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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식의 시선] ‘개늑시’를 건너는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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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3.04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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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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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와 늑대의 시간'(개늑시)이라는 말이 있다. 땅거미가 지고 노을이 타는 해질녘, 모든 사물이 붉게 물들어 저 멀리 언덕 너머로 다가오는 실루엣이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시간, 즉 낮도 밤도 아닌 애매한 경계에서 사물의 윤곽을 가늠하기 힘든 시간을 뜻하는 말이다. 2007년 인기리에 방영된 16부작 TV드라마 제목으로 사용되기도 했던 이 표현은 프랑스 속담에 어원을 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개늑시를 대하는 지혜로운 태도는 무엇일까. 위험을 감수하며 기다리는 것일까, 위험을 원천봉쇄하기 위해 총을 쏘는 것일까. 우리 삶을 둘러싼 모든 것이 가볍고 빨라지며 자기 이익 위주의 속전속결을 요구하는 시대인 만큼 기르던 개를 죽이는 한이 있더라도 위험을 제거하는 후자가 옳을지 모른다. 하루는 대개 밝거나 어둡거나 둘 중 하나이고, ‘개늑시’는 낮과 밤이 엇갈리는 특정시간대의 특정상황을 지칭한다면 이런 판단이 무리하지 않다.

하지만 개늑시의 메시지는 그런 것이 아니다. 오늘 날 우리가 접하는 대부분의 사안은 선과 악, 적과 동지, 진실과 거짓, 정의와 불의 등의 이분법적 잣대로 무자르듯 재단하기 쉽지 않다. 오히려 양자가 겹쳐진 어렴풋한 실루엣으로 다가오거나 흑백을 가리기 힘든 회색지대에 놓여있기 일쑤다. 패권적 진영논리가 활개치고 파당적 이해다툼이 판치는 세상이지만 일상은 개늑시 상황에 노출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얘기다.

그래서 개늑시는 역설적으로 모호함을 인내하는, 열린 태도를 요구한다. 내가 기르던 개인지, 나를 해치러 오는 늑대인지 분간할 수 있을 때까지, 섣불리 다가가거나 조급하게 총질하지 말고 참고 견디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맥락은 다르지만 뉴욕타임스 기자를 거쳐 컬럼비아대 저널리즘스쿨 종신교수로 재직중인 새뮤얼 프리드먼이 언론인 지망 학생들에게 누차 당부하는 얘기가 있다. “뉴스에 등장하는 이들은 종종 ‘피해자인 약자’ 아니면 ‘가해자인 악당’ 식으로 딱 잘라 묘사된다. 맞는 말일까···. 칼로 두부를 자르는 식의 이분법의 함정과 지나친 단순화의 오류를 경계할 경우, 또 사건 사고가 안고 있게 마련인 애매한 측면이나 섬세한 뉘앙스의 차이에 대해 충분히 열린 자세를 유지할 경우, 그때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을 것이다.”(S. 프리드먼 ‘미래의 저널리스트들에게’)

저널리즘의 임무에 관한 프리드먼의 성찰은 “(자유주의적 감수성과 지적 탄력성 등의) 미덕이 발휘돼야 할 진정한 영역은 선과 악, 가진 자와 못가진 자 사이를 나누는 이념세계가 결코 아니다. 열망이 발휘돼야 할 영역은 따로 있다. 나는 그것을 포괄적으로 말해서 ‘세상을 치유하기’라고 본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다시 앞의 얘기로 돌아가면 어렴풋한 실루엣 혹은 애매모호한 회색지대를 견디는 지혜는 사안의 정체가 분명해질 때까지 기다리는 것일 게다.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돼 있다’는 말도 있다. 선의를 맹신하고 사안을 멋대로 재단하면서 자신의 이익이 조금이라도 다칠 것 같으면 거리에서, 국회의사당에서, 온라인에서 고함치고 주먹 휘두르며 패거리를 짓는 행태는 이제 버릴 때가 됐다.

조금은 뜬금없게 개늑시 등의 얘기를 꺼낸 것은 테러방지법 처리를 둘러싸고 벌어진 여야의 아전인수식 행태와 소동이 답답하게 느껴져서다. 결과만 놓고보면 정부 특히 국정원은 15년만에 원하던 입법을 성취했고 야권은 장장 192시간이라는 전무후무한 필리버스터 기록을 세우면서 존재감을 높였으니 피차 잘 어울린 한판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로 비롯된 엄중한 국내외 안보상황에서 절대선과 절대악의 대결처럼 사안을 이끌고간 여야의 정치력과 리더십은 또 한번 깊은 내상을 입었다. 정치의 통합-치유기능은 오간 데 없고 기득권에 기생한 선거공학적 계산만이 난무한 결과로 탄생한 테러방지법은 ‘국민보호와 공공안전을 위한다'는 취지 대신 ‘불신의 행보’를 거듭해온 국정원에 고삐풀린 칼을 쥐어준 느낌이 짙다. 여야가 회색지대의 존재를 인정하고 개늑시의 잣대로 서로의 입장을 조금씩 배려했으면 치를 비용 다 치르고 이런 졸작을 끌어내진 않았을 것이다.

모든 법은 운영하기 나름이다. 어떤 법이든 그 자체로는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어느 쪽도 아니다. 명확성이 입법의 요체라지만, 운영의 묘를 살려야할 애매하고 모호한 영역은 남기 마련이다. 이런 영역을 처리하는 지혜, 즉 개늑시를 건너는 지혜는 그악하게 덤비지 않고 실루엣이 분명해질 때까지 인내하고 기다리는 것이다.

20대 총선을 앞두고 점점 공천태풍의 소용돌이 속으로 빨려들어가고 있는 정치권에게 개늑시의 지혜를 요구하는 것은 너무 한가한 주문일 수 있다. 하지만 소용돌이가 거세고 실타래가 엉켜있을수록 한 걸음 물러나 석양에 물든 언덕 위 실루엣이 개인지 늑대인지 살피는 여유마저 잃고 마구 덤비면 정말 한순간 훅 갈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런 성찰의 필요성은 정치뿐 아니라 이 시대 우리 사회의 모든 리더그룹에게 요구될 것이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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