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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 폭파 사건부터 '총풍' 등 이른바 '북풍'과 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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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세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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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8.31 0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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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300][런치리포트-안보 정치③]15대 대선 이후엔 영향력 약화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그래픽=이승현 디자이너
19대 대통령 선거를 1년 4개월여 앞두고 안보 이슈가 정국을 끌고 있다.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수차례 이어진 미사일 도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시험 발사 성공, 북한 고위급 간부의 탈북, 한반도 안보를 위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부지 논란까지 연일 안보 공세로 국내 여론은 '사분오열' 갈등에 치닫고 있다.

과거 대선이 가까워질 수록 이 같은 안보 이슈는 선거의 큰 변수로 작용했다.

보수여당 입장에서는 대선 뿐 아니라 총선에서 북한이 우리 남한 내 정치에 영향을 미친다는 이른바 '북풍'의 혜택을 받기도 했다. 선거를 앞두고 안보 이슈가 터질 때마다 보수세력을 결집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수정당의 위기 탈출구 역할을 했던 '안보몰이'는 때로는 역풍을 맞아 야당에게 승리를 내주기도 했다. 다만 15대 대선 이후 '북풍'이라는 이슈는 과거보다 훨씬 약해졌다는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어찌 잊으리오...'KAL 858 폭파' 와 김현희 압송


1987년 11월 29일 인도양 상공에서 사라진 대한항공 858편. 이후 우리 정부는 북한의 공작원 김승일, 김현희에 의해 폭파됐다고 밝혔고, 음독자살 시도 후 살아남은 김현희는 빠르게 국내로 압송됐다. 탑승객 115명 전원 사망.

현재까지 KAL 폭파 사건에 대해서는 논란이 많지만 이 사건의 진위 여부를 떠나 그해 12월 13대 대선에 영향을 큰 영향을 미쳤다.

전두환 정권 이후 군사정권 종식에 대한 사회 분위기는 뜨거웠지만 'KAL 폭파'라는 '북풍'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불안 요소를 키우며 노태우 민정당 후보에게 표를 던지게 했고, 노 후보는 당선됐다.

◇'남로당 이후 최대 간첩단 사건'

중부지역당 사건은 1992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10월 6일 국가안전기획부가 '남로당 이후 최대 간첩단 사건'이라고 주장하며, 95여명을 간첩 혐의로 구속하고 수백여명을 적발한 사건이다.

당시 안기부는 " '남한 조선노동당' 가담자 95명을 적발해 이 가운데 '조선노동당 중부지역당' 총책 황인오씨 등 62명을 구속하고 300여명을 추적중이다"라고 발표했다.

안기부가 발표한 '중부지역당' 사건은 당시 평민당 후보 김대중의 비서가 관여됐다는 사실이 유포됐고, 여당 총재였던 김영삼 후보를 당선시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 '북풍'의 역풍...'총풍 사건'과 '오익제 편지 사건'

북풍의 절정은 1997년 15대 대선이라고 할 수 있을 만큼 각종 사건이 터졌다. 그러나 이 같은 북풍을 노린 선거 승리전략이 역풍으로 작용하면서 이후 북풍의 영향력을 떨어뜨리는 계기가 됐다.

1997년 12월 제15대 대선 직전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 측에서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청와대 행정관 등 3명이 베이징에서 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참사 박충을 만나 북한의 휴전선 인근에서 무력 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했다는 혐의로 기소되는 일이 발생했다. 이른바 '총풍'사건이다.

또 그 해 8월 월북한 오익제 전 새정치국민회의 고문이 대선 직전 김대중 국민회의 후보에게 '북한 정권에서도 김대중의 대선 승리를 기대하고 있다'는 취지의 편지를 보낸 '오익제 편지 사건'도 있다.

1997년 대선 3주 전인 11월 말에 오익제 편지를 발견한 안기부는 12월 5일부터 편지 내용을 언론에 공개했고, 12월 12일 오익제가 평양방송에 출연해 자신과 김대중 후보의 친분을 과시하며 '고마운 김대중'이라는 언급을 녹음해 언론사에 배포했다.

이 밖에도 그 해 대선 직전인 12월 11일과 12일 안기부는 해외에 체류 중인 재미교포 윤홍준을 시켜 김대중 후보가 북한으로부터 대선자금을 받았다는 취지의 기자회견을 하게 했다.

하지만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고, 검찰 수사 결과 안기부 2차장 산하 203실의 주도로 이뤄진 조작임이 밝혀져 이대성 203실장을 비롯한 안기부 직원 5명과 윤씨가 구속됐다.

결국 이 같은 '북풍 몰이'에도 불구하고 조작 사건임이 밝혀지면서 김대중 후보가 39만 557표 차이라는 박빙의 승부로 승리를 거뒀고, 북풍의 쇠퇴가 시작됐다.

이후 2002년 16대 대선에서는 북한바 농축우라늄 핵개발 프로그램 시인으로 촉발된 '2차 북핵 위기'와 당시 민주당의 노무현 후보의 장인을 둘러싼 '좌익 논란'이 다시 '북풍'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노 후보가 장인에 대한 '좌익논란'에 대해 '아내를 사랑해 결혼했다', '아내를 버려야 하나'라는 되물음으로 북풍을 정면 돌파해 대선에서 승리했다.

아울러 2007년 17대 대선 직전에서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2차 남북 정상회담으로 남북 간 분위기 띄우기에 집중했지만 표를 얻는데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이에 따라 17대 대선에서는 당시 야당이었던 이명박 새누리당 후보가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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