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조이는 출동시간 '5분'…"사고현장 내가 지킨다"

4일 오전 1시 서울 용산구 동호대교 앞 강변북로에서 용산소방서 구조대원들이 현장출동을 위해 하차하고 있다. /사진=박신엽 기자

◇업무는 업무대로, 출동은 출동대로…사고는 밤낮을 가리지 않는다
밤 11시. 대기실에서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던 대원들이 일순간 사라졌다. 대기실 당직자는 대원들이 밤에도 개인 업무가 있어 처리하러 갔다고 했다.

2층 상황실을 찾았다. 상황실 당직인 윤영석 소방장이 밝게 맞아줬다. 윤 소방장은 이날 출근 전 고등학교를 졸업한 아들에게 자장면을 사주고 와서 기분이 좋다고 했다.


윤 소방장은 상황실 안 장비들에 대해 설명해줬다. 문화재와 도로감시 CCTV는 물론, 출동 대원의 안전모에 달린 카메라를 통해 현장 영상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시스템도 있었다.

출동 방송은 상황실에서 하는 게 아니라 서울 중구에 있는 종합방재센터에서 직접 하는 것이라고 했다. 화재나 큰 사고의 경우 신고자와의 통화 내용을 실시간으로 들려줘 화재나 구조·구급대원들이 상황을 판단하는데 도움을 준다고 설명했다.

상황실 당직은 사무실에 가만히 앉아만 있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윤 소방장은 출동복을 입고 있었다. 그는 상황실에 있더라도 종합방재센터에서 출동 명령이 나오면 곧바로 구급차로 달려가야 한다고 알려줬다. 빈자리는 다른 구조팀 당직자가 와서 채운다고 했다.


5일 오전 12시52분. 2시간 동안 출동명령이 없어 슬슬 짐을 싸야하나 생각하던 무렵 “구조출동. 구조출동. 동호대교 앞 교통사고. 구조출동” 방송이 들렸다. 가방을 싸느라 30초 남짓한 시간을 소모했는데 조금만 더 늦었어도 지휘차에 탑승하지 못할 뻔했다.

간신히 차량에 올라타 자리에 앉으니 양말을 신고 있는 구조 3팀 대원이 보였다. 사고현장으로 향하는 길, 강변북로를 따라 현장에 도착하기까지 차 안엔 이따금씩 무전소리만 들릴 뿐 침묵이 가득했다. 오전 1시2분 현장에 도착했다.

차가 서자마자 하차해 현장으로 뛰어갔던 대원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차로 다시 돌아왔다. 대원 한 명이 단순 접촉사고라고 전해줬다. 어디선가 깊은 한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렸다. 복귀하는 길, 10분 전까진 아무 말 없던 대원들이 비로소 담소를 나누기 시작했다. 어느 빵집이 맛있는지에 대해 대원들 간 작은 논쟁이 벌어졌다.

5일 오전 2시 서울 용산구 한강로동 용산소방서에서 황영권 소방위가 종합방재센터와 통화를 하고 있다. /사진=박신엽 기자

◇쉽게 말할 수 없는 애환…"신념과 집념으로 극복할 뿐"
대기실엔 구급대원 세 명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대원이 무서운 영화를 보자고 하자 다른 대원이 거부했다. 구급현장에서 본 망자들이 떠오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처참한 현장을 목격하고 심지어는 시신을 만지기까지 해야 하기에 잊을 수 없는 기억들이 많다고 했다. 다른 대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기억들은 주위에 말해도 좋을 게 없으니 혼자 삭여야 한다는데 세 명 모두 동의했다.

1시18분 상황실로 올라갔다. 전 당직자 윤영석 소방장과 교대한 황영권 소방위가 있었다. 아래에서 들었던 구급대원들의 대화 내용에 대해 실제로 그러한지를 질문했다. 올해로 근무 21년차인 황영권 소방위는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그런 기억을 갖고 있다고 담담히 얘기했다.

그는 “화재원인을 밝혀내는 '재난조사'를 담당해 직접 진압에 나서는 경우가 적지만 출동할 때면 소방관이라면 누구나 그렇듯이 현장에 도착하는 4~6분 동안 가슴이 조여온다”고 했다.

'발굴'(잿더미를 헤치며 화재원인을 찾아내는 일)을 할 때면 마스크를 써도 후끈후끈한 열기와 유독가스가 피부로 느껴진다고 했다. 집에 누우면 근무중 봤던 화재 현장이 잔상처럼 나타난다고 털어놨다.

어떻게 어려움들을 이겨냈는지 물어보니 황 소방위는 소방학교에 입교할 때부터 가졌던 “대한민국 최고의 화재조사관이 되겠다”는 신념 하나로 극복했다고 답했다.

비번일지라도 전날 화재원인을 정확히 밝혀내지 못하면 다시 현장으로 달려간다고 했다. 그는 대부분의 소방관들이 “내가 아니면 안된다”는 믿음을 갖고 있어 버텨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새벽 2시12분 취재를 마치고 용산소방서를 나섰다. 입구를 지나다 뒤를 돌아보니 현장대응단 대기실은 짙은 어둠속에서도 밝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