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대학을 나와야 부자가 되나요?" 자식이 물어보면

/그래픽=김현정 디자이너

# "아빠, 꼭 대학을 나와야만 부자가 되나요?"


며칠 전 만난 대학동기인 C는 지난달 고2인 둘째 아이로부터 대뜸 이런 질문을 받고는 버럭 화를 냈다고 씁쓸히 웃으며 말했습니다.

C의 첫째 아이는 공부를 잘해 좋은 대학에 당당히 입학했지만 둘째는 첫째와는 많이 달라 C에겐 늘 걱정거리였습니다. 그런데 지난달 여름방학을 하며 둘째가 갖고온 성적표를 보니 이대로는 도저히 인서울 대학(=서울 소재 대학)에 갈 수준이 못된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둘째한테 "너, 지금부터 재수할 준비나 하라"고 통보했습니다. 그랬더니 둘째가 한다는 소리가 "아빠, 꼭 (좋은) 대학을 나와야만 잘 사는 건 아니잖아요?"라고 대꾸했다고 합니다.

이런 말을 듣고 C는 호통치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은) 대학을 안 나오면 (좋은 데) 취직도 못하고, 돈도 많이 못 벌어. 결혼도 못해. 그러니 닥치고 공부나 해."

아마도 한국의 학부모라면 십중팔구 C와 같은 대답을 했을 겁니다.

# "우리 사회에는 '학벌' 효과가 분명히 존재한다."

학부모들 사이에는 대한민국이 '학벌' 사회라는 믿음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습니다. 한국교육개발원의 ‘2010년도 교육여론조사’를 보면, 전체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우리 사회에서 ‘학벌과 연줄’을 성공과 출세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고 있습니다.

2014년 한국리서치의 설문에 따르면, '학력이 좋을수록 원하는 배우자를 만나기 쉽다'란 질문에 응답자의 82.8%가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우리 아이들도 어렸을 때부터 출신 학교의 간판에 따라 인생의 수준이 달라진다는 이야기를 숱하게 듣고 자랍니다.

실제로 경제학계에서는 한국 사회에 ‘학벌’ 효과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해왔습니다. 여기서 ‘학벌’은 학력(중졸, 고졸, 대졸 등)의 차이와 출신대학의 서열 상의 지위를 모두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다수의 경제학 연구들이 출신대학의 서열에 따른 '임금 프리미엄'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습니다. 즉 상위권 대학 출신들이 높은 연봉을 받는다는 게 사실이라는 거죠.

올해초 경제학회지 『경제학연구』에 실린 연구논문(상명대학교 김영철 교수)에서는, 학벌이 높을수록 전반적인 삶과 일자리에 대해 만족할 확률이 현저히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학벌'이 경제적 보상인 ‘임금 프리미엄’을 넘어서 전반적인 삶과 일자리 만족도 등 비경제적인 측면에까지 의미있는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우리의 학부모들은 이 점을 몸소 체득했기에 자식들에게 어렸을 때부터 "꼭 (좋은) 대학을 나와야한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하는 겁니다. 그러니 대학동기인 C의 대답은 결코 틀리지 않습니다.

# “전 세계 억만장자(billionaire) 가운데 약 3분의1은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

자산정보업체 웰스엑스(Wealth-X)는 해마다 전 세계 억만장자들을 조사한 보고서를 발표합니다. 올해는 지난 10일(현지시간)에 '2015~2016 억만장자 인구조사(billionaire census)' 보고서를 발표했습니다.

여기서 억만장자란 부채를 차감한 순자산이 10억 달러(약 1조원) 이상인 슈퍼리치(Ultra High Net Worth, UHNW) 최고단계에 있는 사람을 지칭합니다. 2015년에는 억만장자의 수가 2473명이었습니다.

슈퍼리치로 불리려면 순자산이 최소 3000만 달러(약 300억원) 이상을 보유해야만 가능합니다.

이 보고서는 억만장자들의 공통적인 특성을 분석했는데, 특히 눈에 띄는 것이 바로 학력 사항입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억만장자의 약 70.1%가 대학을 나왔는데, 그중 억만장자를 가장 많이 배출한 대학은 하버드대학(Harvard University)이고, 2위는 스탠퍼드대학(Stanford University)입니다.

그리고 억만장자 가운데 석사 학위를 가진 사람은 22%에 불과했고 박사 학위 소지자는 10%도 안됐습니다. 더욱이 변호사와 의사는 3.4%와 0.7%에 불과해, 슈퍼리치가 되기 위해선 변호사나 의사가 돼선 안된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억만장자의 학력 사항을 보면 부자가 되기 위해서 꼭 대학을 나와야 하는 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대학을 나온다고, 가방끈이 길다고 부자가 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도 결코 아닙니다.

만약 웰스엑스의 억만장자 보고서가 C씨와 똑같은 질문을 받았다면 "대학졸업장은 슈퍼리치가 되기 위한 필수조건이 아니다"라고 분명히 대답했을 겁니다.

# “학교 교육(formal education)은 밥 먹고 살아가게 하지만, 자가 교육(self-education)은 부(富)를 키운다.”

지난 30년 동안 1200여명에 달하는 슈퍼리치들을 만나서 인터뷰를 행한 스티브 시볼드(Steve Siebold)는 그의 책 『How Rich People Think』에서 슈퍼리치들을 부자로 만든 것은 대학과 같은 학교 교육이 아니라 자가 교육이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시볼드는 예를 들어, 세계적인 투자자인 워런 버핏(Warren Buffett)은 하루 일과의 80%를 독서에 할애하고 있고, 세계 최대 갑부인 빌 게이츠(Bill Gates)는 매년 50권의 책을 읽는다며 많은 성공한 슈퍼리치들이 엄청난 독서를 통해 평생 배우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갑부들의 집을 방문하면서 공통적으로 발견하는 게 책들이 가득한 찬 거대한 서재라며, 이들이 어떻게 슈퍼리치가 됐는지 짐작하게 해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 '수능 D-100일'

지난 9일은 올해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딱 100일 남는 날이었습니다. 이날 과목별 점수 향상법, 최적의 마무리 전략, 취약영역 보완법, 각종 수능 대박 기원 이벤트 등이 무수히 쏟아졌습니다.

모든 학부모들이 이날 자기 자식이 좋은 점수를 받아 좋은 대학에 가기를 기원했을 겁니다.

아무리 웰스엑스의 억만장자 보고서에서 전 세계 슈퍼리치 억만장자 가운데 3분의1이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고 말해도, 학교 교육이 중요한 게 아니라 자가 교육이 정말로 중요한 거라고 아무리 외쳐도 모두 그냥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보낼 뿐입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은 '학벌' 사회라는 믿음이 너무나 강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대학을 나와야 좋은 데 취직하고 연봉도 많이 받을 수 있고 승진도 빠르고, 좋은 배우자도 만날 수 있고, 전반적인 삶과 일자리에 대한 만족도도 높아진다는 믿음이 결코 깨지기 어렵습니다.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좋은) 대학을 나오지 않고도 전 세계 슈퍼리치 억만장자 반열에 오르는 사람이 쏟아져 나와야 '학벌' 사회에 대한 믿음이 깨질라나요?

그때까진 자식이 “꼭 대학을 나와야만 부자가 되나요?”라고 묻는다면 우리 학부모들은 "(한국에선) 당연하지"라고 대답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