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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L의 눈]대법원장의 신중하지 못한 발언 유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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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재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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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1.12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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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파기하지 말라"…'판결지침'으로 받아들여질 우려

양승태 대법원장. /사진=머니투데이
양승태 대법원장. /사진=머니투데이
"항소심은 '두 번째 1심'이 아닙니다. 항소심의 사건은 이미 법관에 의해 한 단계의 사법적 판단을 거친 사건이라는 점을 무겁게 생각해야 합니다. 대법원은 이미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1심과 비교해 양형 조건에 변화가 없고 1심의 양형이 재량의 합리적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 경우 이를 존중함이 타당하며, 1심 형량이 재량의 합리적 범위에 속하는데도 항소심 견해와 다소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파기해 별로 차이 없는 형을 선고하는 것은 자제함이 바람직하다'고 판시한 바 있습니다."

양승태 대법원장은 올해 시무식에서 "심급제도가 그저 같은 사건의 재판을 되풀이하는 절차로 잘못 운용돼서는 안 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많은 법조인이 공감할 만한 의견임에도 항소심 판사들에게 '함부로 1심을 뒤집지 말라'는 지침을 전한 것으로 읽힐 우려가 있다.

법원은 다른 행정부처나 검찰과 다르다.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수직적으로 구성돼 상명하복하도록 만들어진 조직이 아니다. 법관 개개인은 모두 독립적인 헌법 기관으로, 어떤 외부 요인에도 영향을 받지 않고 양심과 소신에 따라 판단해야 한다. 헌법이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해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해 심판한다'고 규정하는 이유다.

실제 일선 판사들은 파기될 것을 감수하고 상급심과 다른 취지의 판결을 내리기도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무죄 판결을 내리는 것이 대표적이다. 대법원은 일관되게 유죄를 인정하고 있지만, 일부 법관들은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무죄로 판결하고 있다. 이런 소신과 양심의 자유가 사라진다면 하급심 재판부는 단지 대법원의 판례를 해석하고 적용하는 행정기구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사회의 변화를 반영하는 새로운 판례도 나오기 어렵다.

양 대법원장은 그간 사법부가 추구해온 가치에 대해 다시금 강조하기 위해 원론적인 말을 한 것으로 보인다.

재판에 대한 신뢰를 확보하는 것은 사법부의 핵심 과제다. 이를 위해선 재판이 충실하게 이뤄져야 하고, 1심을 강화하는 것은 그 첫걸음이다. 이 때문에 사법부는 1심을 강화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기울여왔다. 단독재판부에 경험이 많은 부장급 판사를 꾸준히 늘리고, 증거조사를 강화하는 등의 절차를 개선한 것도 한 예다. 법원 외부의 인사나 일선 판사가 양 대법원장과 같은 발언을 했다면 문제될 것이 없다.

그러나 양 대법원장은 입장이 다르다. 대법원장은 3000명에 달하는 전국 법관들의 인사권을 가진 자리다. 이 때문에 법관들이 대법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고, 특히 고등 부장판사 승진을 앞둔 법관들이 소신을 펴기 어렵다는 주장이 잇따랐다. 결국 법원행정처는 이런 문제를 근절하기 위해 고등 부장판사 승진을 없애는 법관인사 이원화 제도를 추진 중이다.

한 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개인적으로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후배 법관들이 심리하는 사건에 대해 절대 언급하지 않는다"며 "혹시라도 사건에 대해 선배가 주시하고 있다는 부담감을 느끼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일선에 있는 선·후배 법관들도 서로의 독립성과 소신을 지킬 수 있도록 배려하고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다.

하물며 전국 법관들의 인사권을 손에 쥔 양 대법원장이 공개석상에서 '판결 지침'을 전달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소지가 있는 말을 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양 대법원장은 2012년 12월 신임법관 임명식에서 "근거 없는 억측이나 사시적 시각으로 재판을 원색적으로 비난하거나 여론을 오도해 법원을 부당하게 공격하는 경우가 있다"며 "재판의 독립이 교묘한 양상으로 여전히 위협받고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외부의 요인만 탓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발언이 다른 법관들의 독립성을 위협하지 않는지 신중하게 판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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