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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혐한’ 창궐, 하지만 한일 교류는 계속되어야”

더리더
  • 임윤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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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1.07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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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종 한일문화교류회의 위원장[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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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종 한일문화교류회의 위원장
최근 일본에서 벌어진 ‘와사비 테러’는 일본 내 한국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보여 주는 단면이다. 이를 시작으로 오사카에 간 한국인 관광객이 ‘묻지마 폭행’을 당하고 한국여성 2명이 일본 청년들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욕설과 위협을 당하는 등 ‘혐한’ 현상이 심각하다. 한류의 근원지로 ‘용준사마’와 ‘지우히매’를 탄생시키며 남이섬을 최고의 관광코스로까지 만들어내는데는 성공했지만 일본과 한국간의 해묵은 감정을 녹이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런 한일간의 극단적 감정의 표현의 원인을 찾기 위해 최근 ‘일본의 국가전략과 동아시아 안보’라는 책을 펴낸 정구종 동서대 국제학부 석좌교수 겸 한일교류회의 위원장을 만났다. 정 교수는 “‘혐한’에 대해서는 중국, 한국의 부상에 따른 일본의 초조함이 발현 된 예로 일본 사회 전체 분위기라기 보다는 일부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정의 했다. 아울러 “굴욕적 역사에 대한 한국인들의 부정적인 감정과 반대 급부로 늘어나는 일본의 반한 감정이 줄어드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며 “이를 위해서는 양국간에 교류를 통해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한일 교류관계는 2000년 전부터 지속되어 왔으며 1876년 강화도 조약 이전 1000년 이상은 한국이 우월한 문화와 기술을 일본에 전파했고 일본의 지배를 받던 수십 년간은 일본이 앞서왔다”며 “지금은 대등한 경쟁관계로 들어섰고, 북핵에 대응하기 위한 안보 협력의 파트너로서 관계도 더욱 견고하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일본 내에서 ‘와사비 테러’ ‘묻지마 폭행’ 등 ‘혐한(한국을 싫어하는 감정)’이 고조되고 있다. 이런 감정이 고조되는 원인 이 무엇이라고 보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의 군사안보는 사실상 미국에 일임하고 경제성장과 고도성장의 근대화에 힘쓴 결과, 세계 2위 의 경제대국이 됐다. 그런데 2010년을 시작으로 GDP면에서 중국에 밀려나면서 국제사회의 평가도 달라지고 이에 따른 상대 적인 박탈감으로 일본이 초조해졌다. 또한 ‘2002 한일월드컵’에서는 일본과 공동개최를 했지만 일본은 8강 도전에 좌절한 반면 한국은 4위에 오르는 쾌거를 이루었고, 2003년 ‘겨울연가’와 ‘대장금’을 통해 드라마 한류가 확산되면서 스포츠, 문화 부분에서도 한국이라는 나라의 성장에 이때부터 ‘혐한’이라는 단어가 생겨났다는 설이 있다. 인터넷을 통해 ‘혐한’ 감정을 쏟아내고 그것을 거리로 나와 코리아 타운에서 한류 가게 영업을 방해하는 등 이런 현상은 주변국들이 빠른 성장을 하는데 대한 일본 사회의 전체적인 초조감에서부터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이 일본 사회 전체라기보다는 일부라고 본다.”

-일본 관광객이 5년 동안 줄고 있다.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일본 관광객이 줄어든 것은 한국뿐만이 아니다. 일본 자체에 해외 관광객이 전체적으로 줄었다. 일본법무성 출입국관리 현황(2016년 3월 현재)자료를 보면 2010년부터 일본에서 중국으로 가는 관광객이 373만에서 2014년 271만으로 4년 사이 약 100만명 감소했다. 마찬가지로 일본에서 한국으로 오는 관광객은 2010년 300만에서 4년 만에 228만으로 약 70만명 감소했다. 계속해서 해외 관광객이 줄고 있으며 이는 일본 사회 경제적인 영향(엔저현상)으로 보인다. 정치 사회적으로 한국과 중국, 일본은 갈등 구조로 시민 사회도 이 갈등을 받아 관광객이 줄어들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일본은 한때 ‘한류’의 근원지였다. 최근에는 한류가 식었다고 하는데 계기는 무엇이며 한국 문화에 대해서는 어떤 반응인가

“작년에 ‘한일 교류 2천년, 새로운 미래를 향하여’라는 책을 냈다. 일본 각계 저명인사 23명을 만나 인터뷰 형태로 낸 책인데 오늘날 일본사회에서 한일교류가 어떠한 양태로 존재하는지, 역사 속 교류의 산물이 일본인의 삶과 의식 속에 어떻게 반영되어 나타나고 있는지를 기술했다. 이들과 대화중에 한류에 대한 이야기도 많았는데 한류가 식었다기보다는 정착되는 과정으로 생각하는 의견이 많았다. 한류 초반에는 드라마를 좋아하는 중년층 위주로 시작됐지만 K팝 등을 통해 다양한 연령층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가는 과정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아직도 일본의 위성방송에서는 한국드라마를 다양하게 방영하고 있으며 K팝 가수들 역시 어렵지 않게 볼수 있다. 다만 한류 초기에 ‘겨울 연가’나 ‘대장금’ 같은 히트작이 연달아 나오지 않고 있고 드라마의 퀄리티는 낮아진 반면에 한류 붐으로 판권을 일본에서 살 때 가격이 너무 올라 기피하는 현상이 생겼다. 한국 드라마나 영화 산업계도 이런 부분은 반성해야 한다. 2014년 일본 전국 콘서트 관객동원 10위권에 한국의 ‘빅뱅’이 2위로 92만 명을, ‘동방신기’가 69만 명을 동원해 여전히 한류가 높은 평가받고 있다고 해도 무리가 없다.”
▲정구종 한일문화교류회의 위원장
▲정구종 한일문화교류회의 위원장

