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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지역 중소 전자업체들도 다 망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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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2.03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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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창업 전쟁터에서 승리을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달합니다.
/캐리커처=김현정 디자이너
/캐리커처=김현정 디자이너
"일감이 많았을 때는 60여명이 일했는데, 지난 5월에 공장 가동을 완전히 멈췄고 이젠 저와 직원 2명만 남았습니다."

경상남도 김해에 위치한 A사는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메인 PCB(전자회로기판)에 약 1만1000개의 미세 구멍을 뚫어 국내 굴지의 S기업에 납품하는 중소 하청업체입니다. A사는 3년 전 약 120억원을 들여 고성능 레이저 드릴링 머쉰 20여대를 설치했고, 한 해 매출액이 100억원에 이를 만큼 안정적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불과 2~3년 만에 일감이 사라졌습니다. 원청사인 S기업의 PCB공정 대부분이 베트남 생산기지로 이전됐기 때문입니다. A사는 2~3년 만이라도 더 납품할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S기업의 해외 이전은 전격적으로 이뤄졌습니다. 게다가 베트남 현지에서는 S기업이 공정의 대부분을 자체 운영함에 따라 생산라인을 현지로 이전할 기회마저 박탈당했습니다.

그 결과 S기업의 PCB 공정 하청업체 31곳 중 23개 업체가 문을 닫고 말았습니다.

"경남 지역엔 S기업 외에는 납품할 곳이 없어요. 저희 공장 근로자들 대부분이 10년 이상 근무한 경력자들인데 갈 곳이 없는 거죠. 경남의 경우 조선·해운 업종의 구조조정으로 인해 엄청난 타격을 받고 있다고 알려져 있지만, 전자업종도 정말 심각한 처지입니다."

A사의 설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현장을 지켜온 공장장 K씨의 말입니다.

심각한 곳은 경남의 조선·해운 업종이나 전자업종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극심한 영업부진과 자금압박 등의 사유로 법원에 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기업 수가 2007년 116개에서 2015년 925개로 폭증했고, 금년 들어선 8월 말까지 전국적으로 이미 656개 업체가 기업회생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이같은 추세라면 올 연말까지 1000개 이상 달할 것이라고 합니다.

통계청은 지난 9월까지 식료품 지출이 4분기 연속 줄어들었고, 의류와 신발 소비는 무려 14분기 연속 감소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에 반해 한국은행의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기업들은 2016년 6월 말 현재 총 514조원의 현금성자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8년 보다 무려 221조원이 증가했습니다.

한국은행은 2015년 3월 기준금리를 1.75%로 낮췄고, 올 6월 이후엔 최저 수준인 1.25%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저금리로 인해 시중에 넘쳐나는 돈은 부동산으로 쏠리며 서울 아파트의 지난 9월 평균 매매가격은 5억5000만원으로 2008년 금융위기 이전의 고점 수준을 가볍게 넘어섰습니다. 이는 손발 끝은 썩어가는데 혈액(=돈)은 심장 주변부에서만 맴도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고용노동부가 2016년에 편성한 청년 일자리 창출을 위한 예산이 1조4000억원이고 기금 등을 통한 지원을 더하면 총 2조원에 달합니다. 2013년에 2500억원이 지원된 ‘청년인턴 지원사업’은 고용 유지율이 37%에 불과해 기업들에게 ‘청년 무료사용권을 국비로 지급하는 제도’로 전락했고, 청년들은 뺑뺑이 인턴 생활을 빗대어 스스로를 ‘호모인턴스’라 부릅니다. 기왕에 심어 놓은 작물들 중 상당수가 타 들어가고 있는데도 이를 살릴 생각은 하지 않고 섣불리 새로운 작물을 심겠다고 나서는 꼴입니다.

과거엔 불황에 따른 고통의 시기를 견디고 나면 새로운 산업이 생겨나고, 기존 산업에서도 신흥 강자들이 부상하면서 호황이 다시 찾아 오는 주기적 순환이 일어났습니다. 충격이 너무 심해 ‘환란’(煥亂)이라고도 불리는 IMF 외환위기 때의 구조조정 과정이 좋은 사례입니다.

그러나 2008년 미국 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엔 호황과 불황이라는 경기순환의 주기적 반복이 무너진 채 저성장 상태가 장기간 지속되고 있습니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경제현상을 ‘뉴노멀’(New Normal)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번역하기 다소 애매한 이 용어의 쉬운 우리 말은 바로 ‘경제 양극화’입니다. 경제적 강자들은 5~10% 성장하고 금고에 현금이 넘쳐나는데 반해, 작고 약한 자들은 줄어드는 일자리와 늘어나는 부채로 마이너스 성장의 고통을 면치 못하는 양극화 현상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성장률이 두 계층의 평균치인 2% 중반대에 머물고 있는 것입니다.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 낸 재벌 대기업만 잘 되면, 경제의 다른 모든 문제는 저절로 잘 풀린다고 속단했다. 그것이 끝내 ‘국산 뉴노멀’을 불러왔다.” 원로 경제학자 조순 교수의 지적입니다.

저수지에 물이 가득 차 있지만 논밭 구석구석으로 흘러 들지 않으면서 작물들이 서서히 타 들어가는 상태를 두고 굳이 '뉴노멀'이라는 어려운 경제용어를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요? 고인 물이 순환되지 않으면 썩거나 물 폭탄이 될 수 있듯이 돌지 않는 돈은 결국 경제 전체를 파괴할 것입니다.

낙수효과를 기대하는 시대착오적 금융정책보다는 실업급여와 최저임금의 현실화 등을 통해 경제의 말단 세포부터 우선 살려내는 실사구시의 대책이 시급합니다.

“요즘 들어 권문세족들이 권력과 매를 앞세워 농민들의 토지를 빼앗아 그 규모가 큰 경우 산천을 경계 삼는 데 비해, 가난한 백성들은 송곳 꽂을 땅도 없는 형편(無入錐之地)이다.”

고려사에 나온 고려 말 토지제도의 문란상입니다. 지난달 26일 광화문 광장엔 대통령의 퇴진을 외치는 150만명의 국민들로 인해 입추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광화문 광장에 모인 수 많은 사람들의 외침 속엔 대통령의 퇴진을 넘어, 자신들의 삶이 고려 말의 농민들의 처지와 다름 없이 힘들고 어렵다는 절규가 절절이 배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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