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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 관람 박용만 회장 "나는 무지했고 비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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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정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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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1.08 1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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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에 '1987' 감상평… "민주주의 희생한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대한상의) 회장이 영화 '1987'을 보고 장문의 글을 남겼다. 공식 입장이 아닌, 개인으로서 느낀 소회이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기업인이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한 이들에게 전하는 헌사의 울림이 깊다.

박회장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통해 소소한 개인사는 물론 한국 사회의 다양한 현상들에 대한 의견을 솔직하게 개진해왔다. 재계를 대표하는 기업가로서 쉽지 않은 소통의 장이기에, 이를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언론도 일종의 불문율처럼 기사화를 거의 하지 않았다. 본인도 기사 자제를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 회장이 '1987'에 대해 담담하게 써 내려간 원고지 7매 분량의 글은 그 시대를 겪어낸 선배이자, 민주화의 한켠에서 경제성장의 축을 지탱해온 기업인으로서 사회에 던지는 무게가 남다르다는 점에서 이를 소개한다.

박 회장은 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1987년의 봄'에 대해 "늦봄 박종철이 가고 연이어 이한열이 세상을 떠났다. 한편으로는 답답하고 분개하기도 했지만 당시 내게는 일이 전부였다"고 기억을 떠올렸다. 그 때 그는 서울 중구 을지로 입구에 있는 롯데호텔 맞은편에 있는 오비맥주 경리부에서 일 할 당시였다.

박 회장은 "그렇게 일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고 의심의 여지없이 믿었다"며 "광주의 일이며 오늘 영화(1987)에서 본 그 시대의 어처구니없는 짓거리들에 대한 진상과 분노는 한참의 세월이 더 지난 후에야 내 의식 속으로 파고 들어왔다"고 토로했다.

박회장의 의식 속에 파고 든 중요한 존재가 고(故)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더불어민주당의 전신) 상임고문이다. 박회장은 "김근태 형과의 만남은 부당한 권력의 폭력에 대한 분노가 내게도 가까운 일일 수 있음을 알려주었고, 그냥 습관 같이 익숙한 민주주의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새롭게 생각하게 해주었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지난해 12월 고 김근태 전 상임고문의 6주기 추도행사에 참석해 추모사를 직접 낭독한 바 있다. 고 김근태 전 상임고문은 박 회장의 경기고 선배다. 학창시절 때부터 알고 지낸 사이는 아니지만, 김 전 상임고문이 2005년 박 회장(당시 두산그룹 부회장)의 장남 서원 씨의 혼주석에 앉을 정도로 인연이 각별해졌다고 한다.

이렇게 김 전 상임고문을 기억한 박 회장은 영화 '남영동 1985'를 언급하며 "슬픔이나 분노 같은 감정보다는 그냥 내 자신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회한이 남는다. 그 사건들이 일어난 시간들 속에서 나는 무지했고 비겁했다"고 고백했다. SNS 공간이라고 하지만, 대기업 총수 출신이자 전국 17만 상공인을 대변하는 대한상의의 수장으로서 쉽지 않은 자기고백이다.

그는 "대통령과 함께 경제사절단 자격으로 해외를 순방할 때마다 당당할 수 있었던 것은 눈부신 경제성장도 있지만, 우리 민중의 손으로 민주주의를 이뤘기 때문"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박 회장은 "타민족의 침략과 지배 그리고 이어진 독재로부터 수없는 비극을 딛고 일어서 민주주의를 우리 손으로 이룬 것은 기적 이상의 자랑"이라면서 "민주주의를 이루는 길에 자신을 희생한 수많은 분들께 우리는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해야한다"고 마무리했다.

다음은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의 페이스북 글 전문.

다니던 외환은행에 사표를 내고 임신 8개월의 아내와 서울을 떠난 것이 79년 초여름이었다. 그 후 미국-사우디-미국-동경의 외국 생활을 끝내고 86년 12월에 귀국을 했다. 그 시간 동안 10.26 사건 12.12 그리고 광주의 5월이 있었다. 86년 말 7년 만에 귀국한 서울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

87년 봄 나는 을지로 입구 롯데호텔 맞은 편 건물에 있는 오비맥주 경리부에서 일을 했다. 늦 봄 박종철이 가고 연이어 이한열이 세상을 떠났다. 매일이 사무실 주변은 전쟁터였다. 학생들은 어떻게든 시청 앞이나 광화문으로 모이고자 했고, 헬멧을 쓴 체포조는 곤봉을 들고 뒤쫓았다. 사무실에서 창으로 눈만 돌리면 그 모든 아수라장이 눈에 들어왔다. 한편으로는 답답하고 분개하기도 했지만 당시 내게는 일이 전부였다. 그렇게 일에 집중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이라고 의심의 여지없이 믿었다. 서울을 떠난 그 7년의 시간 동안에 내 나라에서 일어난 많은 일들은 그냥 이미 지나간 사건들로만 기억 속에 남았었다. 광주의 일이며 오늘 영화에서 본 그 시대의 어처구니없는 짓거리들에 대한 진상과 분노는 한참의 세월이 더 지난 후에야 내 의식 속으로 파고 들어왔다.

돌아가신 김근태 형과의 만남은 부당한 권력의 폭력에 대한 분노가 내게도 가까운 일일 수 있음을 알려주었고, 그냥 습관 같이 익숙한 민주주의라는 단어에 대해서도 새롭게 생각하게 해주었다.

조금 더 일찍 알았으면...
생각 없이 사는 무뇌아 같은 언행을 훨씬 줄였을 텐데...
하며 겸연쩍어했다.

몇 해 전에 본 “부러진 화살”과 “남영동 1985” 그리고 오늘의 “1987”
이런 영화들을 보고 나면 예외 없이 가슴이 답답해진다. 슬픔이나 분노 같은 감정보다는 그냥 내 자신에 대한 솔직한 인정과 회한이 남는다. 그 사건들이 일어난 시간들 속에서 나는 무지했고 비겁했다.

이제 와서 회한과 자책이 있다한들 뭘 어찌할 수는 없다. 이 담에 오늘을 되돌아보는 날이 왔을 때, 지금 갖는 회한을 그 때도 또 느끼지는 말아야하지 않겠나. 그렇게 바르게 살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할뿐이다.

대통령 순방을 따라 외국에 가면 만나는 그 나라의 사람들 앞에서 늘 당당할 수 있는 이유는 경제적 성공 때문이 아니다. 물론 전례가 없는 경제적 성공이 자랑스러운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국가와 사회의 품격은 경제적 부만으로는 이룰 수 없다. 타민족의 침략과 지배 그리고 이어진 독재로부터 수없는 비극을 딛고 일어서 민주주의를 우리 손으로 이룬 것은 기적 이상의 자랑이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그렇게 쟁취한 민주주의의 증거이며 상징이다. 그래서 어느 나라를 가도 늘 당당할 수 있다. 민주주의를 이루는 길에 자신을 희생한 수많은 분들께 우리는 진심으로 고개 숙여 감사해야한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사진제공=대한상의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사진제공=대한상의

※ 이 기사는 빠르고 깊이있는 분석정보를 전하는 VIP 머니투데이(vip.mt.co.kr)에 2018년 1월 8일 (18:58)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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