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와 함께 한 2000년…역사 페이지를 넘기다

이번 주 동네북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도서관협회가 주관하는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에 선정된 책들로 구성했습니다. 인문학의 첫걸음에서 좀 더 깊은 안목까지 기를 수 있는 책들은 전국 도서관이 엄선해 추천한 ‘내 마음의 양식’들입니다. 2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종이는 인류문명을 크게 바꾼 위대한 발명품이다. 종이가 사용되기 이전과 이후, 그 사이에는 어떠한 역사적 변화가 있었을까? 종이의 용도는 시대별로 어떻게 변해왔나?

저자는 이 책을 집필하기전 종이의 발명지인 중국을 여행하고 수제종이 제작장인이 있는 일본을 직접 찾아갔다. 또한 여러 연구도서관과 문서보관소, 보존연구소를 방문하여 각계각층의 전문가의 의견을 듣는다. 생생한 현장을 담았다.

종이의 전파경로는 중국을 기점으로 동서로 갈라진다. 한국을 통해 일본으로 전해진 것이 하나요, 중앙아시아를 통해 유럽으로 전해진 것이 다른 하나이다. 수세기 동안 중국과 유럽을 이어준 실크로드의 거점지인 사마르칸트는 제지법을 전파한 곳이기도 하다. 8세기 중반 이슬람전역에 제지소가 연달아 생겨나며 종이가 급속도로 생산된다.

이로 인해 ‘기억’에 의존하던 방식은 종이 위에 적는 ‘기록’의 방식으로 대체된다. 종이는 또한 점점 확장되는 오스만제국의 근대적 관료주의 운영에 필수적인 도구가 되기도 한다.


종이의 전파와 제지법의 역사에 관한 부분이 3할이라면 나머지 7할은 종이와 관련된 문명에 대한 탐사이다. 일회용 휴지 발명이 가져다 준 위생혁명,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는 종이화폐의 사용, 나를 증명해주는 종이인 신분증 사회 등 종이가 있음으로 가능해진 문명의 현상들에 관해서 이야기한다.

제지산업에 관한 에피소드도 보이는데, 나인 드래곤스 페이퍼란 재활용 섬유중개업체 설립자의 성공스토리가 인상적이다. 중국계 이민자였던 그녀는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파지쓰레기를 중국에 수출하며 막대한 부를 축적한다.

저자는 언론계에서 활동하며 탐사보도 전문가로 명성을 얻은 미국인이다. 세계인을 놀라게 한 9.11테러사건은 그에게는 더욱더 충격적인 사건으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거대한 빌딩이 무너지던 그날 빌딩 밖으로 쏟아져 나온 서류뭉치들을 ‘ 맨하튼에 내린 종이 비’ 라고 표현한다. 종이는 때로 비극의 현장에서 인류와 기억을 공유한다.

종이가 발명된 이유는 인류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무겁고 지니고 다니기 어려운 죽간, 목간의 불편한 점을 개선하려 연구하다 보니 종이가 발명된 것이다. 시대가 변하며 종이의 용도는 점점 진화되었다. 대부분 인류의 삶을 유익한 방향으로 이끌어 왔으나, 때로는 인류의 삶을 불행하게 하는 도구로 쓰이기도 했다. 독립전쟁 절정기에 제본되지 않은 성경책 수천 부가 종이 탄피로 쓰인 게 그 예다. 생명의 말씀을 담은 종이가 생명을 빼앗는 살상무기로 쓰이다니!.

오늘날, 종이는 우리의 일상과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이다. 종이가 없는 하루를 상상해보라! 인류와 함께해온 2000년 종이의 역사는 어떻게 이어져 나갈까?

* 대전 안산평생학습도서관 선정
◇ 종이의 역사 = 니콜라스 A. 바스베인스 지음. 정지현 옮김. 21세기북스 펴냄. 523쪽/2만7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