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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금을 버렸던 그녀, 다시 애절의 선율로 친구를 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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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고금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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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9.03 0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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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5년 만에 새 음반 '고요의 시간'낸 해금 연주자 꽃별…"경계없는 시대에 '서로'느끼는 음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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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만에 새 음반을 낸 해금 연주자 꽃별. 그는 "어느날 문득, 해금이 나와 맞지 않는 것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시간이 지나 해금이 어쩔 수 없는 내 친구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사진제공=소노르뮤직
5년 전, 꽃별(이꽃별·36)은 음반 ‘숲의 시간’을 통해 해금이 국악의 틀에서 벗어나 세계적 범용성에 부합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뛰어난 주선율이 아닌, 보조적 협력의 악기로 나섰을 뿐인데도, 그 선율과 사운드는 마치 재즈를 듣듯 자유롭고 열려있었다. 나무보다 숲을 본 ‘지혜의 숲’ 같은 음반이었다고 할까.

연주가 아닌 음악을 만드는 좋은 재주를 지닌 그의 다음 행보를 무척 기대했는데, 그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음반 발매 리스트에도, 이렇다 할 무대에서도 그의 이름을 찾아보긴 쉽지 않았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어느 순간 무대가 무서워지더라고요. 그럴수록 ‘해금이 내게 안 맞나?’하는 생각도 많이 했죠. 무대는 두려웠지만 늘 극복하면서 올라갔는데, 어느 순간 그렇게까지 해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하면서 해금을 그만둬야겠다는 결심이 서더라고요.”

다시는 안 볼 것 같지만, 어느새 ‘절친’이 되는 인간관계처럼, 해금에 대한 그의 태도도 시간이 흐르면서 달라졌다. 햇볕 아래 그림자로 곁을 지키는 해금은 이제 그가 가장 자연스럽게 말할 수 있는 친구로, 자기 생각을 대신 전해줄 표현의 도구로 성큼 다가섰다.

최근 내놓은 음반 ‘고요의 시간’에서 꽃별의 해금은 다시 ‘숲의 시간’의 연작처럼 움직인다. 그 일관성의 음들이 얘기하는 주제는 ‘열린 가치와 태도’들이다. 해금을 두고 애증의 관계가 반복되듯, 그의 선율도 ‘정답’을 얘기하지 않는다.

국악이 들어가는 음악의 룰 같은 형식은 벗어던진 지 오래고, 해금 음반인지 클래식인지 재즈 음반인지 논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할 만큼 그는 ‘음악’을 완성했을 뿐이다. ‘숲의 시간’이 그런 형식을 벗어 던진 미니멀리즘 음악의 입구였다면 ‘고요의 시간’은 숲의 음악 구석구석 들여다보는 현미경 같은 산행이다.

해금을 버렸던 그녀, 다시 애절의 선율로 친구를 얻다
“숲이라는 건 자연의 숲을 말할 수도 있지만, 누군가가 모여 사는 인간 세상을 의미할 수도 있잖아요. 어떤 덩어리가 있는 그곳을 채우는 이른 아침부터 밤까지 시간을 새 음반에서 차례로 얘기하고 싶었어요. 새벽의 숲에 갔을 때 느꼈던 것들, 평소 사람 소리가 섞일 때 들리지 않았던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어떻게 음악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가 이번 작업에서 가장 어렵고 재미있는 부분이었죠.”

첫 곡 ‘새벽 숲’부터 그의 선율은 ‘배반’하지 않는다. 피리가 선두로 나선 국악스러움에 클래식 기타가 받치니 팝의 기운이 첨가되고, 해금의 깊고도 묵직한 소리 뒤편에 피아노가 달라붙어 재즈의 세련미를 단단하게 수놓는다.

무엇이 시작이고, 무엇이 후렴인지 알 길 없는 구성은 해 질 녘에 안성맞춤인 ‘살랑, 작은 바람’을 지나 마지막 곡 ‘그 봄날’까지 면밀히 이어진다. 구성만 모호한 것이 아니라, 연주 파트의 주인공이 불분명한 것도 이 음반의 특징이다.

어떤 악기 연주도 다 들리지만, 어느 누구도 섣불리 나서지 않는다. 꽃별은 “새 음반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해금이 주인공이 아니어야 한다는 점”이라며 “너무나 분명한 선율이라도 최대한 도드라지지 않게 연주하는 것이 관건이었다”고 했다.

해금은 악기 특성상, 굵고 애절한 선율이 튈 수밖에 없는데도 경계 없는 시대에 사는 우리들의 모호함의 특성을 반영하듯 숨을 죽이고 템포를 늦췄다.

해금을 버렸던 그녀, 다시 애절의 선율로 친구를 얻다
“국악 중심으로 연주할 땐 해금 자체에 집중을 많이 했어요. 그래서 뽐내듯 튀는 연주도 많았고요. 하지만 지금보다 더 해금다운 선율을 썼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중요한 건 이 음악이 귀로 들을 때 막 꽂히는 선율이 아니라, 이질감 없이 듣는데도 듣고 있지 않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어요.”

해금이 각 곡의 20% 정도 차지하는 낮은 비율에도 100%처럼 느끼는 것은 ‘공명’(共鳴) 때문이다. 모든 악기가 울려 퍼지도록 공간감을 중시한 덕분에, 악기들은 서로 해치지 않으면서 서로를 느낀다.

“‘고요의 시간’은 폭풍 전보다 폭풍이 지나간 뒤에 그 의미를 절실히 느끼잖아요. 그렇게 들어주길 바라는데, 혹시 지루하다고 느낄까 봐 걱정이에요.”

무경계를 원하는 아티스트의 바람은 결코 성공할 것 같지 않다. 곡을 여러 번 다시 돌려 들어도 음악이 자꾸 가슴을 친다. 두 줄의 해금이 아무리 제 발톱을 숨겨도 애절과 우수의 정서를 쉬이 버리지 못해서일까. 어쩌면 해금을 멀리하던 때부터 꽃별은 이미 슬펐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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