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속보
통합검색

인어의 꿈? 어중간하면 죽는다

머니투데이
  • 권경률 칼럼니스트
  • VIEW 5,340
  • 2016.12.24 03:08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 카카오스토리
  • 텔레그램
  • 문자
  • 글자크기조절
  • 댓글···

[권경률의 사극 속 역사인물] 51 – 유몽인 : '어우야담', 그 경계인의 자화상

image
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은 한국 최초의 야담집 ‘어우야담(於于野談)’의 인어 이야기를 모티브로 삼고 있다. 기름을 짜내기 위해 어린 인어들을 잡아들이는 어부와 그들을 불쌍히 여겨 바다로 돌려보내는 김담령. 남자사람과 여자인어 사이에 쌓이는 미묘한 정분과 그것을 이용하려는 이기적 욕망. 사극뿐 아니라 트렌디 드라마에도 영감을 줄 만하다.

현대인에게 인어는 낯선 캐릭터가 아니다. 꼭 우리나라 설화가 아니더라도 디즈니 애니메이션 ‘인어공주’를 누구나 알고 있다. 이 가상의 존재는 사람과 자연, 육지와 바다의 중간지대에 자리매김한다. 중간은 다른 세상과 만나는 경계다. 매혹적이지만 그래서 위험하기도 하다. 인어 이야기가 시공을 초월해 호기심을 자아내는 까닭이다.

‘어우야담’을 쓴 조선 중기의 문장가 유몽인은 이 영물과 ‘닮은꼴’ 인생을 살았다. 그는 선조와 광해군 시절에 활약한 문신이다. 과거에 장원급제하는 등 문장과 학문으로 일가를 이뤘다. 그런데 정치적으로는 ‘중북(中北)’, 즉 중간지대에 선 북인이었다.

사림(士林)은 선조 초년에 훈구파를 몰아내고 집권한 이래 분화에 분화를 거듭했다. 1575년 동서분당으로 ‘구주류’ 서인과 ‘신주류’ 동인이 나뉘었고, 1590년대에는 동인이 ‘강경파’ 북인과 ‘온건파’ 남인으로 분열되었다. 1600년대 들어 북인은 다시 세자 광해군을 옹호하는 대북과 선조의 적자 영창대군을 지지하는 소북으로 갈라져 대립했다.

유몽인은 임진왜란 때 세자의 측근으로 활약하며 공을 세운 바 있다. 1608년 선조가 세상을 떠날 때 도승지로서 광해군의 즉위를 도운 것도 그이였다. 그러나 집권당 대북이 임금의 어머니뻘인 인목대비를 폐비하려 하자 그는 사직하고 은거에 들어간다. 유몽인을 중북이라고 분류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경계에 섬으로써 출셋길도 막혔다.

그런 의미에서 유몽인이라는 사람은 탐구대상이다. 그의 호 ‘어우(於于)’는 ‘장자(莊子)’에서 따왔다. “공자가 허황된 말로 사람들을 속인다”는, 감히 유학의 창시자를 비꼬는 우언(寓言)을 빌어 자기 정체성을 표출한 것이다. 유몽인은 유학자였지만 낡은 틀에 얽매이기를 거부했다. 그는 기존 세상 너머 뭔가 다른 것을 열망하는 경계인이었다.

‘어우야담’은 은거 기간에 절집에서 지은 것이다. 자유로운 문체와 다양한 내용은 유몽인의 성정을 오롯이 담고 있다. 풍자적인 설화와 기지 넘치는 민담은 다른 세상을 넘보는 창이었다. 인어가 수면 위로 목을 길게 빼고 물 밖 세상을 염탐하는 것처럼, 그이 또한 중간지대에 자리매김함으로써 현실 세계의 확장을 도모했다. 그 대가는 혹독했다.

1623년 서인들이 일으킨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쫓겨나고 대북정권은 몰락했다. 유몽인은 은거를 중단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광해군에게 내쳐진 신하였지만 반정에도 동의하지 않았다. 시류에 휘둘리지 않고 옛 주군에 대한 의리를 지킨 것이다. 이미 대북의 씨를 말린 서인들은 중도를 고수한 그이 또한 용납하지 않았다.

반정 4개월 후 유몽인의 아들이 광해군 복위를 도모하다가 발각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는 아들의 역모를 말렸지만 차마 고변하지는 못했다. 서인들은 옳거니 하고 일제히 유몽인을 성토했다. 당대 최고의 문장가는 결국 이 사건에 연좌되어 목숨을 잃는다.

극과 극이 대치하는 세상에서 어중간하면 죽는다. 중간지대에 서면 마녀사냥 당하기 쉬운데다 어느 쪽도 비호해주지 않는다. 경계인에게 비극의 근원은 이런 세상을 바꾸려는 데 있다. 하지만 그들이 꿈꾸는 다른 세상은 대개 ‘푸른 바다의 전설’에 그친다. 그것은 그리스어로 ‘없는 곳’을 의미하는 유토피아를 떠올리게 한다.

유몽인은 억울하게 죽었지만 문장과 절개는 오래도록 회자됐다. 170여년 후 그의 한을 풀어준 이는 탕평책으로 붕당을 타파한 정조 임금이었다. 정조는 유몽인에게 이조판서를 추증하고 ‘의정(義貞)’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의롭고 깨끗한 인물이라는 뜻이었다.

권경률 칼럼니스트.



칼럼목록

종료된칼럼

오늘의 꿀팁

  • 띠운세
  • 별자리운세
  • 날씨
  • 내일 뭐입지

많이 본 뉴스

인구이야기 POPCON (10/8~)
메디슈머 배너_비만당뇨클리닉 (5/10~)
블록체인

포토 / 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