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빵]죽은 거리와 죽는 거리… 쫓겨나는 사람들

오렌지족은 외제차를 타고 압구정에 모였다. 90년대 젊은이들은 대학로에서 연극을 보고 거리공연을 즐겼으며 신촌에서 쇼핑하고 미용실을 갔다. 2000년대 대학생들은 홍대 힙합클럽을 전전했다. 이들은 신사동 가로수길의 작은 편집숍을 선호했고 이태원의 이국적인 분위기를 즐겼다.

유행을 선도하는 젊은이들을 일컫는 단어 '힙스터'. 힙스터들은 지금 어디서 시간을 보낼까. 대학생 심재우씨(26)는 연남동을 꼽았다. 그는 "연남동에는 주로 맛집을 찾아다닌다"며 "식당도 예쁘고 스타일 좋은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고 말했다.


대학생 이아현씨(24)는 "아기자기한 가게가 많고 편안한 분위기가 매력적인 익선동을 찾는다"며 "골목골목 가게를 찾아가는 재미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들에게 홍대나 이태원, 가로수길은 '복잡하고 시끄러운' 곳, 굳이 찾아가고 싶지 않은 곳이었다.

◇사람 쫓는 프랜차이즈, 사람 쫓아내는 프랜차이즈
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압구정 로데오거리나 대학로, 신촌 등은 젊은이들이 주말마다 찾는 거리였다. 인산인해를 이루던 이곳이 '핫플레이스'로 명성을 잃은 지는 오래. 이제는 '오래된 거리'라는 인식만이 남았다.

건물이 낡았다거나 '아재' 감성의 먹을 것, 놀 것이 거리를 채우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10~20대가 좋아하는 음식점이나 옷가게 매장으로 넘쳐나는 곳이라는 게 3곳의 공통점이다.


그런데도 '올드'한 이미지를 풍기는 이유는 따로 있다. 각 거리가 갖고 있던 개성을 잃은 것. 90년대를 풍미했던 거리와 현재 가장 많은 사람이 찾는 거리, 최근 들어 각광받고 있는 거리는 각각 프랜차이즈 비율에서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


◇'프랜차이즈 왕국' 대학로-가로수길
'꿀빵'팀은 최근 한 달간 압구정, 신촌, 대학로, 이태원, 가로수길, 홍대, 익선동, 망원동, 연남동, 성수동 등을 직접 찾았다. 이들 주요 거리의 1층 상권을 분석한 결과 프랜차이즈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은 대학로와 신사동 가로수길이었다. 전체 매장수에서 프랜차이즈가 차지하는 비율은 80%에 육박했다.

대학로와 대명거리, 대학로 10길에 입주한 155개 점포 중 비프랜차이즈 매장은 31개에 불과했다. 프랜차이즈 매장은 115개, 공실은 3개, 관공서나 병원·공연장 등이 6개였다. 가로수길로 불리는 도산대로 13길과 압구정로12길에 입주한 100개 매장 중 비프랜차이즈 매장은 19개뿐이었다.

최근 몇 년간 주말에 가장 사람이 많이 붐비는 곳으로 꼽히는 홍대나 이태원은 아직 덜한 편이다. 이태원로에 입주한 203개 매장 중 비프랜차이즈 매장은 107개로 프랜차이즈 매장을 상회했다.

반면 힙스터들이 선호하는 공간으로 꼽히는 망원동이나 연남동, 성수동, 익선동 등은 프랜차이즈 매장을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다.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드러그스토어 '올리브영'은 △압구정 일대에는 5곳 △신촌 6곳(연세대 일대 포함) △대학로 3곳 △홍대 4곳 △이태원 3곳 △신사동·가로수길에 2곳이 입점해 있다.

이에 비해 망원동 주변에는 1곳, 성수동 1곳에서만 올리브영(연남동·익선동 0곳)을 찾을 수 있을 뿐이었다.



◇이태원·홍대도 '엑시트' 시작됐다
올해 초 이태원에 와인바를 창업한 안모씨(32)는 비싼 임대료와 권리금 때문에 주요 도로 상권을 포기했다. 대신 지인을 통해 상가 건물 5층에 입주했다.

그는 "큰 길가도 아니고 언덕에 있는 곳에 공실이 나와 알아봤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며 "주말에는 손님이 많아 보여도 평일 장사가 잘되지 않기 때문에 비싼 임대료를 감당하면서 흑자를 내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태원 주요 상권을 찾는 발길도 줄어들고 있다. 이태원 A부동산 공인중개사는 "지난해 5~6월을 기점으로 이태원의 권리금이 내려가고 있다"며 "최근 몇 년 동안 강세였던 경리단길의 권리금은 지난 1년 동안 30% 가량 하락했다"고 설명했다.

고유의 색깔을 잃어버린 홍대 앞도 마찬가지다. 최근 도봉구 창동 '플랫폼창동61'로 사무실을 옮긴 가수 MC메타는 "홍대에서 음악활동을 했을 뿐 아니라 그곳에 살고 학교도 다니고 결혼까지 홍대에서 했다"며 "95년부터 홍대에 있어 왔던 입장에서 지금의 분위기는 예전과 너무 달라 새로운 곳을 찾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