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속보
통합검색

17세 한국 소녀의 72년전 '원자폭탄 떨어지던 날'

머니투데이
  • 방윤영 기자
  • 카카오톡 공유하기
  • 카카오톡 나에게 전송하기
  • 페이스북
  • 트위터
  • 네이버
  • 카카오스토리
  • 텔레그램
  • 문자
  • VIEW 7,117
  • 2017.08.05 08:48
  • 글자크기조절
  • 댓글···

[일본 원자폭탄 투하 72주기] 히로시마 살던 한국인 피해자 이수용씨 이야기

일본 히로시마 원자폭탄 한국인 피해자 이수용씨(89) /사진=이수용씨 제공
일본 히로시마 원자폭탄 한국인 피해자 이수용씨(89) /사진=이수용씨 제공
1945년 8월6일 일본 히로시마의 월요일 아침은 유독 날씨가 화창했다. 거리에 일꾼들은 웃통을 벗고 일했다. 당시 저금사무를 담당하던 히로시마 저금국에서 일하던 이수용씨(89·여)는 출근길 구름 한 점 없던 날씨를 아직도 기억한다.

오전 8시 남짓 이씨는 직장에 도착해 2층 유리창 옆 사무실 책상에 앉았다. 그 순간 불이 번쩍하며 '쾅'하는 소리가 났다. 히로시마에 원자 폭탄이 떨어진 순간이었다. 이씨는 훈련 때 배운 것처럼 철모를 쓸 겨를도 없이 일단 책상 밑으로 숨었다.

그대로 혼절해 정신을 차려보니 사무실은 온통 피바다였다. 이씨 역시 얼굴은 물론 온 몸이 찢겼다. 유리창 파편이 얼굴과 몸 군데군데에 박혔다. 발등에는 큰 유리조각이 박혀 있었다. 건물 1층에 마련된 방공호에는 마을 주민들로 들어차 있었다. 아이들은 '오카상, 오카상'(엄마)을 부르짖었다.

이씨는 살아야겠다는 마음 하나로 전찻길을 따라 걸었다. 방금 전만 해도 맑던 하늘은 까만 구름에 가려졌고 검은 비가 내렸다. 뒤를 돌아보니 히로시마 시내는 온통 불바다였다.

"살기는 살았는데…" 이씨는 그저 막막한 마음에 하염없이 길을 걸었다. 걷다 보니 강둑이 나왔다. 부상자들이 우글우글 모여 있었다. 군부대에서 보낸 보트가 있었고 부상자들을 태워갔다. 이씨도 그 배를 타고 히로시마의 한 섬에 마련된 군부대로 이동했다.

하루 세 번 매실을 넣어 만든 죽을 먹고 간신히 기운을 차렸다. 제대로 된 치료는 받지 못하고 겨우 목숨만 부지했다. 5일 뒤 군부대 화물차를 타고 집에 도착했다. 어머니는 반쯤 정신이 나가 있었다. 이씨가 죽은 줄만 알고 지낸 까닭이다. 한국말로 '어머니'라고 부르니 한참 뒤에야 딸이 온 것을 알아차렸다.

작은 오빠는 이씨를 찾으러 직장에 가 성별도 구분이 안되는 시체 더미를 헤집었다고 했다. 참혹한 장면에 "이 정도면 (동생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마저 들었다고 했다.

이날 집에 있던 이씨 어머니와 작은 오빠는 무사했지만 일터에 나갔던 아버지는 한쪽 다리를 잃었다. 큰 오빠 역시 건물에 몸이 깔려 큰 부상을 입고 목숨만 건졌다. 당시 이씨는 겨우 17살이었다.

8월15일 일본이 항복하고 광복을 맞이한 이씨 가족은 그해 11월 한국에 들어왔다. 기댈 곳 없어 고향인 경북 고령에 있는 삼촌 댁에 머물렀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진 지 72년이 흘렀지만 이씨는 여전히 고통을 안고 살아간다. 왼쪽 발등에 유리조각이 박혔던 상처로 10㎝ 길이 흉터가 남았다. 후유증으로 발등은 아직도 퉁퉁 붓고 압박붕대를 감아야 겨우 걸을 수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이씨와 같이 원폭 피해를 입은 한국인은 현재 생존자만 2500여명 정도로 추정된다. 72년간 피폭(인체가 방사능에 노출됨) 후유증으로 이런저런 질환에 걸려 죽어간 사람들이나 원폭 당일 즉사한 한국인 피해자들은 그 규모를 가늠조차 어렵다.

원자폭탄이 떨어졌던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있던 한국인들 중에는 학도병이나 징용으로 끌려간 이들도 있다. 자발적으로 건너간 사람들도 대부분 먹고 살려고 애쓰던 평범한 이들이었다.

그러나 이들의 피해에 대한 관심과 지원은 상대적으로 부족했다. 치료비 등을 지원해주는 '한국 원자폭탄 피해자 지원을 위한 특별법 시행령'은 지난 5월 30일에서야 시행됐다.

그래도 대한적십자사가 1986년부터 원폭 피해자 총 2385명(올해 6월 기준)을 지원하고 있다. 일본에서 피폭자에게 연간 최대 14만5000엔(약 148만원)을 지급하는 원호수당 등 지원도 받도록 돕는다. 하지만 원호수당을 받기 위해 일본을 상대로 원폭 피해자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일이 쉽지 않다.

대한적십자사는 매년 원폭 피해자로 신고하지 않는 이들을 찾아가 더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씨의 경우 2008년부터 적십자사가 지원하는 '합천원폭피해자복지회관'에서 지내고 있다.

이씨는 "다 늙어서 언제 죽을지 모르지만 앞으로 살아갈 후세를 생각하면 핵이 없어져야 한다"며 "우리처럼 전쟁으로 피해를 입는 일이 없어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베스트클릭

오늘의 꿀팁

  • 날씨
  • 내일 뭐입지

많이 본 뉴스

MT 초성퀴즈

포토 / 영상

머니투데이 SERVI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