-역사적으로 일본은 한국에게 어떤 존재였나

“‘일본과 한반도 2000년’이라는 다큐멘터리를 NHK에서 여러해 전에 특집방송으로 내보낸 적이 있다. 일본의 역사 학자들이 일본 곳곳에서 출토된 볍씨나 토기 유물을 보고 약 2천년 전부터 한반도로부터 전래된 문물로 평가했다. 그 당시에는 문화적으로나 생활면에서 한반도가 훨씬 더 발달된 나라였다. 임진왜란 때 도공들을 기획, 납치했던 이유도 일본인들이 평소에 배울 수 없던 기술문화들을 발전시키기 위해서였다. 조선 통신사가 왕래하던 18세기까지는 우수한 문물과 인적자원 등 문명의 이기들이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갔다. 일본에서 서화(글씨 쓰기)쓰고 시도 짓고 한자도 해석하고 공연단도 가고 여러 문화를 전파했다고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일본이 1800년대 들어서면서 미국, 러시아, 유럽으로부터 압력을 받고 문호를 개방한 이후 문화쇼크를 받게 되면서 메이지유신이 시작됐다. 이를 통해 일본은 근대적 통일국가가 형성됐다.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가 성립했고 정치적으로 는 입헌정치가 개시됐으며 사회문화적으로는 근대화가 추진 됐다. 선진 기술 문명을 배우고자 수백 명을 각국에 파견하고 군사, 문화, 경제 등 다양한 부분에서 빠르게 기술을 습득해 그 위력으로 아시아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첫 희생양이 한반도다. 강화도로 쳐들어와 문호 개방을 강요하며 강제로 강화도 조약을 체결했다. 그 뒤 일본이 우리를 지배하는 역사가 시작됐으며 1945년까지는 일본의 우수한 기술과 군사력을 앞세운 일본 우위의 시대가 계속됐다. 과거 수천수백 년은 한국이 우위의 시대였고 이때부터는 일본 우위의 시대가 계속된 것이다. 1945년에 한국도 독립이 되고 미군 군정을 받던 일본도 1952 년에 독립되면서 대등하게 서로 갈등하는 단계가 시작됐다. 1965년 한·일 회담에 따른 한·일 국교정상화를 통해 일본은 과거를 청산하고 정치외교 국제관계에서 대등한 관계로 가기 시작했다. 이후 외교 정치적으로 대등한 관계가 지속되다가 2000년 대 부터 한국이 스포츠, 문화면에서 앞서기 시작하면서 일본이 앞서던 위치가 흔들리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팽배했다. 이제는 완벽하게 상호 경쟁관계에 들어섰다고 생각한다.”

-지난해 체결된 12.28 합의는 어떻게 보나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한·일 외무장관회의가 있었다. 서울에서 회담으로 해결하기로 합의했고 일본은 위안부 문제에 대한 보상차원으로 10억엔을 내놓기로 했다. 또한 일본에 아베 수상이 “깊이 반성한다.”는 반성문이 포함되어 있어 매우 의미 있는 합의문이라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해결 되지 못했던 위안부 문제가 서로 합의해서 해결하자는 선까지 왔다. 물론 정부 간의 합의이기 때문에 위안부 피해자 개인의 생각은 다를 수 있다. 얼마 전 국회에서 위안부 피해자의 60% 이상이 보상금을 받겠다고 이야기했다. 이것을 보면 6할 이상의 피해당사자들이 합의에 따라 보상을 받는 것을 수락했다는 결론이다. 외교관계라는 것이 100% 이기는 것은 없다. 상호간에 납득할 만한 결과가 되면 일단 외교적으로는 효과가 있었다 고 평가하고 싶다. 앞으로 일본 측 요구인 ‘소녀상 철거’, ‘위안부 할머니들의 의료지원’ 등을 어떻게 할지에 대한 과제도 남아있지만 향후 새로운 50년을 창조적으로 구축하자는데 합의 했기 때문에 교류 정상관계로 되돌아가는 시발점이라고 생각 한다.”

