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조의 미학'…애틋함과 떨림 놓지 않는 '캐롤' OST의 힘

머니투데이

김고금평 기자

현재 관객 20만 명을 동원하며 승승장구하는 두 여성의 사랑을 다룬 영화 ‘캐롤’의 흥행을 견인하는 최고의 요소는 미장센도 연기도, 플롯도 아니다. 주인공은 'OST'다. 레즈비언을 다루면서 성보다 인간 자체에 주목하는 의미 있는 영화는 많지만, 이 작품만큼 매 순간 심장을 쥐락펴락하며 가슴을 짓누르는 아픈 영화는 찾기 쉽지 않다.

시작 장면에서 흐르는 테마곡 ‘Opening’부터 보는 이의 눈물샘, 또는 애처롭고 먹먹한 기분을 듬뿍 안겨준다. 바이올린으로 던진 단조의 선율을 피아노가 이어받고 하프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숨죽여 긴장 하나씩 풀어헤칠 때, 영화는 우리에게 어떤 전율을 선사할지 이미 예고하는 듯하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배경음악들, 특히 천천히 걷지만 발자국 하나마다 의미 있는 행보를 새기는 단조의 연주곡들은 두 여성의 평범한 말이나 행동에도 가슴 사무치는 아련함이나 그리움의 정서를 배가한다.

가장 단순한 음표에서 가장 깊은 연민과 고통의 정서를 길어올리는 선율은 그 자체로 배우들의 말하지 못하는 숨겨진 언어를 대변한다. 체면을 중시하는 40대 아내 캐롤(케이트 블란쳇)의 이성에도, 미지의 세계에 호기심만 가득한 20대 테레즈(루니 마라)의 주춤거림에도 OST 수록곡들은 죄다 서로를 끌어안을 수밖에 없는 떨리는 감성의 공통분모로 작동한다.

배경음악을 제외한 노래가 있는 곡들, 더 클로버스의 ‘원 민트 줄렙’(One Mint Julep), 빌리 할러데이의 ‘이지 리빙’(Easy living) 등은 모두 달콤하거나 밝거나 빠른 전개의 선율들이다. 이 곡들이 전개되는 사이, 두 사람은 연인이 아닌 인간이고 촉촉한 눈빛이 아닌 마른 입술의 대상일 뿐이다.

여성 대 여성이어서가 아니라, 남성 대 여성이라 하더라도 이 OST는 사랑의 본질과 감정을 묻는 원초적 질감을 소유하고 있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극단의 감정 변화없이 메마를만큼 절제가 압도하는 사랑이 더 애틋하고 강렬하고 뿌리칠 수 없는 매력으로 떠오를 수 있는 건 전적으로 OST 덕분이다. 그 선율들이 아직도 가슴에 상처 한 덩어리를 안긴 듯하다.

※ 이 기사는 빠르고 깊이있는 분석정보를 전하는 VIP 머니투데이(vip.mt.co.kr)에 2016년 2월 16일 (18:00)에 게재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