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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친일파 재산환수…"극히 일부만 되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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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15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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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수 관련 소송 97건 중 93건 종결…97% 승소 전문가들 "너무 늦게 시작돼 못 찾은 재산 많아"

(서울=뉴스1) 구교운 기자 =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강원 원주시가 시청 앞 광장에 조성한 무궁화 동산을 찾은 시민들이 관내 어린이집에서 직접 만든 태극기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다. ./뉴스1 © News1 권혜민 기자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강원 원주시가 시청 앞 광장에 조성한 무궁화 동산을 찾은 시민들이 관내 어린이집에서 직접 만든 태극기 작품들을 감상하고 있다. ./뉴스1 © News1 권혜민 기자

광복 71주년을 맞았지만 친일반민족행위자들의 재산을 되찾는 작업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조사가 너무 늦게 시작된 탓에 극히 일부만 되찾아왔다는 지적도 나온다.

15일 법무부에 따르면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 환수 관련 소송 97건 중 93건이 종결됐다. 93건 중 91건에서 승소해 승소율은 97%를 기록했다.

행정소송 71건 중 69건이 종결됐고 이중 67건에서 최종 승소했다. 국가소송 15건과 헌법소송 9건은 모두 승소했다.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는 2006년 7월 대통령 직속으로 설치돼 2010년 7월까지 일제 강점기 당시 친일반민족행위로 모은 재산을 조사했다.

조사위는 이완용, 송병준 등 168명을 조사해 여의도 면적의 1.3배에 해당하는 1113만9645㎡를 환수했다. 이완용은 을사오적 중 1명으로 고종을 협박해 을사늑약 체결을 주도했다. 내각총리대신에 오른 뒤에는 일본과 한일병합조약을 맺었다. 송병준은 헤이그 특사 이후 황제 양위운동을 벌였고 이완용 내각이 들어서자 국권피탈을 위한 상주문을 제출하는 등 행위를 했다.

친일반민족 행위자 이진호의 경기 고양시 벽제동 소재 임야 2만3000㎡는 국가귀속결정이 내려졌지만 후손이 소송을 내 결국 돌려주기도 했다. 이진호는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자제단을 구성해 시위대를 해산시켰다. 이후 조선총독부 학무부국장, 중추원 부의장을 지냈다.

현재 진행 중인 4개 사건은 친일반민족행위자 이해승과 관련 있다. 그는 1910년 일제로부터 후작 작위를 받았고 1942년 조선귀족회 회장에 오른 뒤 조선총독을 방문해 일제 육군과 해군에 1만원씩 국방헌금을 냈다. 그랜드힐튼서울 호텔의 이우영 회장이 이해승의 손자다.

이 회장은 경기 포천시 임야 등 192필지(공시지가 110억원대)에 대해 국가귀속결정 처분 취소 소송을 내 대법원에서 승소했다. 법무부는 지난해 10월 대법원에 재심을 청구해 현재 심리가 진행되고 있다.

법무부는 192필지 중 179필지에 대해선 소유권이전등기 청구 소송을 내 1심이 진행되고 있다. 친일재산확인결정처분 취소 소송과 부당이득금반환 소송에선 국가가 2심에서 승소했고 대법원 판단을 앞두고 있다.

친일재산 환수 작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지만 친일재산 국고 환수를 위한 작업이 너무 늦게 시작돼 실제로 되찾은 재산은 극히 일부에 그쳤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사위 상임위원으로 참가했던 이준식 박사(60)는 "해방 이후 바로 친일청산을 했다면 더 많은 재산을 찾아내 환수했을 것"이라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그는 한국광복군 총사령관을 지낸 지청천 장군의 외손자이기도 하다.

그는 "토지 관련 공부(公簿)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확인했다"면서도 "오랜 시간이 지나 공부가 소실되는 등 문제로 찾지 못한 것도 많다"고 지적했다.

이 박사는 "일제강점기 때 친일반민족 행위자들이 축적한 막대한 재산 대부분은 대부분이 후손들에 의해 처분됐다"면서 "대부분 재산이 법망을 빠져나갔다"고 말했다.

친일재산귀속법에 따르면 제3자가 선의로 취득하거나 정당한 대가를 지급하고 튀득한 재산은 귀속할 수 없다. 후손들이 재산을 제3자에게 처분했을 경우 되찾기 어려운 것이다.

이 박사는 "찾아낸 친일재산은 극히 일부"라며 "상징적 의미에서만 친일재산을 귀속시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사위 사무처장을 지난 법무법인 해마루의 장완익 변호사는 상설기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 변호사는 "조사위 활동으로 100% 환수했다고 볼 수는 없다"며 "정부 부처 내에 TF(태스크포스) 형식으로라도 조사를 담당하거나 적어도 친일재산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조직이 남아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지자체 차원에서 친일재산으로 의심이 되는 재산이 있을 때 친일재산 여부에 대한 결정을 내리거나 의견을 낼 수 있는 곳이 있어야 한다"며 "지금은 그런 기능을 할 조직이 남아있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조사위 활동 이후 소송을 담당하는 법무부나 국유재산을 담당하는 기획재정부에서 관련 기능을 담당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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