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금융, 수 년내 전통은행 사라질텐데

/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KB금융은 지난 12일 이사회 결의를 거쳐 현대증권을 1조2500억원에 인수한다고 공시했다. 인수가격의 적정성 논란이 있으나 이로써 그동안 방치해온 증권 부문을 KB금융의 위상에 맞게 키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가지게 됐다.

2008년 3월 KB국민은행의 한누리투자증권 인수는 그해 9월 공식 출범하는 금융지주체제를 위한 모양 갖추기 성격이 짙었다. 그 이후로도 투자증권부문은 경영층의 변경 등으로 국내 최대 금융그룹에 걸맞는 모습을 갖추지 못하고 현재에 이르게 됐다.


하지만 지난 8년 동안 금융산업 특히 은행산업에 불어닥친 패러다임의 변화와 위기는 이번 딜을 리딩 금융그룹으로의 위상 강화 보다는 생존을 위한 지렛대로 삼아야 하는 지경으로 내몰고 있다.

국민은행의 경우 2008년도 2.98%이던 순이자마진(NIM)이 지난해는 1.53%로 반토막 났다. 그러나 1인당 평균 급여는 2008년도 5700만원에서 2015년도 8200만원으로 50% 가깝게 상승했다. 3월말 통계청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 상위 5%의 급여수준이다.

글로벌 경제가 저성장 저금리의 뉴노멀 체제로 진입한 이상 NIM은 악화될 것이 분명한데 인건비를 중심으로 한 1인당 비용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더구나 핀테크 혁명 때문에 라이센스를 기반으로 보호 받던 전통적 은행의 경계가 점점 허물어져 잠식되고 있다.


ICT혁명이 초래한 산업,경제,금융의 패러다임 변화는 은행의 미래를 한치도 예측할 수 없게 만든다. 이미 경쟁력을 상실한 은행으로서는 당장의 생존을 위하여 비용 축소에 의존해야 하는 안타까운 현실을 맞았다.

지난 1월 열린 다보스 포럼은 제4산업혁명으로 향후 5년동안 710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며 이중 475만개의 은행직을 포함하는 사무직이 사라진다고 했다. 최근 씨티은행은 향후 10년안에 은행원 200만명이 사라진다는 예측까지 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경쟁력 제로의 은행원들이 집단 이기적 저항과 결속을 강화하는 것은 안타깝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고임금으로 유혹하여 우리나라의 유능한 고급 인재들을 독식한 은행업이 어쩌다가 이들을 이토록 무기력하고 생산성 없는 은행원들로 만들었는지 한탄스럽다.

우리나라 은행 만큼 보수적이고 타율적인 산업이 없다. 규제와 인허가의 보호막으로 100년을 살아온 은행으로서는 당연한 귀결이다. 수 년 안에 전통은행은 사라지고 인터넷은행으로 전면 대체될 현실을 생각하면 충격적인 개혁 없이 생존을 기대할 수 없다.

우리나라 금융산업 가운데 그나마 증권산업이 변화 적응력과 생존능력 면에서 상대적으로 우월한 것은 사실이다. 시황산업 특성상 비즈니스 자체에 변화가 내재돼 있고, 인사와 급여 보상 체제의 유연성이 높을 뿐더러 개개인의 직업 정신과 자세가 은행원에 비하여 훨씬 치열하다. 향후 산업 전망도 은행보다 증권이 낫다.

현재 대형 증권회사를 보유하고 있는 타 은행 그룹은 은행 문화를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어 패러다임 급변기에 부합하는 개혁 동력과 타이밍을 별도로 가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러나 KB금융그룹은 이번 현대증권 인수로 생존력과 성장동력을 상실한 은행의 DNA를 바꿀 수 있는 마지막 지렛대를 가지게 됐다. 취약한 증권 부문을 보강하는 기존의 접근법으로는 은행산업이 처한 생존 위기를 돌파할 수 없다. 체질 개혁은 절대절명의 과제다.

은행 체질을 개혁하려면 사람을 바꿔야 하고 사람을 바꾸려면 환경과 문화를 바꿔야 한다.

우선, 가능한 많은 은행 인력과 자본을 증권으로 보낼 필요가 있다. 기존의 CIB(commercial investment banks)모델은 리더십의 충돌과 자원의 분산으로 제 효과를 발휘하지 못해온 것이 사실이다. 중심축을 증권으로 명확하게 이동시켜 환경과 문화를 개조하지 않으면 시행착오만 되풀이할 가능성이 높다.

기업금융, 투자, 트레이딩, 파생, 자산운용 등 자본시장 관련 인력은 당장 보내도 문제없다. 더불어 와해된 국제금융을 증권중심으로 재건하여 글로벌 IB체제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

또한 금융상품의 복잡화,첨단화,글로벌화가 심화됨에 따라 금융소비자의 다양한 니즈를 적합하게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자산관리(WM,PB)와 상품개발의 센터를 증권으로 이동시키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본다.

무엇보다 중요한 조치는 콘트롤타워인 금융지주에 뿌리박힌 은행 DNA를 잘라내고 증권과 글로벌, 핀테크 DNA를 하루 빨리 이식해야 하는 점이다. 당연히 금융 지주의 핵심을 비은행 인력으로 교체할 필요가 있다.

물론 현대증권에 오랫동안 내재된 악습 즉, 대마불사의 안일한 인식과 타 증권사 대비 상대적으로 강한 보수성 제거는 필수 전제 조건이다. 어설프게 추진하다가는 증권의 강점은 사라지고 은행의 단점만 남게 되는 최악의 나락으로 빠질 수 있다.

지금 은행은 화살에 맞아 죽어 가는 환자와 같다. 누가 쐈는지, 왜 쐈는지, 어떤 화살을 쐈는지 따질 겨를이 없다. 지금 즉시 사즉생의 각오와 결단이 절실하다. 은행 DNA를 전면적으로 개조하는 수술이 단행되지 않으면 모두 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