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레이건과 2017년 트럼프의 차이

트럼프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자는 공약으로 레이건 시대의 향수를 자극했다. 레이건은 마가렛 대처와 함께 냉전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서구 지도자로 미국 국민에게 가장 인기 있는 대통령 중 한 명이다. 레이거노믹스는 신자유주의적 감세 정책과 강경한 대외정책으로 대표된다. 트럼프는 감세, 규제 완화, 군비 강화를 역설하며 레이거노믹스를 표방해왔다.

트럼프와 레이건의 유사성에 대한 분석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글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둘의 차이점이다. 두 정부가 처한 상황은 사실 정반대다. 레이건 대통령 취임 당시는 스태그플레이션, 하이에크의 반격, ‘인플레이션 파이터’인 볼커 연준 의장, 미국 증시 저점, 최고 금리 수준으로 요약된다. 반면 현재 세계 경제를 설명하는 키워드는 디플레이션 극복 과제, 케인즈의 반격, ‘고압 경제’를 주장하는 옐런 연준 의장, 미국 증시 신고가, 최저 금리 수준이다.


레이거노믹스 1기에 달러 가치가 오른 것은 인플레이션을 저지하기 위해 연준이 인위적으로 고금리 정책을 견지했기 때문이다. 1979년 볼커가 연준 의장에 취임할 당시 경제는 오일쇼크로 물가가 치솟는 가운데 경기마저 나쁜 스태그플레이션 상태였다. 볼커는 정책금리를 1979년 9월 11.4%에서 1980년 3월 20.0%로 급격하게 인상하며 인플레이션 진압에 주력했다.

반면 현재는 옐런 연준 의장이 언급했듯이 아직 불충분한 회복세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인플레이션 오버슈팅'을 용인할 필요가 있는 상황이다. 트럼프 정부의 재무장관 내정자인 스티븐무누신 역시 향후 몇 년간 상대적 저금리가 유지될 것(“Interest rates are going to stay relatively low for the next couple of years”)이라고 발언했다.

레이건 행정부 1기보다는 2기가 차기 트럼프 정부에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레이건은 취임 첫해에 소득세 인하를 단행했지만 정부지출 삭감에는 실패했다. 국방비 지출을 대폭 늘린데다 의회의 다수당인 민주당이 복지예산 삭감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연준의 통화긴축으로 이미 시중 금리가 높은 상황에서 정부가 자금 수요를 추가적으로 늘리자 경쟁국가에 비해 시중금리가 큰 폭으로 상승했다. 이에 달러가 평가절상되면서 미국의 수입은 크게 늘어나고 수출은 크게 줄어들었다. 재정수지·경상수지의 쌍둥이 적자에 시달리게 된 것이다.


당시 미국 국민들은 무역 수지 개선을 요구하며 정부를 강하게 압박했고, 산업계는 자국 산업 보호를 요청하는 캠페인을 시작했다. 이 캠페인은 의회가 무역보호법을 통과시킬 것을 고려하기 시작할 정도로 많은 지지를 얻었다. 이렇듯 무역 규제가 가시화되는 상황은 경쟁국가에 대한 백악관의 협상력을 높여줬고 결국 1985년 9월 플라자 합의가 체결됐다.

시장은 트럼프 당선 이후 레이건 행정부 1기 당시의 재정·통화정책 조합을 예상하며 달러를 끌어올렸다. 그러나 트럼프는 자기 자신을 '저금리인(人)(a low-interest-rate person)'이라고 부를 정도로 저금리 필요성에 공감하는데다 강달러를 늘 반대해왔다. 현실적으로도 보호무역을 위해 높은 관세를 매기게 된다면 미국 내 수입물가가 뛰고 실질금리가 떨어지면서 달러 가치 역시 하락하게 된다. 최근 달러 강세는 트럼프 행정부가 출범하기도 전에 4년 임기에 대한 기대를 즉각 반영한 수준이다. 트럼프 대통령 취임 이후 오히려 되돌림이 나올 수 있다.

최근 트럼프는 테레사메이 영국 총리와의 전화통화에서 1980년대 레이건-대처 와 같은 긴밀한 관계를 되살리자고 제안했다. 대처와 레이건은 각각 1979∼90년, 1981∼89년 집권 당시 강력한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을 주장한 정치적 동반자였다. 흥미로운 것은 현재 트럼프와 테레사메이 모두 신자유주의적 작은 정부가 아닌 재정지출 확대를 공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여기서 1981년과 2017년의 가장 큰 차이점을 찾을 수 있다. 1980년대 이후 하이에크 시대에서 주요국 정부는 균형 재정을 추구해왔다. 하지만 이는 민간 투자를 위축시키고 생산성을 떨어뜨려 국가채무비율을 오히려 더 높이는 결과로 나타났다. 금융위기 이후 통화 완화정책 역시 금융 불안정성을 높이고 자원 배분의 왜곡을 낳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제는 정부 주도의 수요 충격을 통해 총수요곡선을 오른쪽으로 이동시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저금리 환경으로 늘어난 재정 여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생산적인 부문에 재정지출을 확대하면 재정 건전성 훼손 없이도 단기적인 경기 부양과 중장기적인 성장 개선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근 OECD의 ‘저성장 탈출을 위한 재정 정책 활용(Using the fiscal levers to escape the low-growth trap)’ 제안이 한 예다.

신흥국 상황도 다르다. 1974년에는 1차 오일쇼크가 서구의 경기 침체로 이어져 금리가 하락하고 제3세계국의 자원민족주의로 1차 상품 가격이 상승하면서 라틴 아메리카로 외국자본이 대량 유입됐다. 당시 글로벌 자금흐름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중동 산유국의 오일머니가 글로벌 은행을 경유해 중남미 국가로 대거 투입됐다는 것이다. 그러나 1979~81년 2차 오일쇼크가 스태그플레이션을 유발하자 선진국이 긴축정책에 돌입하며 금리가 상승했고 이는 라틴 아메리카의 이자 부담을 가중시켰다. 결국 세계 경기침체, 방만한 재정운영에 따른 재정적자 누적, 외채상환 부담 증가 등 대내외 경제환경이 악화되면서 아르헨티나 페소화의 급격한 절하, 1982년 멕시코의 모라토리움 선언 등 외환위기가 발생했다.

현재 신흥국 전반의 외채 및 외환건전성은 과거보다 양호하다. 유가를 비롯한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수출단가가 회복되는 등 경제 펀더멘털 역시 개선 추세다. 중장기적으로 원자재 가격이 강세를 나타낼 것으로 전망되는 점이 근본적 차이다. 유가는 리밸런싱 기대감이 상승을 지지하고 있다. 산업용 금속은 중국과 미국의 인프라 투자 확대, 글로벌 재고감소 등으로 수급 불균형이 심화되며 가격 강세가 이어질 것으로 판단한다.

결론적으로 연준이 인플레이션과의 싸움에 나서지 않고, 재정지출 확대가 수요를 견인하며, 원자재 가격 회복 국면이라는 점에서 2017년은 1981년과 다르다. 트럼프 당선에 따른 막연한 달러 강세는 지속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