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회사가 왜 '스마트 글라스'를 만들었을까

/이노션이 만든 '스마트 드라이빙 선글라스' / 사진제공=이노션

#. 도로를 주행하던 자동차가 터널에 진입하자 선글라스가 일반 안경 렌즈처럼 바뀐다. 검은 렌즈가 밝게 변하는데 든 시간은 1초 남짓. 터널을 빠져나오자 렌즈 색상은 다시 복원됐다. 자동 조도 맞춤 기능이 있는 렌즈 덕분이다. BMW, 포드사의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든 이 ‘스마트 드라이빙 선글라스’를 만든 곳은 광고회사 이노션 (22,250원 ▼150 -0.67%)이다.

#. 도너츠 가게 앞을 지나던 A씨가 발걸음을 멈췄다. 선물로 받은 모바일 쿠폰이 떠올랐다. A씨는 쿠폰으로 살 수 있는 수량에 더해 몇 개를 추가로 산 뒤 매장을 나왔다. 롯데그룹이 전사적으로 추진하는 옴니채널의 형태다. 옴니채널은 모바이 쿠폰 등 온라인을 통해 오프라인 매장으로 고객을 연결해주는 개념이다. 모바일 쿠폰 서비스 ‘기프티엘’ 사업은 그룹 광고 계열사 대홍기획이 맡고 있다.


광고업계가 변하고 있다. 기존 전통적인 광고 마케팅 크리에이터 역할을 벗어나 데이터와 인공지능(AI), 가상·증강현실(VR·AR) 등 신기술을 접목한 IT(정보기술) 트렌드 주도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스마트 글라스' 내놓는 이노션·‘광고회사’ 타이틀 뺀 대홍기획=이노션의 스마트 글라스 개발은 지난해 1월 넥스트캠페인X팀을 꾸리면서 시작됐다. 콘텐츠 기획자, 엔지니어 등 10명으로 구성된 이 팀의 전신은 VR솔루션팀. 처음에는 VR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꾸려진 팀이었지만 연구를 거듭하면서 특정 기술에 국한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광고주가 의뢰한 콘텐츠가 아닌 독자적으로 사업화할 수 있는 아이템을 만들자는 목표를 세웠다.

그렇게 나온 게 ‘스마트 드라이빙 선글라스’다. 기존 스마트 글라스보다 착용하기 편하고 기능도 혁신적이다. 안경 다리마다 각기 다른 스마트 기능이 탑재돼 있어 운전자들이 필요에 따라 선택해 착용할 수 있다. 가령, 장거리 운전 시, 졸음운전 방지 지원 안경다리를 골라 착용하면 안경다리 내 내장된 센서 모듈이 생체정보를 인식한 뒤 졸음 위험이 감지되면 진동을 울린다. 1월 미국 CES2018을 찾은 해외 완성차업체들로부터 기술, 기획력 모두를 충족하는 제품으로 평가받은 이 안경은 곧 국내에서도 출시할 예정이다.

/대홍기획 모바일 쿠폰 서비스 '기프티엘' /사진제공=대홍기획

대홍기획이 만든 ‘기프티엘’은 단순히 온라인에서 물건을 사는 쿠폰이 아니다. 사용하려면 반드시 매장을 찾게 만든 기프티엘은 온라인에서 오프라인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쌓은 데이터와 위치 정보 등을 다시 온·오프라인 마케팅에 반영한다. 2014년 출시된 이후 꾸준히 성장해 지난해 600억원 매출을 올린 효자템이 됐다. 규모나 효과 측면에서 대기업 광고주 영입과 비등한 수준이다. 대홍기획은 지난해부터 ‘광고회사’라는 문구 대신 ‘마케팅솔루션컴퍼니’로 회사를 소개하고 있다. 기프티엘 매출도 연내 1000억원대로 확대하겠다는 목표다.

◇글로벌 광고시장은 이미 변화 중=글로벌 광고업계도 IT 신기술과 마케팅을 접목하는 시도가 활발하다. 미국 광고기획사 RGA는 광고주인 나이키와 손잡고 제품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 블루투스를 이용해 보행 수, 칼로리 소모량 등의 정보를 제공하는 스마트 기기 ‘나이키 퓨얼밴드’의 상품 기획은 물론 기술까지 모두 RGA가 나이키에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퍼블리시스그룹은 올해부터 칸을 비롯 모든 국제광고제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퍼블리시스는 업계 최초로 마이크로소프트(MS)와 손잡고 AI 기반 플랫폼인 ‘마르셀(Marcel)’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수천만 달러를 들려 광고제에 출품하는 대신 마르셀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겠다고 선언했다.

백현정 이노션 넥스트캠페인X팀 부장은 “광고회사는 시대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리드해야 하는 역할이 있다”며 “당장 돈이 되지 않는 데이터 분석, AI 등의 분야에 광고업계가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이유”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