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깡패야?" 공갈·협박으로 기업 길들이기

/그래픽=임종철 디자이너

# "(미국의 차세대 스텔스전투기) F-35 비용은 통제 불능이다. 대통령에 취임하면 수십억 달러를 줄이겠다."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12일(현지시간) 새벽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F-35 전투기 가격이 너무 비싸다며 대통령 취임 이후 가격을 깎겠다고 압박하자 해당 기업과 증권가는 아침부터 난리가 났다.

이날 F-35 전투기 제조사인 록히드마틴(Lockheed Martin)은 증시가 개장되자 주가가 한 때 5%가 넘게 추락하고 시가총액이 40억 달러 이상 감소하면서 주주들이 재산상 큰 손실을 입었다. 뿐만 아니라 제너널다이나믹스(General Dynamics), 노스롭그루먼(Northrop Grumman) 등 타 전투기제조사의 주가도 2~3%씩 동반 하락해 이들 주식을 보유한 투자자들마저 덩달아 피해를 입었다.

시장에는 트럼프가 대통령의 지위를 이용해 기업을 압박하면 해당기업은 굴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란 우려가 팽배했다.

미 경제방송 CNBC의 프로그램 매드머니(Mad Money)의 진행자 짐 크레이머(Jim Cramer)는 "F-35 전투기의 비용이 비싸다거나 구매를 줄이겠다고 말하는 건 대통령 답지 못하다"며 "역사적으로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고 트럼프의 행태를 비난했다.


나아가 "정부와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기업들(특히 방산기업)과 그 주주들은 앞으로 '트럼프의 트위터 공격'이라는 새로운 리스크 요인(risk factor)을 걱정해야 할 판"이라고 꼬집었다. 즉 트럼프의 예상치 못한 트위터 공격으로 관련 기업의 주가가 하락해 재산상 손실을 입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월가에서는 이 사건 이후 단기 차익을 노리는 헤지펀드들이 트럼프의 트위터 공격에 주목하고 있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오고 있다. 트럼프의 갑작스런 트위터 공격으로 관련 기업의 주가가 추락할 경우 이를 역이용해 이익을 챙기려는 속셈이다.

트럼프는 6일(현지시간)에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돌연 "보잉(Boeing)이 새 대통령을 위해 만들고 있는 대통령전용기 에어포스원(Air Force One)의 비용이 40억 달러 이상 들어 통제할 수 없다"고 "(국방부에) 주문을 취소하라"는 공갈과 다름없는 으름장을 놓았다.

이에 대해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Forbes)의 칼럼니스트인 스탠 콜렌더(Stan Collender)는 "트럼프가 자기 마음대로 기업 '괴롭힘'(bullying)을 하고 있다"며 "아무리 대통령이라도 이미 확정된 에어포스원과 F-35 전투기 구매계획을 철회하지 못한다"고 트럼프의 일방적인 기업 때리기 행태를 비난했다.

사실 트럼프가 특정 집단을 타깃으로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무분별하게 공격하는 행태는 새로운 것은 아니다. 대선 유세기간 내내 그는 히스패닉, 이민자, 여성, 동성애자, 신체불구자 등 자신과 정치적 견해가 다른 집단을 골라 트위터를 통해 망언과 공격을 서슴지 않았다.

문제는 기업들에도 기습적인 마구잡이식 '공격'(bashing)이 가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에 CNBC의 칼럼니스트인 에릭 드젠홀(Eric Dezenhall)은 "트럼프의 '게릴라식' 기업 공격에 대해 관련 기업들과 주주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어리둥절하다"며 그의 반기업적(anti-business) 괴롭힘을 문제삼았다.

# "트럼프의 말을 듣지 않을 경우 미 국방부 사업을 잃게 될까봐 두려웠다."

트럼프가 비정상적인 공격을 해와도 기업이 적극적으로 맞설 수 없는 게 현실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분하고 억울해도 비즈니스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통령의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없다.

보잉은 트럼프의 대통령 취임식 행사에 100만 달러를 내겠다며 즉각 트럼프 달래기에 나섰다. 그리고 CEO가 21일(현지시간) 플로리다 주의 별장에서 크리스마스 연휴를 즐기고 있는 트럼프를 직접 만나러 찾아갔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는 결국 보잉 CEO로부터 신형 에어포스원 비용을 40억 달러 미만으로 낮추겠다는 항복을 받아냈다. 보잉은 전체 매출(960억 달러)의 약 30%를 미 국방부 프로젝트에 의존하고 있어 트럼프의 압박을 무시할 수가 없다.

그런데 함께 왔던 록히드마틴 CEO로부터 이렇다할 답변을 듣지 못한 트럼프는 그 다음날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록히드마틴의 F-35 전투기가 너무 비싸, 경쟁사인 보잉에 F-18 슈퍼호넷 전투기의 견적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자신의 요구에 순순히 응하지 않은 록히드마틴을 길들이기 위한 협박이었다. 그러자 록히드마틴 주가는 시간외 거래에서 2% 급락했고 주주들은 또 다시 재산상 피해를 입었다.

