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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관광지"…슬픔 묻힌 군함도, 웃음소리만 가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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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가사키(일본)=남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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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08.30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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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2년…日관광객 북적, 정보센터 설치·강제 징용 인정 약속 안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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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위에서 바라본 군함도(왼쪽). 오른쪽 멀리 화장한 조선인 사망자들의 유해를 묻었던 나카노시마(中之島)섬이 보인다./사진=남궁민 기자
2015년 7월 5일 군함도(軍艦島·일본명 하시마섬)가 '메이지 일본의 산업혁명 유산'의 일부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등재를 두고 벌인 한일 양국의 줄다리기 끝에 일본은 '강제 노동'('Forced to work') 사실을 기재하고, 정보센터 등 피해자를 기리는 시설을 건립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등재 2년여가 지난 2017년 찾은 군함도에선 여전히 어떤 조선인의 흔적도, 추모의 공간도 존재하지 않았다.

군함도 공식 홍보책자 /사진=남궁민 기자
군함도 공식 홍보책자 /사진=남궁민 기자
군함도(일본명 하시마)의 역사를 소개하는 홍보책자 /사진=남궁민 기자
군함도(일본명 하시마)의 역사를 소개하는 홍보책자 /사진=남궁민 기자
20세기 초 군함도 생활을 소개한 군함도 홍보물. 당시 군함도의 안락한 생활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남궁민 기자
20세기 초 군함도 생활을 소개한 군함도 홍보물. 당시 군함도의 안락한 생활을 강조하고 있다. /사진=남궁민 기자
지난 21일 오전 8시. 군함도로 향하는 배가 출발하는 나가사키 항에 도착했다. 9시 첫 배가 뜨려면 한시간이나 남았지만 대합실엔 많은 방문객들이 모였다. 이들은 일본어로 된 군함도 설명 책자를 훑어보고 있었다. 안내책에는 군함도의 역사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사실이 적혀 있다. 강제징용과 희생자에 대한 언급은 없다. 한 켠에 위치한 기념품 가게에는 석탄을 본 뜬 과자, 군함도 티셔츠 등 관광상품이 진열돼 있었다.

◇군함도행 배는 '만선'…관광상품 된 군함도

군함도행 티켓을 사기 위해 줄을 선 방문객들./사진=남궁민 기자
군함도행 티켓을 사기 위해 줄을 선 방문객들./사진=남궁민 기자
오전 9시 창구 셔터가 올라가고 수십명의 방문객들이 줄을 섰다. 200여명의 승선 인원에도 불구하고 표는 순식간에 동이났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하루 4편 운행되는 다른 배편도 차례차례 '완판' 딱지가 붙었다. 대합실과 창구 앞을 가득 메운 방문객 대부분은 일본인. 외국인은 기자를 제외하면 2~3명뿐이었다. 특히 앳된 얼굴의 학생들이 북적댔다. 업체 관계자는 "방학을 맞아 일본 전국에서 학생들이 나가사키의 역사 유적지를 찾아온다"고 말했다.

나가사키항에서 판매중인 군함도 관련 기념품./사진=남궁민 기자
나가사키항에서 판매중인 군함도 관련 기념품./사진=남궁민 기자
군함도에서 채굴된 석탄을 본 딴 석탄모양 과자 기념품./사진=남궁민 기자
군함도에서 채굴된 석탄을 본 딴 석탄모양 과자 기념품./사진=남궁민 기자
◇자부심과 웃음소리만…'강제징용' 흔적 없어

멀리서 모습을 드러낸 군함도를 바라보는 방문객들./사진=남궁민 기자
멀리서 모습을 드러낸 군함도를 바라보는 방문객들./사진=남궁민 기자
"메이지시대 산업혁명의 심장, 엔진이었던 군함도가 왼편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항구를 떠난 배가 포말을 일으키며 달린지 20여분, 거뭇한 색깔에 각진 모습이 인상적인 군함도가 해무 사이로 모습을 드러냈다. 함장의 안내방송에 군함도행 마루베쟈호(マルベージャ)에 타있던 방문객들이 배 한 켠으로 몰려들었다. 군함도를 향해 카메라를 들이밀며 연신 탄성을 질렀다.

