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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원조국에서 달탐사 착수까지…과학한국 50년, 100년 미래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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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연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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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1.01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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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신년 기획-과학이 미래다] KIST→과학기술처 출범 '도화선'…추격형→선도형 R&D로 전환


1966년 2월3일 발족한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가 설립된 지 50돌을 맞았다. KIST 설립과 이듬해 과학기술처 설립을 현대 과학기술 정책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압축 성장기 선진기술을 도입해 토착화하는 중점을 뒀던 초기 과학기술 정책은 시대변화와 함께 국가 미래 성장동력 확보·삶의질 향상 도구로 빠르게 진화했다. 과학기술이 '경제성장 지원 도구'에서 '국가 핵심 자산'으로 자리잡은 셈이다. 시대별로 차이는 있지만 과학기술에 대한 최고 통치권자의 강력한 의지와 비전은 반세기 만에 기술 강국으로 도약한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50년 대한민국 과학기술 발자취를 되돌아보고 향후 미래 비전을 재점검해봤다.


기술원조국에서 달탐사 착수까지…과학한국 50년, 100년 미래 그린다

◇'기술로 가난을 극복하자'…기술원조로 출범한 KIST

사실 과학기술 관련 최초 독립행정기구는 1959년 설립된 원자력연구원이다. 그러나 그러나 국가 전체의 R&D를 총괄하는 조직은 그로부터 7년 뒤 발족한 KIST다. 기아와 빈곤에 허덕이던 시절 미국의 기술 원조로 탄생했다. 1965년 이뤄진 한미회담에서 미국 존슨 대통령의 연구소 설립 지원 제안을 박정희 전 대통령이 받아들이면서 성사됐다.

미국 바텔연구소를 모델로 만든 KIST는 국내 과학기술 발전의 도화선으로 작용했다. 기계, 화학, 금속공업 등 선진 기술을 따라잡기 위한 R&D가 본격화됐고, 해외로 유출된 고급인력들은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기 시작했다. 유치 인재들에게는 파격적인 급여와 주택제공, 연구 휴가 등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처우가 보장됐다.

같은 해 과학기술인을 총망라한 전국조직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이후 과총)이 공식 출범했다. 이후 이듬해 '과학기술진흥법'이 국회 통과되고 최초의 과학기술 전담 부처인 과학기술처가 설립됐다. 과학기술 행정체계가 일사천리로 갖춰졌던 셈이다. 당시 개발도상국 가운데 각료급 과학기술 전담부처를 갖춘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했다.

현재 국내 과학기술의 메카로 자리 잡은 '대덕연구단지'가 구상됐던 것도 이 시기다. 연구기관과 교육기관을 집결시켜 연구시설 등을 공동 활용하고 인력과 정보 교류를 통해 연구효율을 꾀하자는 취지에서 1973년 건설계획이 수립됐던 것.

KIST를 모태로 정부 출연연구기관들도 하나둘씩 생겨났다. 1970년대 중반 설립된 10여개의 정부출연연구기관은 KIST와 함께 국가 R&D를 주도했던 수행조직 역할을 했다. 1971년에는 특수 이공계 대학원인 한국과학원이 설립됐다. 이를 계기로 고급 두뇌 인력에 대한 자체 양성체계가 갖춰지기 시작했다.

◇80년대 강력한 기술 드라이브 정책…민간 R&D 꽃피다

1980년대 과학기술 정책은 기술 드라이브 정책으로 요약된다. 세계 각국의 기술보호주의 확산에 따라 신군부의 통치권 강화 수단으로 과학기술에 강한 애착을 보였다. 1982년부터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고 여야 정치인과 재벌 총수 등이 참여하는 기술진흥확대회의가 정례적으로 개최됐다. 민간 분야 R&D가 꽃을 피운 시기이기도 하다. 이 시기 민간 기업 부설 연구소가 폭발적으로 늘었고 1990년을 전후해 대학 연구소 설립도 봇물을 이뤘다. 총 연구개발비 중 민간이 차지하는 비중은 1980년 36.1%에서 1990년 80.6%로 대폭 확대됐다. 반대로 연구개발 투자의 효율성을 극대화한다는 취지로 당시 16개 출연연을 9개로 통폐합하기도 했다.

컴퓨터, 반도체 등 미래사업을 주도할 국가연구개발사업도 시작됐다. 1982년부터 1991년까지 10년간 특정연구개발사업에 정부 5730억원, 민간 3912억원등 총 9642억원이 투입됐다. 이 결과 4M D램을 비롯한 반도체, 행정전산망용 주전산기, 진전자 교환기(TDX-1~TDX10) 등이 개발되는 성과를 거뒀다.
기술원조국에서 달탐사 착수까지…과학한국 50년, 100년 미래 그린다

◇90년대 대형 R&D 국책사업 추진…세계 일류화 초석 마련

1990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사회 전반에 걸친 민주화와 개방화 열풍 속에 과학기술 정책도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았다. 경제 성장의 도구뿐만 아닌 삶의 질 향상과 다양한 문화활동의 촉진 수단으로 인식됐던 것. R&D전략은 선진기술에 의존하던 모방 전략에서 벗어나 새로운 기술을 자체 개발하는 창조전략으로 급선회됐다.

국가연구개발사업도 대형화됐다. 향후 10년 내 과학기술을 선진 7개국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을 목표로 시작된 'G7 프로젝트(선도기술개발사업; 1992~2001년)'가 대표적이다. 당시 이 사업을 통해 개발된 고선명 디지털TV와 256M D램, 초대형 TFT-LCD 기술은 TV와 반도체, 디스플레이 시장에서 현재 우리나라가 시장 주도권을 쥐게 된 계기가 됐다. 다목적실용위성(아리랑1호) 과학위성(우리별 1호, 과학위성 1호) 등 우주 개발 분야에서도 적잖은 성과를 냈다.

◇'과학기술부총리'→전담부처 해체…2010년 과학융합의 시대로

2000년대는 생명공학기술(BT), 나노기술(NT), 환경기술(ET), 우주항공기술(ST) 등 미래 고부가가치 기술들이 각광받던 시기였다. 참여정부는 '과학기술중심사회 구축'을 주요 국정과제로, 제2의 기술입국, 동북아 R&D 허브 구축 등을 핵심과제로 제시했다. 이를 위해 과감하게 과학기술부총리제를 도입하고 과학기술혁신본부를 신설했다. 특히 과학기술혁신본부 인원의 20%를 민간 전문가로 충원함으로써 과학정책의 전문가 참여와 일반 국민 의견 수렴을 명문화하기도 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과 함께 과학기술부는 창립 41년 만에 교육과학기술부로 재편되며 단독부처 시대를 마감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다시 과학기술 기능이 ICT(정보통신기술)과 다시 합치며 미래창조과학부로 재출범했다. '작은 정부'와 '기술 융합' 등 시대 변화에 따라 인재 양성과 ICT와 본격적인 융합을 시도한다는 명분이었지만, 과거 독임부처에 비해 정책 추진력이 약화 됐다는 비판도 있다. 2013년 국내 최초로 나로호 발사 성공으로 10대 우주 강국 반열로 진입했다는 점은 괄목할만한 성과다. 이에 더해 박근혜 정부는 2018년 말까지 달괘도 탐사선을 쏘아올리는 것을 목표로 올해부터 달탐사 사업에 착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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