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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명세자의 남자, 박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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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경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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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0.01 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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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률의 사극 속 역사인물 47] - 박규수 : 북학과 개화사상의 가교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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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에서 여심을 설레게 하는 주인공 이영은 효명세자를 모티브 삼은 캐릭터다. 효명세자는 19세기에 어지러운 나라를 바로잡으려 했지만 일찍 세상을 떠난 비운의 왕자다. 만약 그가 요절하지 않았다면 조선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궁금하다면 세자와 젊은 날의 꿈을 나눈 한 남자의 궤적을 따라가 볼 일이다.

박규수는 ‘열하일기’를 쓴 박지원의 손자로 할아버지의 북학(北學 : 청나라의 선진문물을 배우려 한 학문흐름)을 개화사상으로 발전시킨 인물이다. 어려서부터 박학다식했던 박규수는 스무 살 무렵 대리청정 중인 효명세자와 만났다. 세자는 두 살 많은 그를 자주 궁궐로 불러들여 학문을 강론하고 조선의 미래를 이야기했다.

효명세자는 세도정치를 타파하고 백성을 구하겠다는 개혁의지가 강했다. 특히 북학의 이용후생(利用厚生 : 편리하게 쓰고 풍요롭게 사는 것) 정신에서 그 실마리를 찾고자 했다. 그러나 1830년 효명세자가 갑작스럽게 요절하는 바람에 개혁은 틀어지고 말았다. 충격에 빠진 박규수는 과거 공부를 그만두고 은둔에 들어갔다.

박규수가 조정에 출사한 것은 18년 후의 일이었다. 당시 조선은 세도가와 결탁한 지방관들의 횡포로 삼정의 문란이 극에 달해 있었다. 그는 암행어사로 나가 백성 구휼에서 부정축재 수단으로 변질된 환곡의 폐단을 낱낱이 파헤쳤다.

1862년 진주민란을 도화선으로 농민항쟁이 들불처럼 번지자 안핵사가 되어 성난 민심을 달랜 것도 그이였다. 이 과정에서 부정부패에 대한 엄격한 처벌과 제도 개혁을 추진했지만, 민란이 소강국면에 접어들며 세도정치에 가로막혔다.

한편 1863년 고종이 즉위하면서 박규수의 입지는 탄탄해졌다. 고종은 사후 익종으로 추숭된 효명세자의 양자 신분을 얻어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자연스레 과거 효명세자가 총애한 바 있는 박규수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는 도승지, 대사헌, 이조참판 등 요직을 역임하고 1866년 평안도관찰사가 되었다.

1866년은 조선 최대의 천주교 탄압이었던 병인박해가 일어난 해였다. 천주교도 학살의 광풍이 거세게 불었지만 박규수의 관내에서는 희생자가 나오지 않았다. 박지원의 손자답게 그는 서구문물에 관대한 입장을 보였다. 백성의 삶에 보탬이 된다면 청나라의 것이든, 서양오랑캐의 것이든 문제 삼지 않았다.

단, 무분별하게 서구열강의 요구를 받아들이는 일은 경계했다. 미국의 무장상선 제너럴셔먼호를 단호하게 응징한 건 그래서다. 제너럴셔먼호는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통상을 요구하면서 관리를 납치하고 대포를 쏘는 등 난폭하게 행동했다. 박규수는 화공으로 제너럴셔먼호를 불사르고 선원들을 몰살시켰다.

이후 흥선대원군은 강력하게 쇄국정책을 펼쳤다. 나라의 문호를 개방해 서양의 부국강병 원리를 배워야 한다는 박규수의 소신은 빛을 보지 못했다. 1874년 우의정에서 물러난 그는 후진 양성에 나섰다. 서울 북촌에 자리 잡은 그이의 사랑방에는 시대의 변화를 감지한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오늘날 중국(中國)이 어디에 있는가? 저리 돌리면 미국이 중국이 되고, 이리 돌리면 조선이 중국이 된다. 어떤 나라든 가운데 오면 중국이 되는데 오늘날 어디에 중국이 있는가?”

청나라에서 갖고 온 지구의를 돌려가면서, 박규수는 중국이 어디에 있는지 물었다고 한다. 조선의 젊은이들에게 조상 대대로 신봉해온 중화사상 대신 자주적 근대국가의 꿈을 심어주려 한 것이다. 요지는 ‘동도서기(東道西器)’, 즉 동양의 정신과 서양의 기기를 융합해 근대화를 이룩하자는 것이었다.

그의 가르침을 받은 청년들은 구한말 개화세력의 두 축이 되었다. 김옥균, 서재필을 비롯한 급진파는 1884년 갑신정변을 일으켰고 김윤식, 어윤중 등 온건파는 1894년 갑오개혁의 주역이 되었다. 하지만 그들은 일본에 치우쳐 망국의 빌미를 제공하기도 했다. 북학을 계승해 백성의 살길을 열려던 박규수와 효명세자의 꿈도 자주성의 퇴색과 함께 허공에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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