묘하게 어울리는 ‘극과 극’의 연결…'전망좋은 사교클럽'의 고별만찬

86세에도 불구하고 정확한 음정과 탁월한 가창력을 과시한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 원년멤버 오마라 포르투온도. 그는 뛰어난 가창뿐 아니라 흥겨운 무대매너로 관객의 환호를 받았다. /사진제공=프라이빗커브

전설의 이름은 점점 희미해져 갔지만, 그 온도는 식지 않았다. 이브라임 페레르, 루벤 곤잘레즈, 콤파이 세군도 등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주축 멤버들이 사라져도, 그들이 남긴 음악의 자취는 군불이 되어 다시 활활 타올랐다.

지난 1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오케스트라 부에나비스타 소셜클럽’의 고별 무대는 아무도 흉내낼 수 없는 아날로그 리듬의 향연을 온전히 느끼는 구수하지만 세련된 맛과 멋의 축제였다.


이 중심에는 본질을 더듬는 아프리칸 리듬의 진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노장들의 연주, 86세의 원년 멤버 오마라 포르투온도의 믿기지 않는 가창력, 거장의 영혼을 이어받은 젊은 세대의 열정이 한데 뭉쳐 ‘하나의 쿠바음악’을 완성했다.

쿠바 음악의 특징은 단조 중심의 슬픈 선율을 빠른 리듬으로 솎아내는 ‘역설의 묘미’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날 그들은 여기에 ‘재즈적 화성’을 덧붙여 단순함과 복잡함, 기쁨과 슬픔의 경계를 없앴다. 원초적이면서 계산된 리듬에 관객이 몸을 자연스레 맡긴 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콩가, 봉고, 탐발라스 등 퍼커션 노장들이 이끈 살사 연주는 춤추기에 적당한 그루브(리듬감)를 안겼고, 그루브가 상대적으로 덜한 트럼펫 3대의 직진성은 가슴에 직접 꽂히는 진실의 소리를 구현했다.


기타 모양의 12줄 현으로 구성된 우클렐레 크기의 라우드(laud)를 연주한 알베르토 토레스는 기교보다 정직한 음을 한땀 한땀 엮는 장인의 연주를 선보였고, 사일런트 클래식 기타를 연주한 스와미 안투네스는 화려한 기교의 재즈 스타일의 연주를 드러냈다.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은 극과 극의 연주들은 그렇게 만났다 헤어지고 헤어졌다 다시 만났다.

1일 열린 쿠바의 전설적인 밴드 부에나비스타소셜클럽의 고별 무대. /사진제공=프라이빗커브

투박하고 따뜻한 아날로그 연주자들 사이에서 가장 세련된 재즈의 맛을 내는 연주자는 스와마 안투네스(기타)와 롤란도 루나(피아노). 두 사람은 쿠바 음악의 본질이 드러나는 곡에선 숨을 죽였다가 듀오나 솔로 세션에선 자신의 색깔을 어김없이 드러냈다.

이를테면 ‘보다스 데 오로’ ‘라그리마스 네그라스’ 같은 정통의 쿠바 음악에선 트럼펫과 타악, 라우드 기타의 투박한 아날로그 향취가 그윽했지만, ‘베인테 아뇨스’나 ‘베사메 무초’ 등 오마라 포르투온도와 함께 한 듀오 곡에선 원곡의 분위기에서 멀어진 재즈 너머의 재즈 느낌이 강했다.

하지만 이런 곡에서도 오마라의 가창은 되레 빛났다. 80대 거장에게서 들을 수 있는 가창이라고 믿기 어려운 신공(神功)이 음정과 박자, 해석에서 두루 펼쳐졌기 때문. 오마라는 가창뿐 아니라, 무대를 이끄는 매너에서도 탁월한 수완을 발휘했다.

‘키사스, 키사스’를 부를 땐, ‘키사스’(quizas, 아마도)라는 스페인어를 모르는 관객을 위해 ‘퍼햅스’(perhaps)란 영어로 바꿔 부르며 관객의 합창을 유도했고, 불편한 걸음걸이에도 가벼운 춤 동작으로 흥을 돋웠다.

이날 무대에서 선보인 18곡은 대체로 음반보다 다소 빠른 리듬으로 흥겹게 전개됐다. ‘아직 우리의 전설은 끝나지 않았다’고, ‘우리의 독창적 선율과 리듬을 기억해달라’고 주문하는 외침으로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