이런 시간이 길어지면서 '어머니'는 아들 빠벨과 동지들을 진심으로 이해하고 사랑하고 그들이 하는 일이 옳음을 인정하면서 전적으로 아들을 돕는데 헌신하게 된다. 글자도 잘 모르던 어머니가 글을 읽게 되자 위험한 일을 자처하는데, 아들과 동지들을 대신해 인쇄소를 다니며 문서를 나르는 장면은 가슴이 뭉클하다. '어머니'는 점점 사회주의 혁명가 모임에 발을 들여놓게 되면서 훌륭한 투사로 변하게 되지만 친절과 자비, 사랑 같은 가치가 강조되는 인간적인 면을 잃지 않는다.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는 보통 사회주의 리얼리즘 작품이라고 말하지만 단순히 이념적이고 선전적이라고 말해서는 안 될 것이다. 고리끼는 그보다 훨씬 더 높은 것에 가치를 두고 있으며 순수하고 선량한 인간이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살아가며 또 환경에 따라 어떻게 변화해 가는지를 적나라하게 그린 작품이다. 담담하고 시크한 유머와 잊을 수 없게 만드는 생생한 등장 인물들로 아름답고 슬픈 인간애를 보여준다. 그래서 읽는 독자로 하여금 가슴 깊숙한 곳에서 묵직하고 진한 감동을 선사하며 인간의 고귀함을 알게 해주며 높은 이상과 가치관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막심 고리끼의 '어머니'는 어머니라고 불리는 따듯함과 온유함, 강인함과 인내심, 그리고 자식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과 의무감을 모두 보여주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