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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조상들은 에어컨도 없이 어떻게 여름을 났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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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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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07 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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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학진흥원에 보존된 조선시대 기록으로 보는 우리 조상들의 피서법

우리 조상들은 1396년 조선 한양에 설치된 석빙고에 얼음을 저장해 여름에도 얼음을 먹곤 했다. /사진제공=한국국학진흥원
우리 조상들은 1396년 조선 한양에 설치된 석빙고에 얼음을 저장해 여름에도 얼음을 먹곤 했다. /사진제공=한국국학진흥원
"절 뒤에 맑은 여울과 무성한 숲이 있어 더위를 식힐 만합니다."

1618년의 전남 영암군의 어느 여름날. 다리에 종기가 생겨 산을 오르지 못하던 한 사내에게 곁을 지나던 늙은 승려가 말을 걸었다. 승려를 따라가자 녹음이 자리에 가득하고 한 줄기 흐르는 샘이 콸콸 소리를 내면서 아래로 내려가는 공간이 펼쳐졌다. 폭포를 이루며 하얗게 물방울을 튀기며 내려가는 물이 층을 이루는 절경이었다.

"이곳의 승려들은 물장난을 잘하는데 볼만합니다." 폭포연, 혹은 북지당이라고 불리는 폭포 아래 연못에서는 승려 7~8명이 놀고 있었다. 발가벗고 연못 위에 서서 두 손으로 '그 곳'을 가리고 다리를 모아 한 사람씩 연못 가운 데로 다이빙하는데, 물에 뛰어든 지 한참이 지나서야 물속에서 머리가 솟구쳤다.

위 글은 제호(霽湖) 양경우라는, 조선 선조때의 한 문신이 사내가 남긴 기행문 '역진연해군현잉입두류상쌍계신흥기행록'(歷盡沿海郡縣仍入頭流賞雙溪新興紀行錄)에 담긴 글이다. 전국 곳곳을 다니며 여행을 한 기록이 담긴 만큼, 당시 사람들이 여름을 어떻게 보냈는지에 대한 기록이 짧게나마 수록돼있다.

우리 조상들은 시원한 에어컨 바람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없던 시절 무더운 여름을 어떻게 났을까. 정월대보름(음력 1월15일)부터 여름날의 무더위를 미리 팔아치운 것을 보면, 조상들에게도 여름 무더위는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음이 분명하다. 한국국학진흥원에 남아있는 기록을 통해 조상들의 여름나기 방법을 알아봤다.

우리 조상들의 대표적인 피서법은 흐르는 강물에 발을 담그는 '탁족'(濯足)이었다. 조선시대 세시풍속을 기록한 '동국세시기' 유월조에는 "삼청동 남북 계곡에서 발씻기 놀이를 한다(三淸洞... 南北溪澗 爲濯足之遊)."는 기록이 있다. 주로 체면을 중시하는 양반들이 발만 담그는 것으로 더위를 식히곤 했다.

조선 중기에 제작된 작자미상의 계회도인 '연정계회도'. 보물 제871호로, 소속이 같은 문인들의 친목도모와 풍류를 즐기기 위한 모임을 그린 그림이다. /사진제공=문화재청
조선 중기에 제작된 작자미상의 계회도인 '연정계회도'. 보물 제871호로, 소속이 같은 문인들의 친목도모와 풍류를 즐기기 위한 모임을 그린 그림이다. /사진제공=문화재청

탁족 풍속은 '탁족도'라는 그림으로도 전해 내려오고 있다. 대부분의 탁족도는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무릎까지 바지를 걷어 올리고 다리를 물에 담근 모습으로 그려졌다. 표암 강세황은 '송도기행첩' 화첩에 바지만 걷어 올린 채 계곡에 발을 담그고 있는 사람, 웃옷을 벗고 있는 사람을 그려넣기도 했다.

반면 서민들은 온몸을 차가운 물 속에 풍덩 빠트렸다. 서민의 피서법이었던 '강수욕'(江水浴)이 그것. 조선시대 이전에는 강가의 논밭에서 일하던 서민들이 강수욕을 매우 즐겼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서민들의 문화이다보니 관련 기록이 거의 없다.

'물맞이'를 의미하는 '유두'(流頭)는 '동류두목욕'(東流頭沐浴)이라는 말에서 나왔다. 신라시대부터 시작된 이 풍속은 고려시대 쓰인 '동도유속집'에 그 내용이 자세히 나와있다. "6월 보름을 유두일이라 하고 맑은 개울에서 멱을 감고, 궂은 것을 털어버리고 선비들은 유두 음식을 차려 물가에서 풍월을 읊는 유두연(流頭宴)을 베풀었다."

유두날 전후로는 햇과일인 참외, 오이, 수박을 먹었고, 여인들은 떡을 빚고 국수를 말았다. 이렇게 만든 음식으로 사당에 제를 올렸는데 이를 '유두천신'(流頭薦新)이라 했다. 삼복이 끼어있는 날 부인들은 약수터를 찾아 머리를 감고 '물맞이'를 하며 놋솥에 밥을 지어 제를 드렸다.

여인들의 물맞이 장소로는 서울 정릉 계곡과 광주시 무등산의 물통폭포, 제주 한라산 선판봉 폭포가 적합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최남선의 '조선상식' 풍속편에는 물맞이날 아낙네와 기생들이 패를 지어 모여들고, 여염집 부녀자들은 흰 차일막을 치고는 종일 머리를 감고 몸에 물을 적셨다고 나와 있다.

조상들은 얼음을 먹기도 했다. 다만 얼음은 매우 귀해서 얼음을 한 조각 먹으려다 싸움이 붙거나 감옥에 가기도 했다. 조선 선조 때이던 1607년, 한 노비가 너무 더운 나머지 시장통에서 남의 얼음 조각을 입에 하나 넣으면서 얼음 주인과 싸움이 붙었다. 얼음 도둑은 옥에 갇혀서 매를 21대나 사납게 맞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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