-일각에서는 역사와 교류는 따로 봐야 한다는 의견을 제기하는 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나도 역시 그렇게 생각한다. 양국 간에 사건사고에 대해서 는 인식의 차이가 있기 마련이다.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는 ‘역지사지’ 차원에서 받아들여야지 한쪽의 주장만으로는 원만한 민족관계가 되기는 힘들다. 역사인식의 차이는 상존한다는 전제 하에 그 차이를 좁혀나가는 노력을 해나가면 양국 국민 간에 감정의 대립이나 갈등을 넘어 설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그리고 역사문제로 갈등을 겪으면서도 교류는 양국에 연 간 600만명이 여행하는 시대가 됐다. 사람의 교류는 막으려 해야 막을 수가 없다. 한일 간의 문화교류는 교류를 넘어 이제는 동시대에 함께 즐기는 수준이 됐다. 일본에서 ‘진격의 거인’이라는 만화잡지가 선풍적인 인기로 애니메이션까지 만들어졌는데 이것이 네이버 검색 1순위가 되기도 했다. 네티즌들의 요청에 따라 일본에서 4월에 방영한 애니메이션을 열흘 만에 한국에 같은 시간대 볼 수 있도록 동시 방영도 했었다. 일본과 한국이 국경과 시간을 넘어 문화 콘텐츠가 좋으면 함께 공유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생각한다. 그것을 통해 양국문화의 일부 정서를 서로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역사 인식의 차이는 상존하는 가운데 교류는 양국민의 마음의 거리를 좁히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단정적으로 말하고 싶다.”

-아베 총리가 일본은 전쟁가능한 국가라고 말했다. 그 의미와 동아시아에 끼칠 영향이 궁금하다

“2011년 일본은 동일본 대지진 이후 해일이 일어나서 후쿠시마(福島) 원자력발전소가 중단됨에 따라 일부 원자로가 폭발(제1원전 1호기·2호기·3호기·4호기)하고 방사능이 외부 누출 되는 등 원전사고가 발생하게 됐다. 천재지변과 인재로 인해 수만 명의 인명 피해를 입었다. 일본은 혼란에 빠졌고 국가 개조론이 정치 지도자들에 의해 공공연하게 제기됐다. 이 부분을 잘 엮어서 정치 전면에 나선 것이 아베다. 보수성향이 강한 정치가다. 일본사회도 전후에 평화국가 전수방위를 해야 한다는 진보적인 세력이 있는 한편, 아베를 지지하는 보수우파의 세 력도 만만치 않다. 아베가 수상이 되고 나서 국제적으로 군사력을 갖출 수 있는 단계적인 법적 제도적 장치를 갖추기 시작했다. 관련 안보법을 제정하거나 만들어 가고 있는데 핵심은 자위대의 집단적 자위권을 행동하는 것이다. 동맹국이 전쟁시 참전을 하겠다는 것이 바로 집단적 자위권으로 일본은 UN가입을 통해 집단적 자위권은 가지고 있지만 일본내 헌법상 억제하고 보류했었다. 그런데 이것을 허용하는 법안을 만듦으로써 일본도 다른 나라와 같이 전쟁 행위도 할 수 있는 나라가 된 것이다. 일본이 군사화하면 제일 먼저 우려하고 영향을 받는 것이 한반도다. 과거 일본에 군사 무력 침략을 받았었기 때문에 가장 경계해야 한다. 한국은 미국과 연대해서 과거와 같이 일본이 군사강국으로 가지 않도록 국제사회에 경고해야 한다. 또한 한편으로는 북한이 핵실험을 5차례나 하고 장거리 미사일을 개발하지 않았나. 제일 위협을 받는 것이 남한이다. 미국과 연계하면 미·일 안보조약을 통해 불가피하게 일본의 도움을 받게 된다. 북한이 라는 위협이 있기 때문에 미국, 한국, 일본 3개국간에 안보 연계는 필수다. 2012년 추진하려다가 보류된 한일군사정보협정 (GSOMIA) 체결을 미룰 필요가 없다고 본다. 유사시 자위대가 한반도에 파병되는 상황을 급작스럽게 맞이하지 않기 위해 한 미일이 미리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만 한다.”
▲정구종 한일문화교류회의 위원장
▲정구종 한일문화교류회의 위원장

-최근 일본의 국가전략과 동아시아 안보에 관한 책을 내셨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 추진은 익숙한 주제지만 막상 그것이 어떻게 진행돼 왔는지 치밀하게 조명한 책들은 드물다. 책은 아베 총리가 재집권하고 전후체제 청산을 목표로 방위정책을 전환하는 과정 등을 집중분석했다. 한국과 일본의 미디어 보도 등을 수집해 이 책을 쓰는데 2년이 걸렸다. 아베 수상의 안보정책, 군사노선에 대해 분석 하고 배경을 설명한 첫 번째 책이라고 생각해 주면 감사하겠다.”


정구종 한일문화교류회의 위원장 – 1944년 충북 영동 출생 – 연세대 행정대학원 외교안보학 석사 – 게이오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과정 수료 – 연세대 국어국문학 학사 – 동아일보 일본주재 특파원 – 아사히신문 편집국 기획보도실 – 동아일보 도쿄지사 지사장 – 동아닷컴 대표이사 사장 – 한국온라인신문협회 회장 – 동서대 석좌교수 – 동서대 일본연구센터 소장 – 現 한일문화교류회의 위원장
임윤희 기자 yunis@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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