트럼프의 압박에 에어컨 제조업체 캐리어(Carrier)는 1일(현지시간) 인디애나 주의 공장을 멕시코로 이전하려던 당초의 계획을 철회했다. 이에 대해 캐리어의 모회사인 유나이티드테크놀러지스(United Technologies)의 CEO는 트럼프의 요구를 듣지 않을 경우 후환이 두려웠다고 고백했다. 유나이티드테크놀러지스는 총 매출의 10%(560억 달러)를 미 국방부 사업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트럼프의 압력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는 6월 멕시코로 공장을 이전하려는 자동차제조사 포드에 "35%의 징벌적 관세를 매기겠다"고 경고한 바 있다. 포드는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되자마자 트럼프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켄터키 주 공장의 링컨 SUV 라인을 멕시코로 이전하려던 계획을 철회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민주당과 공화당의 주요 인사들은 “일자리 문제를 해결한다는 명분으로 민간기업을 압박하는 행위는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원칙을 무시한 행보”라고 지적했다. 심지어 트럼프의 지지자인 세라 페일린(Sarah Palin) 전 공화당 부통령 후보도 "자유기업체제(free enterprise system)를 사실상 절단하고 시장질서를 조작하는 행위"라고 전면 비판했다.

# "트럼프가 대통령 지위를 이용해 기업들을 압박하는 행위는 정말 염려할 문제다."

트럼프는 세금인하, 규제완화 등 친기업적 공약을 내서워 45대 대통령으로 당선됐다. 전통적으로 공화당 대통령들은 기업 친화적인 정책을 펴왔다. 더군다나 트럼프는 기업가 출신이라 더더욱 친기업 성향을 보일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오히려 반기업적 행위를 일삼으면서 업계와 정치권을 상당히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같은 트럼프의 대(對)기업 공격은 전형적인 '괴롭힘' 행위에 해당된다. 흔히 불링(bullying)이라 불리는 괴롭힘의 사전적 의미는 ‘강자의 약자에 대한 괴롭힘’으로, 학교에서는 보통 ‘따돌림’, '왕따' 등의 의미로 사용된다.

정치적으로 대통령은 자신의 권력과 지위를 이용해 특정 이슈에 대해 여론을 주도하고 영향력을 행사할 수는 있지만, 지금처럼 기업을 공갈과 협박으로 길들이려는 행위는 분명 도가 지나치다. 크레이머는 "트럼프 당선인이 여전히 친기업적(pro-business) 아젠다를 갖고 있다고 믿는다"면서도 이와 거리가 먼 행보를 보이는 트럼프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다.

대통령이라는 지위를 이용해 기업들을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쥐락펴락하려 한다는 비난에 트럼프는 "트위터 공격 등으로 기업을 압박하는 것이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한) 일종의 협상(negotiation)"라며 자신의 기업 때리기 행위를 정당화했다.

하지만 설득과 토의의 절차를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킬 목적으로 기업을 압박하고 심지어 공갈·협박을 서슴지 않는 행위는 저잣거리의 깡패들이나 하는 짓이지 대통령이 하는 정상적인 협상 기술은 아니다.

# "(돈 내라는) 청와대의 요청을 기업이 거절하기 어렵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7월 청와대로 대기업 총수 17명을 불러 미르·K스포츠재단 지원을 주문했다. 이어 따로 7명의 총수들을 불러 차례로 단독 면담을 갖고 대기업의 적극적인 참여를 특별히 독려했다. 그리고 3월 롯데그룹 신동빈회장을 다시 불러 75억원을 추가로 더 출연해 줄 것을 직접 요청했다.

이에 대기업들은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미르·K스포츠 두 재단에 800억원을 출연했고 롯데그룹은 추가로 70억원을 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대기업이 대통령에 삥 뜯겼다"고 표현했다.

6일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국정조사 1차 청문회에 불려온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재단 출연이 강요나 뇌물이냐"는 질문에 "그 당시엔 (돈 내라는) 청와대의 지시와 요청을 거절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고 진술했다.

15일 열린 4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이석수 전특별감찰관은 미르·K스포츠재단 기금모금과 관련해 재벌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내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증언했다. 박대통령이 대기업들을 압박해 재단에 강제로 출연하게 했다는 혐의는 검찰 공소장과 국회 탄핵소추안에도 그대로 나온다.

그러나 박대통령은 자신은 기업들에 강제로 재단출연을 요구하지 않았고, 대기업들이 자발적으로 기금모집에 참여했다고 항변했다. 그리고 미르·K스포츠재단 사업은 "국가 경제와 국민의 삶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바람에서 추진된 일"로 어디까지나 국가를 위한 통치행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국가를 위한 통치행위가 합당한 목적과 정상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는다면 청와대의 돈 내라는 요청은 조폭들이 자릿세를 뜯는 것과 하나도 다를 게 없다. 기업 삥 뜯는 일은 시정잡배들이나 하는 짓이지 대통령이 국가를 위한 공적인 사업으로 할 일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