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드보이' 난립에 경고장 날린 최종구 금융위원장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정무위원회 금융위·금감원 종합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뉴스1

"그런 분들이 오실 우려가 있으면 그렇게 하겠다."

최종구 금융위원장이 30일 국회 정무위원회 종합국감에서 한 발언이다. '그런 분들'은 최근 금융협회장 후보에 거론되고 있는 이른바 '올드보이', 전직 고위 공직자 출신들을 말한다. '그렇게 하겠다'는 "대통령에게 직언하겠다"는 말이었다.


금융협회장을 대통령이 임명하는 자리가 아닌만큼 실제로 대통령에게 직언하지는 않겠지만 금융협회장에게 오래전 퇴직한 고위 관료 출신들이 대거 하마평에 오르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뜻을 드러낸 것으로 해석된다. 본인에게 까마득히 높은 선배들을 상대로 금융협회장에 나서지 말라고 경고를 날린 셈이다.

최 위원장의 발언은 국감에서 최운열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최근 금융협회장 하마평의 문제를 지적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최 의원은 "금융협회장 하마평을 보면서 제 눈과 귀를 의심하고 있다"며 "거론되는 분들 중에는 이십몇년 전에 금융수장을 했던 분들도 있다"고 지적했다.

손보협회장에는 김용덕 전 금융감독위원장, 방영민 전 서울보증보험 사장, 유관우 전 금융감독원 부원장보 등 관료출신들이 후보로 거론되다 김 전 금감위원장이 단독 후보로 추천됐다.


은행연합회장 후보에는 홍재형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 신상훈 전 신한금융지주 사장, 윤용로 전 기업은행장, 김창록 전 산업은행 총재 등이 거론되고 있다. 신 전 사장을 제외하고는 모두 관료 출신이다. 앞으로 협회장 선출이 예정돼 있는 생명보험협회장, 금융투자협회장 등에도 관료 출신이 올 가능성이 높다는게 금융권의 관측이다.

그는 "(그분들이) 아무리 역량이 뛰어나도 지금 시대에 맞는 역할을 할까. 그 선배들이 계시는데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이 (협회의 요구에) 과연 노(No)라고 할 수 있을까"라고 비판했다. 최 위원장이 사무관 시절에 부총리, 장관, 국장하던 인사들이 금융협회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상황을 지적한 얘기다. 최 의원은 "보이지 않는 손은 분명히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며 "그런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 의원은 이어 최 위원장에게 "도저히 이런 분들이 오면 일을 할 수 없다고 (대통령에게) 진언을 하시라"고 말했고 최 위원장은 "그런 분들이 오실 우려가 있다면 그렇게 하겠다"고 답했다. 듣기에 따라선 민간협회장 인선에 금융당국이 개입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는 발언이었지만 최 위원장은 거침없이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다. 같은 취지의 김관영 국민의당 의원 질의에는 "금융협회가 연령, 경력 등을 감안해 적임자를 선출할 것으로 본다"고 답했다.

이는 최근 금융협회장 인선 과정에 대한 금융당국 내부의 분위기가 그대로 드러났다는 평가다. 실제로 금융당국 내에서는 "참여정부 시절 고위 공직에 있었거나 대선 당시 문재인 후보 캠프에 있던 인사들이라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다"는 불만들이 터져 나오고 있다. 특히 전직 관료 출신들끼리 협회장 자리를 놓고 경쟁하면서 "자기들끼리 교통정리도 못하고 창피하다"는 반응까지 나온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금융위원장의 선배가 협회장을 맡는 경우 협회가 금융당국과 협의할 사안이 있으면 실무진을 건너 뛰고 곧바로 위원장에게 가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전직 금융당국 고위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누구를 협회장에 앉힐 힘은 없지만 누가 협회장이 되는 것을 막을 수는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