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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 그 화끈한 싸움의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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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경률 칼럼니스트
  • 2016.09.10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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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률의 사극 속 역사인물 46] – 이순신 : 일본의 ‘수륙병진’을 저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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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률 칼럼니스트.
1592년 5월 일본군은 최후의 총공세를 준비하고 있었다. 16만 대군을 이끌고 개전 20여일 만에 한양을 손에 넣었다. 백성을 버리고 도망간 임금만 붙잡으면 조선은 끝이다. 문제는 보급이었다. 원정은 무기와 식량, 보충병이 원활하게 공급돼야 승리할 수 있다.

이에 그들이 채택한 전략은 ‘수륙병진(水陸竝進)’이었다. 수군이 서해로 진입해 대동강, 압록강 등지에 보급 거점을 만들고 육군과 협공하겠다는 것. 그러나 조선 바다에는 이순신이 있었다. 5부작 드라마 ‘임진왜란 1592’는 장수로서 그의 활약을 사실적으로 그렸다.

임진왜란을 맞아 이순신 함대가 처음으로 출격한 것은 5월 6일이었다. 전선 이삼십 척에 어선들까지 동원한 초라한 함대였다. 전선만 수백 척인 일본군에겐 중과부적이었다. 하지만 이순신 함대는 연전연승을 거듭했다. 옥포, 합포, 적진포, 사천, 당포, 당항포, 율천리에서 적선을 100척 넘게 격침시켰다.

이순신이 지휘하는 해전은 화끈했다. ‘돌격대장’ 거북선이 적진 깊숙이 들어가 좌충우돌 헤집으면, 화포로 무장한 본대가 근거리에서 직사포를 퍼부으며 박살냈다. 아군 선체로 적선을 들이받아 부수는 ‘당파(撞破)’도 왜적들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 군관과 병사들은 늘어서서 화살을 쏘다가 적선에 올라 백병전을 펼쳤다.

이렇게 화끈한 해전이 가능했던 건 세 가지 무기 덕분이다. 먼저 주력전선인 판옥선은 이층 구조의 크고 튼튼한 배였다. 화포와 화약을 넉넉히 싣고 적선을 내려다보며 활을 쏠 수 있었다. 또 중량감이 있어서 선체로 들이받으면 왜선이 견디지 못했다.

다음은 거북선이다. 거북선은 갑판 윗부분을 단단한 덮개로 씌운 특수함선이었다. 거북선에 대한 기록은 태종 때 단편적으로 등장하지만, 실제로 전장에서 위력을 떨친 것은 이순신에 의해서였다. 그는 이 배에 돌격 임무를 맡겼다. 용머리를 하고 등에 쇠못을 꽂은 배가 불을 뿜으며 달려든다. 조총을 쏴도 꿈쩍 않는다. 왜적들은 오금이 저렸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화포를 빼놓을 수 없다. 이순신의 전술은 기본적으로 화포전이었다. 그는 전란을 예측하고 천자총통, 지자총통, 현자총통, 승자총통 등 온갖 화포들을 구비했다. 고려 말 최무선이 그랬던 것처럼 이순신도 ‘왜적을 막는 데는 화포만한 것이 없다’고 믿었다. 그것은 임진왜란의 흐름을 바꾼 한산대첩으로 증명되었다.

7월 7일 일본 장수 와키자카 야스히루가 전선 73척을 거느리고 견내량에 정박했다. 이튿날 이순신은 판옥선 대여섯 척을 미끼삼아 왜적들을 한산도 앞바다로 유인했다. 아군의 피해를 줄이고 적을 확실히 제압하려면 좁은 포구보다는 너른 바다가 유리했다. 일본 함대가 멋모르고 사지로 들어오자 조선 수군은 재빨리 돌아서며 ‘학익진(鶴翼陣)’을 펼쳤다.

일본군은 지옥을 맛봐야 했다. 이순신 함대는 학 날개를 좁혀 들어가며 화포전을 전개했다. 거북선이 포탄과 불화살을 날리며 돌격했고, 판옥선도 적선을 연달아 들이받으며 부숴나갔다. 그 와중에 일본 전선 73척 가운데 66척이 침몰했다. 한산앞바다는 일본군의 무덤으로 바뀌었다. 1592년 7월 8일의 이 싸움이 바로 세계 해전사에 빛나는 한산대첩이다.

16세기에는 역사의 판도를 바꾼 해전들이 세계 도처에서 벌어졌다. 1571년 레판토해전에서는 신성동맹 함대와 투르크 함대가 지중해 패권을 놓고 격전을 치렀다. 1588년 칼레해전은 스페인 무적함대가 신대륙 선단을 보호하기 위해 엘리자베스 1세의 영국 함대에게 싸움을 건 것이다. 승자는 화포전에서 우위를 점한 신성동맹 함대와 영국 함대였다.

레판토해전이나 칼레해전과 달리 한산대첩에서는 지휘관의 능력이 돋보였다. 이순신은 ‘학익진’이라는 진법으로 화포전의 효과를 극대화했다. 그는 늘 자기 주도적인 전투를 벌였다. 지형과 조류를 살펴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방법으로 싸웠다. 결국 일본의 수륙병진 전략은 이순신에게 가로막혔다. 두려움에 빠진 조선도 용기를 되찾고 반격에 나섰다.

권경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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