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집]눈 맑은 삼천포 사람 그리워지네

포구가 삼천 개나 되어 삼천포라는 지명을 얻은 삼천포. 화자는 이 아름다운 도시 실안이라는 바닷가에서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남녘에 오랜만에 눈이 내리고 있으니 감회도 남다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동백꽃이 피는 때가 되면 이런 바닷가에 사는 삼천포 여자들은 나이와 상관없이 가장 순정적인 나이로 돌아간다. 화자는 멀리 삼천포의 섬이 보이는 바닷가에서 아름다운 낙조를 바라보다가 낙조를 묻어버리는 눈보라가 치자 거칠게 가슴이 뛴다고 한다. 그리고 눈 맑은 삼천포에 사는 사람이 그리워진다고 한다.

김용락 시인은 1958년 경북 의성에서 태어나 1984년 창작과비평으로 등단하였다. 1985년에는 ‘분단시대’ 동인지에 평론을 발표한 뒤 6권의 평론집을 냈다. ‘산수유나무’는 그의 6번째 시집이다. 시 ‘가혹한 운명’에서 신영복이라는 인물의 사례를 통해 가혹한 운명을 이야기하듯, 몇몇 시편들에서 시인의 인생 곡절이 보인다. 시인의 자전적 이야기가 많은 시집이다.


이를테면 표제시 ‘산수유나무’에서 시인은 광주항쟁으로 대학이 휴교를 하자 고향에 내려가서 산수유나무를 심는다. 그리고 객지생활이 힘이 들 때마다 시골집에 내려가서 산수유나무의 가지와 가지 사이로 비치는 하늘을 바라본다. 그 이후에도 해직되거나 선거에서 떨어지는 등 삶의 곡절마다 고향의 산수유나무를 찾아가서 위로를 받는다. 자신이 저 세상에 떠나갈 때도 여전히 영생의 삶을 이어가면서 남아있는 자손들에게 인생에 대한 물음을 달라고 한다.

단촌역 입구에/ 큰 은행나무가 몇 그루 서 있네/ 40년 전 내가 중학교 통학할 때는/ 결코 보지 못했던 그 나무들/ 새벽 통학생 발자국/ 서울 공장 간다고 기다리던 밤기차/ 모두 사라지고 화물차에 기적만/ 이따금 산협을 울리는 간이역/ 만추의 가을비 속에서/ 안부를 여쭙는 듯 떨어뜨리는 노오란-/ 저 멀리 허공이 된 세월 속으로/ 아! 정말 인생이 깊다 - ‘단촌역 은행나무’ 전문

이렇게 김용락의 시에는 서정의 상관물로 나무가 많이 등장한다. 단촌역은 시인의 고향인 의성군에 있는 역이다. 산업화 시골이 황폐해지면서 다니는 사람이 없으니 지금을 폐역이 되었다. 새벽에 통학하는 학생들로 붐비고, 서올로 공장에 간다며 기다리던 역이었다. 아마 화자도 40여 년 전 이 역에서 기차를 타고 통학을 했나보다. 당시에는 없었던 은행나무를 누군가가 심었고, 세월이 흘러 지금은 큰 나무가 되었다. 시 ‘통양보건소 뒤뜰 가자미’에서는 알가자미가 말라가고 있는 것을 후박나무 가을 단풍으로 비유하기도 하다. 모양의 유사성에서 가져온 발상이다. 시 ‘푸른 느티나무’에서는 위안부 생존자 이용수 할머니를 비유한다.


◇산수유나무=김용락 지음 문예미학사. 219쪽/9,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