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적·경기·유동성' 3박자에 춤춘 글로벌 증시…최고가 경신 잇따라

세계 증시는 올해 세계 금융위기 이후 최고의 한 해를 보냈다. 기업 실적 개선과 경기 회복, 중앙은행으로부터의 풍부한 유동성까지 3박자가 갖춰지면서 주요 증시가 가파른 상승세를 나타냈다. 다만 증시가 너무 오르면서 고평가 우려가 나오기 시작했다. 북한 도발 등 지정학적 위험과 중앙은행의 긴축 움직임도 주가 하락으로 이어질 변수로 지적됐다.


27일(현지시각) 월스트리트저널(WSJ) 조사에 따르면 시가총액 기준 세계 35대 주가지수 중 17개가 올해 사상 최고 기록을 다시 세웠다. 세계 금융위기 발생 직전인 2007년 이후 가장 많은 수준이다.

미국 뉴욕증시에서는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올해 만 60번이나 최고 기록을 경신했다. 1995년 이래 가장 많았다. 기술주 중심의 나스닥은 올해 69차례나 최고 기록을 갈아치우며 28% 상승했다. 뛰었다.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 500지수도 지난 24일 사상 처음으로 2600선을 넘었다. 최고가는 올해 55번 바뀌었다.

한국 코스피와 영국 FTSE100지수와 올해 많이 오른 주가지수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도발, 영국은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라는 지정학적 불확실성을 극복했다. 인도 증시도 경제 성장에 대한 자신감이 반영되며 신흥국 증시 중 가장 큰 상승 폭을 기록했다.

글로벌 주가지수 산출 기관인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이 집계하는 MSCI 세계지수는 지난해 11월 30일 1712.09에서 이달 24일 2059.54로 20% 넘게 올랐다. 월간 기준 지난해 11월부터 이달까지 12개월 연속 올랐는데, 지난 30년간 없었던 일이다.


최고가 경신에 실패한 증시도 두드러진 상승세를 나타내긴 마찬가지였다. 일본 닛케이225지수가 대표적이다. 지난 7일 2만2937.60으로 2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홍콩 항셍지수도 2007년 말 이후 십 년 만에 지난주 3만 선을 돌파했다. 대만의 자취안지수(Taiex)도 1990년 이후 27년 만에 최고치를 달성했다.

WSJ은 “시장 변동성이 역대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투자자들이 증시의 거의 모든 조정 구간을 매수 기회로 활용했다”며 “투자자들이 기업의 실적 증가, 경기 회복, 풍부한 유동성의 정점에 글로벌 증시의 강세가 자리한다고 여긴다”고 설명했다.


글로벌 증시 상승세를 지탱하는 가장 큰 버팀목은 경기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달 세계 경제성장률 전망을 올해 3.6%, 내년 3.7%로 각각 제시했다. 모두 이전 전망보다 10%가량 향상된 수치다. 독일 도이체방크의 토르스텐 슬록 연구원은 "올해 경기가 침체한 나라는 2007년 이래 가장 적은 13곳뿐 "2021년에는 침체 국이 역대 최소인 3개까지 줄어들 전망"이라고 말했다.

낮은 변동성도 안심하고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이 되고 있다. UBS자산운용의 에린 브라운 자산배분 부문 대표는 "1990년 이래 MSCI 세계지수는 43차례의 조정 기간을 거쳤고, 대부분 직전 상승 폭의 10%가량 하락했다"면서 "하지만 (월가의 공포지수로 불리는) 시카고옵션거래소의 변동성지수(VIX)가 15 이하로 낮을 때는 단 한 번도 조정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전했다. VIX는 지난 24일 9.67을 나타냈다.

글로벌 증시가 너무 많이 오르면서 급락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특히 고평가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미국 S&P500지수의 ‘경기조정주가수익률’(CAPE ratio)은 31을 넘어서,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 때와 비슷한 수준으로 올랐다. CAPE ratio 올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로버트 세일러 예일대 교수가 고안한 지표로 높을수록 증시가 과열 상태라는 것을 보여준다.

뱅크오브아메리카-메릴린치가 지난달 펀드매니저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에서도 48%가 “현재 증시가 고평가됐다”고 응답했다. 1999년 조사 시작 이래 가장 높은 수준이었다.

WSJ은 "미국과 북한 사이의 지정학적 위험이 여전하다"며 "일본은행(BOJ), 유럽중앙은행(ECB) 등도 지나친 유동성을 공급했다"고 지적했다.

조나선 고럽 크레디트스위스 미국증시 전략가는 "증시의 낮은 변동성은 고평가와 일치한다"면서 "극단적으로 은밀해진 경기 위험과 좁혀진 신용스프레드(자금 조달 비용 차이)가 시장의 변동성을 낮게 유지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낮은 변동성이 주가 상승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