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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한숨이 밭두렁에 누워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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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09.24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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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김진돈 시인 ‘아홉 개의 계단’

[시인의 집]한숨이 밭두렁에 누워있겠다
허리를 구부린 할머니가 누군가의 부축을 받으며 한의원에 들어서고 있다. 힘겨워하는 할머니는 치료하는 원장이 친절했던지 진찰실 침대에 누우면서 원장에게 결혼을 했느냐고 묻는다. 이미 기혼인 원장은 기분이 좋아져서 환자의 말이 목련꽃을 닮았다고 한다. 할머니는 치료를 받으면서 젊은 시절을 회상하고 원장에게 젊어서 좋겠다는 말을 한다. 치료를 끝낸 할머니를 배웅하던 원장은 출입문 밖에 나와서 봄볕이 많이 기울었음을 확인한다. 봄날 기운 해를 할머니의 인생으로 비유하고 있다.

김진돈 시인은 1960년 전북 순창에서 출생하여 한의과대학을 졸업한 한의사이다. 2011년 ‘열린시학’으로 등단하여 시집 ‘그 섬을 만나다’를 내었다. 시인은 다른 시에서도 “약재를 꺼내려고 한약장 앞에 섰다/ 사각형 안에 한약재들이 가지런하다/ 그들은 치료되는 목표치로 나를 유혹한다”는 생업의 경험을 시로 형상하고 있다.

김진돈 시의 특징은 시간이나 계절을 인생에 비유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시간을 비유한 ‘석양의 출구’라는 시에서는 “노을이 출하되고 있다 저녁의 출구에서 흘러나온 노을은 어디로 가는가 귀가를 서두르는 하루의 얼굴에 낙관을 찍는 시간”으로 아름답게 형상하고 있다. 계절을 비유한 ‘가을걷이’에서는 그렇게 넉넉하지 않은 시골의 현실이지만 “가을 어깨가 구부정해 눈 밖으로 나간 트랙터 소리가 귀를 찾아 이삭 줍는 손이 마르고 기계는 무심하다 들에 나열된 땀을 나르는 동안 한숨이 밭두렁에 누워 있겠다“는 절창을 뽑아내기도 한다.

바람도 투명하게 언다
아침 추위가 독거인의 허리를 꺾는 결빙의 계절
도시의 까치 떼는 빈 가로수에 남은 볕을 쪼고 있다

이 출구 밖
공원은 청춘으로 물들고 호프집은 밤을 삼키는 습관이 있다

출구 안에서 기생하는 두꺼운 어둠
차디찬 손바닥은 극점으로 돌아 극점에서 껴안는다

안팎은
극과 극
공갈빵을 굽던 손은 몇 개일까

이제껏 오던 길을 돌아본다
엎드린 자에게 몇 푼의 위로를 던졌던가
가쁜 숨을 흘리며 이빨을 환히 드러낸 우리가

하소연 틈으로 무심한 등이 사라진다
어제의 눈빛이 오늘과 다르지 않다

노인의 휘어진 등으로 북극 그림자가 뭉친다

바람은 이곳에서 체온을 바꾼다 - ‘4호선 4번 출구’ 전문


이렇게 시인은 어느 겨울 서울지하철 4호선 어느 역의 4번 출구 경험을 시로 형상하기도 한다. 아주 추운 겨울 차창 밖에 잎이 다 진 가로수가 있고, 가로수 위에 있는 까치가 볕을 쪼고 있는 도시의 풍경이다. 이름을 알 수 없는, 그러나 화려한 상가가 있는 역의 출구 밖은 독거인을 더 춥게 하고, 술집이 밤새 문을 열고, 골갈빵을 굽고, 구걸하는 노숙자가 있다. 행인들은 노숙자의 구걸을 무심하게 지나치고 있다. 도심의 춥고 삭막한 모습을 한편의 풍속화로 그리고 있다.

◇ 아홉 개의 계단 =김진돈 지음. 작가세계. 142쪽/10,000원

[시인의 집]한숨이 밭두렁에 누워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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