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해도 '과로사회'…퇴근 뒤 독서실서 공시 공부

2017년도 지방공무원 7급 공채시험을 이틀 앞둔 9월21일 오후 서울 노량진의 한 공무원 학원에서 취업준비생들이 공부를 하고 있다./사진=뉴스1

#대기업에 다니는 3년차 사원 김성원씨(가명·31)는 직장 동료들에게 말 못할 비밀이 하나 있다. 바로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것. 입사 초기부터 성과평가 S, A를 받을 만큼 능력을 인정받는 김씨가 공무원이 되려 하는 이유는 숨가쁜 경쟁과 과로에 지쳤기 때문이다. 밤 9~10시까지 이어지는 야근에 오전 7시까지 출근하느라 사생활도 없다. 김씨는 "회사에서 과장·차장·부장의 모습을 보며 저게 내 미래라 생각하니 숨이 막혔다"며 "경쟁이 덜하고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오늘도 퇴근 후 독서실로 향했다.

공시(공무원 시험) 열풍이 거세지면서 공시가 인재들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개인의 적성에 따라 사회 각 분야에 청년들이 배치돼야 하는데 안정성 등을 이유로 인재들이 공직사회로만 쏠린다는 지적이다.


22일 머니투데이가 직장인 5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응답자 중 37명(74%)이 "기회가 주어진다면 공무원이 되고 싶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중 35명(94%)은 "여건이 안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응답했다. 실제 준비를 하는 직장인은 2명(6%)으로 나타났다.

공무원을 희망하는 직장인 중 30명(81%)은 "직장을 잘 다니고 있다"고 답했다. 공무원 희망 직장인 중 17명(56%)은 "입사 후 현재까지 성과 평가가 높은 편"이라고 답했다. 성과가 좋고 직장 생활에 무리가 없는 '인재'임에도 공무원 이직을 생각해 본 적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공직사회의 직업 안정성을 주요 이유로 꼽았다.

대기업 직장인 한모씨(35)는 "매 분기마다 성과 평가, 승진 경쟁에 시달리는 것에 지쳤다"며 "공무원이 되면 정년이 비교적 보장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중소기업 직장인 김윤철씨(32)도 "공무원은 권고사직 등에서 민간기업보다 안정적인 것 같다"며 "요즘은 오래 다니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말했다.


근무 환경이 나은 점을 장점으로 여기는 경우도 있었다. 대기업 직장인 이선민씨(29)는 "공무원이 보수는 적지만 삶의 질이 더 낫다"며 "공무원인 친구들도 대부분 만족한다. 상대적으로 여유 있는 것 같아 부럽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행정연구원의 '행정에 관한 국민인식 조사'에 따르면 신분보장에 있어서 공무원과 민간기업 직장인을 비교했을 때 '공무원이 유리하다'는 응답이 76.2%, '후생복지에 있어 공무원이 낫다'는 응답이 66%에 달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 10월 발표한 바에 따르면 공무원이 일반기업 직원에 비해 퇴직할 때까지 벌어들이는 돈이 최대 7억8058만원 많은 것으로 조사되기도 했다.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하듯 민간경력자들의 공시 열풍도 거세지고 있다. 올해 국가공무원 5·7급 민간경력자 일괄채용시험의 응시원서 접수 결과 5급은 32.4대1, 7급은 38.7대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국방부의 전산사무관(전산개발 1명)의 경우 199명의 지원자가 몰려 199대1의 높은 경쟁률을 보이기도 했다. 신입 채용시험에 못지 않은 높은 경쟁률이다.

2013년 대기업에 취업했다가 1년 만에 그만둔 뒤 7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지난해 합격한 서모씨(28)는 "장기적으로 봤을 때 공무원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퇴사해 2년 동안 준비했다"며 "과정이 힘들긴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이 같은 공시 열풍이 민간기업으로 와야할 인재들을 빨아들여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약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한 취업전문가는 "똑똑하고 재능 있는 친구들이 현실적인 이유로 공시를 선택하는 경우를 많이 봤다"며 "민간기업, 전문직, 벤처기업 창업, 자영업 등 적재적소에 인재가 배치돼야 하는데 무조건적인 쏠림 현상이 있는 것 같아 안타깝고 우려스럽다"고 답했다.

반면 공직사회 경쟁력을 강화시킬 것이라는 긍정론도 있다. 정부 부처 과장급 공무원 김모씨는 "공직사회의 순환 보직 관행 등으로 전문가들이 많이 부족해 민간 인재들이 아직도 많이 필요하다"며 "공무원에 대한 관심이 경쟁력을 높여줄 것이라고 본다"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