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통합검색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젊은 날의 나를 만나는 법

머니투데이
  • 이호준 시인.여행작가
  • 카카오톡 공유하기
  • 카카오톡 나에게 전송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 카카오스토리
  • 텔레그램
  • 문자
  • 2016.02.13 07:43
  • 글자크기조절
  • 의견 남기기

<5>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

[편집자주] 여행은 스스로를 비춰보는 거울이다. 상처 입은 영혼을 치유하는 수단이다. 여행자들이 전하는 세상 곳곳의 이야기는 흥미와 대리만족을 함께 안겨준다. 이호준 작가가 전하는 여행의 뒷얘기와 깨달음,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경포대 인근의 바다/ 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경포대 인근의 바다/ 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여행을 ‘공간에서 공간으로 이동하는 행위’라고 한정하면 범위가 너무 좁아진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여행도 있기 때문이다. 시간여행 역시 공간의 이동을 수단으로 삼는 건 마찬가지다. 하지만 여행의 목적이 좀 더 분명한 것은 물론 사연이나 스토리를 동반하기 마련이다. 이를테면 추억이 배어있는 장소를 찾아가는 여행이 바로 그것이다.

사람은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 미래를 향한 꿈보다는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는데 좀 더 시간을 할애하기 마련이다. 어느 날부터인가 자주 고향을 찾게 된 것도 그 때문이다. 조상의 산소가 있다는 핑계도 있지만, 친척들마저 모두 떠난 그곳으로 발길이 향하는 배경에는 시간을 되짚어 돌아가고 싶다는 심리도 있을 것이다.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처럼 수십 년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며 마음의 위안을 얻고 싶은 것이다. 순수했던 나를 만나고 싶은 것이다. 그렇게 그리움의 손짓을 따라가는 여정을 나는 시간여행이라고 부른다.

여행지도 그처럼 특별한 의미를 갖는 곳이 있다. 내게는 7번 국도가 그렇다. 부산에서 함경도에 이르는 총 513.4km의 이 도로는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바다와 나란히 달린다. 그래서 ‘동해안을 하나로 연결하는 바다에서 가장 가까운 길’이라고 정의하기도 한다. 풍경 또한 아름답기 그지없다.

청년기에 버스를 타고 울진까지 여러 번 오간 적이 있었다. 요즘이야 울진으로 가는 길이 여럿 있지만 그때는 7번 국도를 통하는 것 외에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국도라고는 해도 지금의 잘 닦인 도로에 비해 무척 험했다. 울진에는 친척이 한 분 살고 있었다. 하지만 친척이 그리워서라기보다 아름다운 풍경에 마음을 빼앗겨 더 자주 갔던 것 같다. 그때 각인된 풍경은 세월이 가도 퇴색하지 않고 생생하게 남아있다.

얼마 전 겨울여행 삼아 그 길을 찾아갔다. 동해의 푸른 바다에 찌든 마음을 씻고 싶다는 심사도 있었지만, 7번 국도에 대한 그리움이 더 큰 비중을 차지했다. 차를 가져간 여행이었지만 오래 전의 버스여행과 별로 다를 건 없었다. 7번 국도 여행은 목적지를 정할 필요가 없다. 끝까지 가겠다는 욕심을 부리지 않아도 된다. 가다가 쉬고 싶으면 쉬고 묵을 곳이 있으면 묵고 아무데서나 돌아서도 된다.

강릉을 출발하고 나서도 남쪽으로 가는 속도는 느리기만 했다. 바다의 손짓에 자주 눈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자동차는 자꾸 국도를 벗어나 해안도로를 탐했다. 사람의 발길이 뜸해진 겨울바다는 암청색(暗淸色)으로 빛났다. 가끔 흰 포말만 백사장에 부려놓을 뿐 끝내 속내를 보여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도시에서 답답했던 가슴이 어느덧 시원하게 뚫려 있었다.

바다에 헹군 마음을 푸른 소나무 가지에 널어놓았다. 해변을 따라 조성된 소나무 숲이야 말로 해안도로 풍경의 백미다. 온몸에 시간을 새기며 꿋꿋하게 서 있는 소나무들이 풍경에 온기를 불어넣고 있었다.


일출 무렵의 문무대왕릉/ 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일출 무렵의 문무대왕릉/ 사진=이호준 시인·여행작가

그렇게 천천히 달리다 한적한 바닷가마을에서 하룻밤 묵고, 새벽 찾아간 곳이 경북 경주시 양북면 봉길리 해변이었다. 그곳에는 대왕암이라고 부르는 문무대왕릉이 있다. 출발할 때부터 여행의 종착지로 정한 곳이었다. 그곳이야말로 7번 국도 시간여행의 정점이기 때문이다. 어느 해인가 그곳에서 만난 일출이 얼마나 장엄했던지, 오랫동안 일출이라는 말만 들어도 그때 본 풍경이 저절로 그려지고는 했다.

대왕암 주변에 대단한 볼거리가 있는 것은 아니다. 백사장에서 200m쯤 떨어진 바다에 불쑥 솟아있는 바위가 전부다. 그 바위 속에 삼국통일을 완수한 문무왕(文武王)의 유골이 묻혔다고 해서 문무대왕릉이라고 부른다. 장관은 해가 뜰 무렵에 펼쳐졌다. 대왕암을 호위하듯 앉아있던 갈매기들이 해를 등지고 일제히 날아오르면서 환상적인 풍경이 연출됐다. 황금빛으로 물든 바위와 그 빛을 등에 진 갈매기들의 군무.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 순간이었다.

구체적으로 설명할 방법은 없지만, 영적 기운이 몸을 관통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밤샘기도를 하는 무속인들의 모습도 색다른 풍경이었다. 추위를 견디며 밤을 새운 뒤 일출 무렵의 신성한 기운을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 광경이 엄숙하고 경건해서 감히 카메라를 들이댈 수 없었다.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여행은 달콤하고 행복했다. 그 끝에서 젊은 날의 나를 만났다. 가슴에 꿈을 품고 푸르게 빛나는 나. 그가 지금의 내게 내일을 살아갈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가끔은 추억의 장소를 찾아 떠나볼 일이다. 과거는 지나가버린 시간이 아니라 내가 딛고 걸어온 디딤돌이니.

[이호준의 길위의 편지] 젊은 날의 나를 만나는 법



베스트클릭

오늘의 꿀팁

  • 날씨
  • 건강쏙쏙

많이 본 뉴스

머니투데이 페이스북 퀴즈 이벤트
부꾸미
머니투데이 수소대상
사회안전지수

포토 / 영상

머니투데이 SERV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