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과시장]새로운 낙인(烙印)

권재칠 변호사./ 사진=머니투데이DB

낙인은 불에 달구어 찍는 쇠도장을 말한다. 그래서 씻기 어려운 부정적 평가를 받는 것을 '낙인 찍힌다'고 한다. 어떤 사람에게 낙인이 찍히면 그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상황이 더욱 나빠지는 경우도 있다. 이를 낙인 효과라고 부른다.

낙인과 유사한 형벌로 얼굴에 글자를 새겨 넣는 자형(刺刑)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때는 태장도유사의 5가지 형벌이 기본으로 정해져 있었고, 자형은 부가적으로 시행됐다. 기록을 보면 주로 도적질을 하다 붙잡힌 죄인이 자형에 처해졌다. 전과자임을 알려 수치심을 주고, 요주의인물로 관리하려는 목적이었다고 한다.


오늘날에도 낙인 또는 자형과 비슷한 형벌이 있다. 바로 전과기록이다. 형의 실효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벌금형은 집행이 종료되고 2년이 지나야, 3년 이하의 징역을 산 경우에는 5년이 지나야, 3년을 초과하는 징역을 산 경우에는 10년이 지나야 형이 실효된다. 형이 실효된다고 모든 공적 기록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이렇게 정해져 있다.

성범죄자에 대한 전자발찌부착 명령과 신상정보 등록·고지 명령도 이와 비슷하다. 성범죄자는 법원 명령을 받으면 자신의 이름과 집 주소, 연락처 등이 적힌 신상정보를 수사관서에 제출해야 한다. 현행법상 이 정보는 20년간 보존되는데 최근 정부는 이 기간을 최대 30년까지 늘리겠다고 했다. 법원이 신상정보 고지 명령을 내리면 이 정보는 일반인에게도 공개된다.

기한 없이 평생 안고가야 하는 낙인도 있다. 예컨대 검찰·경찰은 조직폭력 가담자를 계보로 관리한다. 10~20대에 조직폭력의 세계에서 활동을 하면 40~50대가 돼도 관리를 받는다. 그 조직의 구성원이 아닌 추종세력이라는 형태로 평생을 조폭으로 취급당하는 경우도 있다. 이미 폭력조직이 없어지고 새 인생을 살고 있더라도 몇 년에 한 번씩은 조직폭력 단속에 연루되기 때문이다.


최근 법조계에서 회자되는 낙인은 '전관'이다. 판사 출신 최유정 변호사, 검사장 출신 홍만표 변호사가 법조비리로 잇따라 구속 기소되면서다. 전관예우에 대한 비판이 거세졌고 전관은 명패에서 낙인으로 추락했다. 일각에선 판·검사를 종신으로 복무시키고 퇴직 후 변호사 개업을 못하게 하는 방안도 추진 중이라고 한다.

전관 낙인은 언제 생기고 언제까지 남을까? 경우를 나눠 봤다. 일단 개업을 하면 근무했던 곳의 사건을 1년 동안 취급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으니 사건 수임에 있어서는 1년이다. 그 다음으로 대한변협에서 전관의 사외이사 겸직을 3년간 제한하기로 했으니 사외이사 취임에 있어서는 3년이 될 듯하다.

대법관으로 퇴임했다면 기준은 더 엄격해질 수 있다. 요즘 대법관 후보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대법관 후보자에게 퇴임 후 변호사 개업을 할 것인지를 묻는 일이 관행처럼 돼가고 있다. 최근 3차례의 대법관후보 인사청문회에서 후보자 모두가 변호사 개업 포기를 선언했다. 그렇다면 이들은 퇴직 후 평생 변호사를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변호사 개업을 평생 못하게 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의문이 든다. 통상 50대 초반 정도에 대법관이 되고 6년 후 퇴임하면 50대 중후반이다. 우리나라 기대여명표에 의하면 퇴임 후 최소 20년, 많게는 30년 이상을 법조인으로 살아야 한다.

이는 특정인에게 새로운 낙인을 찍는 것이 아닌가. 대법관 출신 변호사는 무조건 전관예우를 받는다는 낙인 말이다. 대법관 출신 변호사가 이 기간 동안 우리 법률문화 발전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제할 수 있을까. 전관 낙인에는 법적 근거나 기한도 없다. 백세시대가 도래해 그 낙인을 감당해야 할 기간이 더 길어질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