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과학]나도 시민과학자

가끔씩 한 방송국의 책 관련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내가 나갈 때 다루는 책이 주로 과학책이다 보니 다른 패널도 과학책에 대해서 이야기할 만한 사람이 나온다. 카이스트 출신인 어느 가수와는 두 번인가 세 번 같이 그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그녀가 한 말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다. 사람들이 자신을 카이스트 출신이 아닌 가수로 봐줬으면 한다는. 얼마 전 종영된 드라마에도 카이스트 출신 배우가 나왔다. 부모의 반대로 배우의 꿈을 일단 접고 카이스트에 진학했지만 휴학을 하고 그녀는 결국 배우의 길로 나섰다고 한다.


페이스북에서 서울대 홍성욱 교수가 “거꾸로는 없을까? 꿈은 과학도였는데 외모가 출중해서 어쩔 수 없이 배우를 하다가, 결국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다시 과학을 공부하는 배우. 과학이 아니라면 철학도 괜찮고”라는 글을 올리면서 이 이야기가 화두로 떠올랐다. 댓글에 여러 사람의 이름이 언급되기도 했다.

퀸의 브라이언 메이가 먼저 떠올랐다. 그는 원래 천문학도였는데 퀸이 유명해지면서 학업을 중단했다가 나중에 학교로 돌아가서 천문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어느 대학교의 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입자실험물리학자 브라이언 콕스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18살에 이미 밴드 활동을 시작했던 그는 음반도 내고 공연 활동도 활발하게 하던 중 공연 후 버러진 멤버들과의 폭력사태를 계기로 음악활동을 접고 물리학 공부를 시작했다. 대학원에 다니면서 다시 밴드 활동을 시작해서 영국 팝차트 1위에 곡을 올리기도 했다.

배우 헤디 라마르는 발명가로도 유명했다. 특히 이동통신의 기초가 되었던 CDMA 기술 개발자로도 알려져 있다. 연세대 조진원 교수의 이력도 이들 못지않다. 생물학과 재학 중에 라이너스가 TBC 젊은이의 가요제에서 불러서 유명해진 ‘연’이라는 노래를 작곡하고 작사했다. 홍종임과 함께 ‘사링하는 사람아’를 불러서 큰 인기를 얻기도 했다. 대학원 때는 1년 동안 한 라디오 프로그램의 진행을 맡기도 했다.

당연히 과학도가 모두 연예인이 될 수 없고 과학에 매혹된 연예인이 모두 과학자가 될 수도 없다. 하지만 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민과학자가 될 수 있다. 시민과학이란 전문가와 일반인이 함께 참여해 집단지성을 발휘해서 연구를 하는 것을 말한다.


외계 지적 생명체로부터 오는 인공 전파신호를 포착하는 작업을 개인들이 사용하는 PC를 활용해서 진행하는 SETI@Home이 대표적인 시민과학 프로젝트다. SETI@Home이 개인의 컴퓨터 자원을 제공하는 소극적인 시민과학이라면 온라인 사이트 ‘주니버스(Zooniverse)’에서는 일반인들이 직접 참여하는 보다 적극적인 시민과학 프로그램을 만날 수 있다. 은하의 형태학적 분류 작업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갤럭시 주(Galaxy Zoo)’가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시민들의 분류 작업을 바탕으로 천문학자들이 전문적인 연구를 수행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연세대 천문우주학과에서 개발한 시민과학 프로그램이 이 사이트에 등록됐다. 주니버스에는 현재 47개의 다양한 시민과학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몇 년 전에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가 주도해서 야구와 관련된 시민과학 프로젝트인 ‘백인천 프로젝트’가 진행된 적이 있다. 그 결과물은 책으로 출간되었다. 좀 더 적극적으로 현장을 누비는 시민과학 프로젝트도 있다. 캐나다의 환경보호단체인 ‘온타리오 네이처(Ontario Nature)’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통해서 온타리오 지역의 파충류와 양서류에 대한 도감을 작성중이다. 집단지성을 바탕으로 한 시민들의 과학 프로젝트 참여는 이미 시대의 정신이 되었다. 과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과학자가 될 수 있다. 시민과학자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