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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창의 사족]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우라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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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6.2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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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기창 =
©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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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맨 먼저 할 일은 모든 법률가(변호사)를 죽이는 거야(The first thing we do, let's kill all the lawyers)."

셰익스피어의 희곡 '헨리 6세'에 나오는 대사 한토막이다. 요크 공작의 사주를 받아 반란을 일으킨 주동자 가운데 하나인 백정 디크는 그렇게 선동한다. 법이 지배계층의 이익만을 대변한다는 불만이 이 섬뜩한 구호에 담겨 있다. 유럽의 중세시대에도 법률가들에 대한 인식은 오늘날과 별 차이가 없었던 모양이다.

로마의 신화에 등장하는 정의의 여신 '유스티치아(Justicia)'는 눈을 안대로 가리고 오른손엔 칼, 왼손엔 저울을 들고 있는 모습이다 (장님의 모습을 하고 있는 동상도 있다). 눈을 가린 까닭은 정실에 좌우되지 말라는 의미다. 저울은 정의를 상징한다. 칼은 드러난 죄에 따른 단호한 처벌을 뜻한다.

모든 사회는 '유스티치아'같은 법률가를 바랄 것이다. 허나 그러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셰익스피어는 그런 세태를 디크의 입을 빌려 드러낸 것이다.

대법원이 지난 16일 화장품업체 네이처리퍼블릭 회장 '정운호 로비의혹 사건'을 계기로 전관예우 관행을 막기 위한 대책을 발표했다. 이른바 '최유정·홍만표' 방지책이다. 주요 내용은 Δ통화녹음을 통한 전화변론 근절 Δ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상고사건 수임 때 연고 대법관 주심 배제 Δ전화변론·몰래 변론 같은 법정외 변론 포괄적 금지 명문화 Δ연고 변호사 수임사건 재배당 Δ법관출신 변호사 처신 교육 Δ윤리자문시스템 구축 Δ부당변론신고센터 개설 Δ변호사법 등 관련 법규 정비 등이다.

그러나 실효성에 의문이 드는 대책이라는 비판이 주류를 이룬다. 대책의 대부분이 대법원규칙을 개정해 포괄적으로 명시한다고 했을 뿐 처벌규정이 없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당장 대한변호사협회는 "판사들이 퇴직한 뒤 변호사 개업을 자제하도록 하는 등 적극적 방안을 기대했는데 그 정도로는 안 된다"며 "별다른 효과가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삼성의 사내변호사로 일한 경험을 바탕으로 삼성의 비리를 폭로한 검사출신 변호사 김용철씨의 회고는 차마 믿고 싶지 않다. "검사는 잡아넣고 판사는 풀어주고 변호사는 그 사이에서 빼먹고, 뒤로 다시 들어가서 호주머니까지 흔들어서 다시 빼먹는 법조 삼자의 공갈극을 보는 것 같았어요."

전관예우를 일부 변호사의 일탈로 치부하기에는 그 뿌리가 깊고 폐해가 심각하다.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속설이 가장 확실하게 드러나는 곳이 인신구속의 장이라고 한다. 특히 한국의 경우 형사사건에서 '성공보수'의 약정을 인정하는 기이한 관행이 존재한다. 전관의 영향력 여부를 반증하는 용어가 바로 '성공보수'인 셈이다.


전관비리의 근원은 따지고 보면 현직(판검사)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관의 영향력을 가능하게 한 현직의 윤리의식과 양심의 실종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이 그래서 설득력 있게 들린다. 전관예우의 적폐는 이제 우리 사법체계의 신뢰성과 공정성을 뿌리째 흔들고 있다. 오죽하면 '권력'보다 '전력'이 더 좋다는 말이 나돌까. 현직에서 퇴임한 뒤 변호사 개업 1,2년 안에 평생 먹고 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서초동 법조타운 주변의 소문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 까닭이 이번 '최유정·홍만표 변호사' 의 사례로 또다시 입증됐다.

그러다보니 법원판결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갈수록 깊어진다. 마지막 인권의 보루 사법부는 국민의 신뢰를 저버린 전력이 없지 않다. 실제로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이 지난 3월초 발표한 국민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형사사법기관의 신뢰도는 낙제점 수준이었다(조사는 지난해 20세 이상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했다). 이 조사에서 국민들은 법집행의 공정성에 대해서 아주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10명 중 8명이 법집행 과정에 돈이나 권력, 지위에 따른 차별이 존재한다고 여겼다.

형사사법기관의 신뢰도를 묻는 질문에 '신뢰한다'는 답변(괄호안은 '신뢰하지 않는다')은 경찰24.9%(36.8%) 법원24,2%(41.6%) 검찰16.6%(51.8%) 순으로 나타났다. 법원과 검찰의 신뢰도가 경찰보다도 낮았다. 2004년 같은 조사에서는 법원이 56.4%로 신뢰도가 가장 높았고 검찰(43.3%) 경찰(37.2%)순이었다. 불과 11년 만에 법원과 검찰의 신뢰가 곤두박질쳤다.

정의의 여신 '유스티치아'가 눈을 안대로 가린 까닭이 정실에 좌우되지 말라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눈 꼭 감고' 정의와 양심을 외면하라는 유혹이라고 비아냥대도 할 말이 없게 되었다. 형사사법기관이야말로 국민의 신뢰가 존재의 근원이자 정당성 확보의 토대일 것이다.

국가인권위원장을 역임한 안경환 서울대 법대 명예교수는 최근 '법과 정의와 법률가의 윤리'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법조삼륜의 관계를 이렇게 설명한다. "법조삼륜 사이에는 대학과 사법연수원에서 맺어진 특별한 인적 유착관계가 존재한다. 사건 당사자가 변호인을 선택하는 중요한 기준은 담당검사나 판사와 '이야기가 통할 수 있는' 사람이다. 전관예우, 사건브로커, 로비 등 한국 법조계의 비리의 온상은 인적 연고 앞에 무뎌진 법조인의 윤리의식에 있다."

그동안 법조비리가 터질 때마다 예외 없이 대책이 쏟아져 나왔지만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되곤 했다. 안경환 명예교수의 지적처럼 법조인, 특히 판검사의 양심과 윤리의식 회복이 선행되지 않고는 백약이 무효한 상황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라!(Fiat Justitia Ruat Caelum)' 법대생들이 입학하는 순간부터 귀가 아프도록 듣는다는 라틴어 법언(法諺)이다. 법조인들이여, 부디 초심을 잃지 말기를!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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