군함도에 있는 일본 최초의 고층 콘크리트 아파트./사진=남궁민 기자
군함도에 있는 일본 최초의 고층 콘크리트 아파트./사진=남궁민 기자
채굴 작업을 관리한 미쓰비시사의 당시 종합사무실 일부./사진=남궁민 기자
채굴 작업을 관리한 미쓰비시사의 당시 종합사무실 일부./사진=남궁민 기자
석탄 채굴 기지였던 군함도에서 사용된 석탄 채굴 시설./사진=남궁민 기자
석탄 채굴 기지였던 군함도에서 사용된 석탄 채굴 시설./사진=남궁민 기자
상륙하기 위해 천천히 섬에 다가서자 낡은 무채색 건물이 가득한 군함도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배가 섬 한편에 정박하고 200여명의 방문객들이 섬에 발을 디뎠다. 마이크폰을 멘 가이드를 따라 석탄채굴 시설이 보이는 곳에 모였다. 가이드를 따라 노무자들을 관리한 당시 종합사무실의 잔해, 고층 콘크리트 아파트 등을 둘러봤다.

가이드는 상기된 목소리로 "이곳은 당시 최고 시설을 갖춘 산업혁명시설"이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7층 콘크리트 건물 앞에서 가이드가 설명을 마치자 방문객들은 폐허를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기 위해 몰려 들었고 섬은 웃음소리와 셔터소리로 가득찼다.

콘크리트 건물 잔해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는 방문객들./사진=남궁민 기자
콘크리트 건물 잔해를 배경으로 기념 사진을 찍는 방문객들./사진=남궁민 기자
섬 곳곳엔 파칭코와 영화관 등 최신 시설 위치가 표시된 안내판이 있었지만 일본이 등재 당시 약속한 정보센터와 희생자 관련 자료는 찾아볼 수 없었다. 부모와 함께 군함도를 찾은 고등학생 아키에(17)는 "그 옛날에 이렇게 현대적 시설을 갖춘 곳이 있었다니 신기하다"며 "(군함도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돼 기쁘고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빗방울이 맺힌 창문 너머로 보이는 군함도. 조선인 징용 노동자들이 묵었던 숙소가 보인다./사진=남궁민 기자
빗방울이 맺힌 창문 너머로 보이는 군함도. 조선인 징용 노동자들이 묵었던 숙소가 보인다./사진=남궁민 기자
일본 시민단체 ‘나가사키 재일조선인의 인권을 지키는 모임’의 한 회원이 발견한 전쟁 당시 공문서(사망자의 정보를 담은 '화장인허증 하부 신청서')에 따르면 1925년부터 일본이 패전한 1945년까지 군함도에서 숨진 일본인은 1162명, 조선인 122명, 중국인 15명이다. 거주인구와 비교한 국적별 사망률(1945년 기준)은 일본, 조선, 중국이 각각 1.81%, 2.40%, 3.05%로 조선인과 중국인의 사망률이 일본인에 비해 30~70%가량 높다. 이 수치는 조선인과 중국인 노동자들이 일본인에 비해 더 열악한 환경에서 작업을 했다는 생존자들의 증언에 신빙성을 더한다.

새 전함을 건조하고 있는 미쓰비시 중공업 도크./사진=남궁민 기자
새 전함을 건조하고 있는 미쓰비시 중공업 도크./사진=남궁민 기자
전함이 정박중인 미쓰비시 중공업 도크./사진=남궁민 기자
전함이 정박중인 미쓰비시 중공업 도크./사진=남궁민 기자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던 중 나가사키항 한 켠에 미쓰비시(三菱)중공업의 마크가 새겨진 거대한 크레인이 눈에 들어왔다. 도크에는 두 척의 전함이 정박돼 있었고, 한 쪽에선 새로운 전함이 건조되고 있었다. 미쓰비시는 1890년 섬을 인수해 석탄채굴기지로 운영했고, 제로센(零戰) 등 전투기, 전함을 제작해 전쟁 수행에 앞장섰다. 전쟁 당시 강제 징용돼 미쓰비시 중공업을 비롯한 조선소에서 일한 조선인이 최소 1만여명에 이른다.

군함도 문제에 대해 외교부는 "일본 측이 2015년 7월 군함도 세계유산 등재가 논의될 당시 약속과 달리 가시적 후속조치를 내놓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며 "정부는 한·일 양자 채널은 물론 국제사회에서도 일본 정부의 성실한 약속 이행을 촉구해 나갈 계획"이라고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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