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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폭군 연산을 쫓아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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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경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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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2.03 0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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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률의 사극 속 역사인물] 50 – 연산군 : 유교국가의 입을 막고 혀를 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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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률 칼럼니스트.
"진정 날 바보로 만드는 게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영화 ‘간신’(2015)의 연산군이 묻는다. 이 영화는 폭군 연산의 전횡 가운데 미녀들을 끌어모아 흥청망청한 것에 초점을 맞추었다. 영화에서 왕을 바보로 만든 이는 채홍사를 자임하며 주군의 눈과 귀를 가린 간신 임숭재다. 그럼 역사 속의 연산군은 어땠을까. 그에 대해 알려면 먼저 유교 통치체제를 완성한 부왕 성종부터 짚어봐야 한다.

성종은 권신 한명회를 장인으로 둔 덕분에 1469년 13살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다. 즉위 초기에 어린 임금은 훈구파 대신들의 꼭두각시 노릇을 해야 했다. 성종은 성년이 되자 언론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를 정비하고 사림 선비들을 등용하여 훈구파를 견제하려 했다. 그러나 사림은 훈구파뿐 아니라 임금까지 사사건건 발목을 잡았다.

세자 시절 연산군은 아버지의 나랏일이 못마땅했던 것 같다. 성종이 일군 유교 국가는 신하들의 언로(言路)를 제도적으로 보장했다. 언로는 임금보다 유교 도덕을 우선에 둔다. 연산군은 언로가 왕의 손발을 묶는다고 보았다. 신하들이 임금을 바보로 만든다는 것이다. 게다가 어머니 폐비 윤씨는 유교 도덕이 금하는 투기 때문에 죽은 게 아닌가.

1494년 드디어 임금이 된 연산군은 왕권을 높이고자 했다. 1498년 사초(史草)로 쓰인 김종직의 ‘조의제문(弔義帝文)’에 세조를 능멸한 정황이 있다는 유자광의 고변을 받자 폭군은 쾌재를 불렀다. 연산군은 이미 세상을 떠난 김종직을 부관참시하고 그를 따르던 사림 선비들을 처형하거나 유배 보냈다. 이 사건이 바로 무오사화(戊午士禍)다.

사림을 제압하자 이번에는 훈구파에 올가미를 씌웠다. 폐비 윤씨 죽음의 책임을 물은 것이다. 1504년 연산군은 윤필상, 이세좌 등에게 극형을 내리고 한명회를 부관참시했다. 그는 또 과거 기록들을 뒤져 입바른 말을 한 대신들과 선비들을 살육했다. 훈구파와 사림을 막론하고 239명이 화를 입었는데 이를 갑자사화(甲子士禍)라고 부른다.

무오사화와 갑자사화의 발단은 각각 사초와 폐비 문제였지만 본질은 하나로 모인다. ‘능상(凌上)’, 즉 위를 능멸하는 풍속을 뜯어고치겠다는 것! 연산군이 실록에 육성으로 밝힌 사화의 목적이다. 유교 국가의 근간인 언로를 봉쇄하겠다는 뜻이다. 당시 관원과 내관들은 ‘신언패(愼言牌)’를 차고 다녀야 했다. 패에는 이런 글귀가 새겨졌다.

“입은 화를 부르는 문이요, 혀는 자신을 베는 칼이다.”(연려실기술)

이후 연산군은 전무후무한 전제왕권을 행사했다. 그 권력으로 백성을 위해 뭔가 했다면 오늘날까지 욕먹지는 않았을 것이다. 연산군은 ‘흥청’과 ‘운평’이라는 명목으로 여성들을 대거 징집해 연회를 열고 가짜 태평성대를 연출했다. ‘흥청망청’의 유래다. 국고가 바닥나자 세금을 올려 백성의 등골을 휘게 했다. 그가 폭군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하지만 무소불위의 폭군도 정변은 두려워했다. 1506년 7월 29일 신하들에게 ‘경서문(警誓文)’을 받은 것도 이 때문이다. 경서문은 연산군에 대한 ‘충성서약’이었다. 여기 이름을 올린 인물은 23명으로 대개 폭군에게 아부하며 호의호식한 자들이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간신배로 분류해도 무방하다. 소름 돋는 반전이 일어난 것은 한 달여 후였다.

9월 2일 중종반정이 터지면서 연산군은 왕위에서 쫓겨났다. 그런데 경서문에 서명한 간신들 중 화를 당한 인물은 3명에 불과했다. 연산군의 처남인 신수근과 신수영, 그리고 이미 죽은 임숭재의 아버지 임사홍만 목숨을 잃었다. 나머지 20명은 놀랍게도 말을 갈아타고 반정공신으로 변신했다. 그들이 충성한 것은 주군 따위가 아니라 부귀영화였다.

중종반정을 주도한 박원종, 성희안, 유순정 등은 연산군이 총애한 신하들이었다. 사대부가 등 돌리고 민심이 술렁이며 정변 조짐이 나타나자 자신들이 살려고 선수를 친 것이다. 폭군은 쫓겨 났지만 그의 총신들은 더 큰 부귀영화를 누렸다. 백성의 시름과 고통도 나날이 깊어졌다. 폭정의 근원을 뿌리째 뽑지 않는 한 바뀌는 것은 없다는 말이다.

권경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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