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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촌의 마지막 한달' 맞는 미래문화유산 공씨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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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0.0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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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료 감당못해 25년 신촌시대 아쉬운 마감 서울시는 "방법없다"…성수동 지하실로 떠나

(서울=뉴스1) 장우성 기자 =
신촌 공씨책방 내부전경.2016.9.29© News1
신촌 공씨책방 내부전경.2016.9.29© News1

한 몸 지나가기도 빠듯한 통로에 돌탑처럼 쌓여있는 헌책이 벽을 이뤘다. 말없이 들어온 손님은 한참을 경주마처럼 눈앞의 책장만 쳐다보다 불현듯 책 한권을 빼든다. 아기를 안듯이 조심스레 책을 받치고 한 쪽씩 넘기는 얼굴엔 엷게 희열이 번진다.

박원순 서울시장을 비롯해 이헌재 전 부총리,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 김삼웅 전 독립기념관장, 정호승 시인 등도 이런 풍경의 주인공이었다. 이처럼 수많은 지식인과 청년들이 거쳐 간 헌책방이 있다. 넉넉하지 못했던 시절 지식의 보고였고 지식인들의 사랑방이었다. 서울시가 지정한 미래문화유산이자 44년 이력을 지닌 국내 대표적 헌책방 ‘공씨책방’이 그 기억의 저장고다.

공씨책방은 신촌에서 홍대로 넘어가는 길, 언덕 위의 소나무처럼 자리잡고 있다. 큼지막한 간판이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와 지나던 사람들의 발걸음을 잡는다.

이런 공씨책방이 신촌을 떠난다. 회기동 경희대 앞에서 시작해 청계천과 광화문을 거쳐 신촌에 둥지를 튼 지 25년. 40여년 개업 기간 중 가장 오래 머물렀던 신촌을 10월 안으로 비우고 성수동으로 옮기게 됐다.

건물주는 임대료를 2배로 올려달라고 요구하더니 급기야 시한을 정해 건물을 비워달라고 통보했다. 요즘 워낙 책을 읽지 않는 세태인데다 그나마 인터넷서점으로 몰린다. 이곳의 주력인 인문서적보다는 처세술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지는 더 오래됐다. 헌책방이 설 곳이 없어진 요즘 한달 수입으로 지금 임대료 내기도 빠듯한데 곱절로 올려달라니 눈앞이 캄캄했다. 건물주는 올려달라거나 나가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그래도 서울시 미래문화유산인데 뭔가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서울시의 문도 두드려봤지만 “방법이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우리 사회는 재산권만 우선이지 세입자들은 정말 권리가 없어요. 서울시에도 기대해봤는데 별로 관심을 갖지 않더라고요. 이사하면 미래유산 표지판이나 옮겨 붙이라는 말만 들었어요”

책방 주인인 장화민 씨(60)는 몇 달째 속을 끓이다 뇌출혈로 쓰러져 병원 신세까지 졌다. 병상에 누워있어도 천장에 책들이 아른거렸다. 더 답답한 것은 어디 한 군데 힘을 보태주는 곳이 없다는 현실이었다.



공씨책방 고 공진석 대표가 펴냈던 '옛책사랑' 1988년 창간호 표지. 필자 이름 속에 변호사 시절 박원순 서울시장의 이름도 보인다. 2016.9.29© News1
공씨책방 고 공진석 대표가 펴냈던 '옛책사랑' 1988년 창간호 표지. 필자 이름 속에 변호사 시절 박원순 서울시장의 이름도 보인다. 2016.9.29© News1

장씨는 공씨책방과 인생을 함께 했다. 서점의 창업주인 고 공덕진씨는 이모부다. 방방곡곡 헌책이 있는 곳이라면 단숨에 달려갔던 이모부는 매장을 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때마침 고등학교를 졸업한 외조카가 눈에 들어왔다. “가게 좀 봐줄래?”라던 말에 1976년 경희대 대학서점 때부터 일하기 시작해 국내 최대규모 고서 매장을 마련한 광화문 시절에는 '헌 교보문고'라는 명성도 생겼다. 그러나 광화문 재개발 열풍에 가게가 헐리게 됐던 1990년 공씨가 헌책 두뭉치를 들고 시내버스에서 심장마비로 급작스레 타계하면서 책방을 물려받았다.

“이모부 돌아가시고 제가 책방을 맡게 되면서 신촌에 온지 25년이 됐어요. 그래서 신촌에 정말 애착이 크죠. 아직 꾸준히 찾아오시는 단골도 있고요. 떠나고 싶지 않죠.”

'이곳이 예전 광화문에 있던 공씨책방이 맞느냐'며 불쑥 책방 문을 열고 들어오는 사람들도 눈에 밟힌다. 애를 써봤지만 결국 이달 안으로는 이삿짐을 싸야한다. 옮겨갈 곳은 성수동 서울숲 근방의 한 건물 지하실이다. “요즘 헌책방하는 사람들은 다 지하실로 쫓겨난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책방 문을 닫을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책이 좋으니까. 책을 펴면 몰랐던 걸 알게 되잖아요. 특히 헌책은 남달라요. 헌책은 내가 거두지 않으면 폐지로 사라지잖아요. 누군가에게 언젠가는 필요할 수 있는 책인데 말이죠. 어떨 때는 생명을 살린다는 생각도 들어요.”

공씨책방의 서고에는 일제강점기 때 서적은 물론 에밀 졸라의 1890년대 저서 등 수많은 서양 고서들도 있다. 그런데 전체 책 권수는 아무도 알지 못한다. 주인 장씨도 가늠이 안된다고 한다. 미처 다 끌러놓지 못한 책들도 산더미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공씨책방을 '보물섬'이라고 한다. 인간지성을 기름지게 할 미지의 책들이 쉬고 있는 곳. 얼마남지 않은 신촌에서의 밤을 보내고있다.



공씨책방은 10월 안으로 신촌을 떠난다. 큼지막한  간판이  이별이  예정된  신촌에서의 하루를 보내고 있다. 2016.9.29© News1
공씨책방은 10월 안으로 신촌을 떠난다. 큼지막한 간판이 이별이 예정된 신촌에서의 하루를 보내고 있다. 2016.9.29© News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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