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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일기⑩] 1987년 6월과 2016년 11월의 간극…격세지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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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6.12.17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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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일(49)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 공보특보…촛불집회 50일 맞아

(서울=뉴스1) 박동해 기자 =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일대를 가득 메운 시민들(허영일씨 제공)© News1
지난 3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일대를 가득 메운 시민들(허영일씨 제공)© News1

촛불이 가득한 광화문 광장을 걸으면서 1987년 6월을 떠올린 우리 세대가 많을 것이다. 나 또한 대학교 2학년 시절의 기억을 더듬으면서 ‘박근혜 퇴진’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87년 6월의 거리는 최루탄이 난무했지만, 16년 11월은 축제의 분위기라는 점에서 격세지감을 느꼈다.

1987년 6월은 전두환 대통령의 4.13 ‘호헌’ 발언으로 촉발되었다. 야당과 재야, 학생운동세력의 대통령 직선제를 요구하는 목소리를 묵살하고 국민과 전면전을 선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연세대 2학년이었던 이한열 열사가 대통령 직선제를 외치는 집회를 하다가 경찰의 최루탄에 맞아 의식불명 상태에 빠지는 상황까지 발생했기 때문에 국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다.

그러나 야당은 김대중과 김영삼 두 분의 분열로 6월 항쟁 성과를 노태우 대통령에게 헌납했다. 당시의 허탈감과 배신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개헌의 관심도 ‘대통령 직선제’ 하나에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6월 항쟁은 민주주의와 인권, 국민기본권, 경제민주화, 남북관계 등 모든 영역에서 ‘발전’의 내용이 새 헌법에 담겨야 함에도 대통령만 국민 손으로 뽑으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이라는 순진함이 군사독재를 청산하지 못했다.

2016년 11월의 촛불혁명은 박근혜 대통령의 헌정 유린과 최순실 등 비선세력들의 국정농단 사실이 밝혀지면서 촉발되었다. 물론 그 기저에는 경제 무능과 안보 무능, 민주주의 유린이라는 박근혜 정부의 실정이 깔려있었다.

국민들은 분노에도 현명하게 대처했다. 박근혜 정부에게 어떤 빌미도 주지 않으려고 초지일관 ‘평화’로 대처했다. 232만명의 인파가 모이는데도 그 어떤 불상사도 없었다. 촛불과 함성, 문화의 힘으로 헌정 유린 세력을 제압했다. 결국 그 힘이 바탕이 되어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을 가결시킬 수 있었다. 국민의 힘으로 불의한 대통령에게 해임 통고를 한 것이다.

이제 박근혜 대통령은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결만을 앞두고 있다. 헌재 판결을 앞둔 상황에서 87년과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 같아서 우려스럽다. 염불에는 관심이 없고 잿밥에만 관심을 두고 있다. 제도를 바꾸려 하지 않고, 벌써 누구누구가 대통령에 당선되면 촛불 민심이 다 해결된다는 식의 얘기가 횡횡하고 있다.

촛불 혁명은 대통령 한사람 바꾼다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세상에 완전한 사람은 없다. 아무리 뛰어난 대통령이라고 하더라도 악마의 유혹을 떨쳐버리기 어렵다. 악마의 유혹은 제도로 막아야 한다. 제도개혁의 완결은 결국 헌법을 바꾸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개헌에 촛불 현장에서 외쳤던 모든 구호가 담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혁명 후에 개헌을 하는 것은 당연한 순서다. 개헌 논의 자체를 불순하게 바라봐서는 안 된다. 진보와 보수를 막론하고 지금 시스템에서 선출되는 대통령은 또다시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개헌을 통해 중앙 권력을 분산하고, 지방정부의 권한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지금부터 개헌 논의를 시작해야 개헌 내용이 풍부해지고, 최소한 대통령 후보들의 공약으로 구체화할 수 있다. 개헌은 촛불의 내용이고, 완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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