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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집] 물정 모르는 여자 하나 꿰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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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7.02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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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7> 이재무 시인 ‘슬픔은 어깨로 운다’

[시인의 집] 물정 모르는 여자 하나 꿰차고
이재무의 신작 시집 ‘슬픔은 어깨로 운다’는 시인의 서정적 재능이 한껏 발휘된 시집이다. 시집의 곳곳마다 시편마다 비유와 상상이 재치가 있고 아름답고 의미가 깊다. 인용한 시 ‘정선 골짝에 들어’도 시인의 재치가 한껏 드러난다. 현실정치에 대해 사회적 관계망을 통해 열심히 반응하고 발언하는 시인은 시에서 화자를 통해 오탁아세의 세간사를 버리고 훌쩍 떠나고 싶다고 한다. 대부분 사람들의 마음을 시인이 읽어내고 있다.

이런 행위는 현실에서는 불가능하다. 시에서만이 가능한 일이다. 인류가 시를 버리지 않는 이유가 시의 이런 장점 때문이다. 화자는 정부에서 한 가계에까지 자본에 포섭되어 시시비비가 끝나지 않는 현재의 살림살이를 버리고 물정을 모르는 여자와 깊은 골짜기로 숨어들고 싶다고 한다. 경제 행위는 최소한의 생계를 위해 숯을 굽거나 산나물을 뜯고 장작을 패고 나물을 뜯는 것. 이런 원시적이고 일차적인 노동을 하면서 현재 박제된 인간의 본능을 회복하겠다고 한다.

충남 부여에서 출생한 시인은 1983년 ‘삶의 문학’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슬픔은 어깨로 운다’는 시인의 열한 번째 야심작이다. 시업에 속도를 늦추지 않고 부지런히 정진하여 윤동주 문학 대상,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한 명실상부한 중견 시인이다. 아래 시 ‘후생’은 시 ‘정선 골짝에 들어’와 현실에서 떠남과 떠돎이라는 주제적 측면에서 짝을 같이한다. 화자는 후생에라도 현재와 같은 삶을 살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현실 도피가 아닌 몰인간적 사회에 대한 적극적인 부정이다.

후생은 마도르스로 살아가리라
가정 같은 건 꾸미지 않으리라
각 나라 항구마다 안개처럼 나타나서
염문을 뿌리고 고양이처럼 사라지리라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고
바람처럼 떠돌다가 거품처럼 사라지리라

서너 개의 외국어를 익히고
아코디언 연주로 향수를 달래리
매일 아침 구두를 닦고 상아 파이프로 담배를 피우리

삶은 짧고 추억은 깊으니
오직 현재에만 몰두하리라
마음껏 아름답게 시간을 낭비하리라
- ‘후생’ 전문


화자는 다음 생에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고 싶다고 한다. 생활로 얽어매는 가정 같은 것은 버리고 마도로스가 되어 멀리 떠돌겠다고 한다. 인간의 본성을 말살하는 관습적인 윤리나 관념적 도덕률 같은 것은 발로 차 버리고 자기검열에서 벗어나 현재와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겠다고 한다.

누구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란 쉽지 않다. 시 ‘나는 벌써’에서 화자는 “삼십대 초에 오십대가 되면 일에서 벗어나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했지만, 벌써 육십이 되었으며 “칠십까지 일하고 여생은 꽃이나 뒤적”이며 보내겠다고 한다. 어쩌면 죽는 날까지 일을 멈추지 못하는 게 인간의 숙명일지도 모른다.

이재무의 비유는 재치와 의미와 깊이가 특장이다. 이번 시집에서도 여지없이 드러난다. 인생의 큰 문제인 생사를 다룬 시 ‘생사의 거리’에서 시인은 “숟가락 엎어놓으면/ 그 형상 무덤 같다/ 생사의 거리가/ 이만큼 가깝고 멀다/ 숟가락 엎는 날/ 죽음이 마중나오리라”는 유사성에서 얻은 비유와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의 거리가 삶과 죽음의 의미만큼 깊다.

시 ‘돈 사야’에서 새들에게 스카프를 사주고 들쥐에게 면양말을 사주겠다는 재치가 돋보인다. 골짜기의 물소리가 변성기 소년처럼 소리가 괄괄하다는 비유(‘아침 산책’), 지갑이 두툼해질수록 영혼이 여위어 간다는 역설(‘지갑에 대하여’), 고향과 어머니의 슬픔과 아버지의 한숨과 동생의 좌절과 바다나 강이나 구름 등 자연현상을 표절하였으므로 “나는 표절 시인이었네”(‘나는 표절 시인이었네’)라는 풍자가 내내 시집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 한다.

[시인의 집] 물정 모르는 여자 하나 꿰차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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