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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각의 나라' 이탈리아서 25년…'열정'은 '죽음'도 넘어서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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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영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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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8.04.28 05: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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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조각가 박은선, 단돈 300만원들고 伊 유학…25년간 오직 작품만 몰두, 전 세계서 초청 전시

지난 21일 '아트부산 2018'이 열린 벡스코(BEXCO) 전시장에서 만난 박은선 작가/사진=배영윤 기자
지난 21일 '아트부산 2018'이 열린 벡스코(BEXCO) 전시장에서 만난 박은선 작가/사진=배영윤 기자
스위스 루가노, 프랑스 라볼르, 이탈리아 피렌체 피티궁, 미켈란젤로 광장, 룩셈부르크 에스페랑주 공원, 이탈리아 피사국제공항…

조각가 박은선(사진·53)의 작품들이 전시됐던 곳이다. 유럽 각국의 대표적 명소, 역사 깊은 유적지, 유명 미술관, 세계적 관광도시의 공항 등으로부터 쉴 새 없이 전시 초청을 받는 한국인 작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천재 예술가' 미켈란젤로의 나라 이탈리아에서 25년간 동양인이 겪어야 했던 설움과 외로움, 작품에 대한 고민과 두려움을 정면으로 부딪히며 작업에만 몰두한 지난날에 대한 성과다.

지난 21일 '아트부산 2018'이 열리는 있는 부산 벡스코(BEXCO)에서 그를 만났다. 그는 아트부산 특별전 작가로 초대받았다. 벡스코 앞 드넓은 야외 광장에 그의 대형 대리석 조각 작품 8점이 전시됐다. 벡스코 광장에 들어서는 관람객들이 가장 먼저 마주하는 작품인 셈.

지난 21일 '아트부산 2018'이 열린 부산 해운대구에 위치한 벡스코(BEXCO) 전경. 야외 광장에는 박은선 조각가의 대형 대리석 조각 8점이 전시돼 있다./사진=배영윤 기자
지난 21일 '아트부산 2018'이 열린 부산 해운대구에 위치한 벡스코(BEXCO) 전경. 야외 광장에는 박은선 조각가의 대형 대리석 조각 8점이 전시돼 있다./사진=배영윤 기자
"그동안 유럽에서 전시를 많이 했지만 이번 특별전을 준비하면서 고민한 것은 '부산 시민들과 어떤 교감을 할 수 있을까'였어요. 이미 만들어져있는 작품이지만 조각은 어디에 어떻게 놓이냐에 따라 느낌이 달라지거든요. 낮고 볼륨이 있는 사각형의 조각을 가운데 두고 기둥 형상 조각 7점을 주변에 둥글게 배치했죠. 그리스 고대 신전이나 로마의 경기장에 들어오는 듯한 분위기가 나도록 했습니다. 아트부산이 예술품을 감상하는 경건한 곳인 동시에 각 갤러리들이 작품 판매를 위해 고군분투하는 치열한 현장이기도 하잖아요."

경희대 미대와 이탈리아 카라라 국립아카데미를 졸업한 박은선 작가는 최고급 대리석 산지로 유명한 카라라 인근 피에트라산타에 작업실을 두고 25년간 작품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두 가지 색의 대리석을 자르고 붙이고, 중간에 의도적으로 균열을 만든다. 이같은 작업으로 만든 원형, 사각형 등 덩어리를 반복적으로 이어붙여 기하학적 형태를 완성한다. 밝은 색과 어두운 색, 매끄럽고 거친 면 등 상반된 색·표면을 한 작품에 담아내면서 인간의 이중성과 순수성의 변질 등 메시지를 전한다. 그만의 독창적인 작업은 서양 모더니즘의 추상조각과 차별화되는 '동양적 추상조각'이라는 호평을 받았고 이내 전 세계가 주목하는 작가로 올라섰다.

그는 1993년 대학 졸업 후 단돈 300만원만 들고 유학을 떠났다. '조각 변방국' 한국에서 온 청년이 전 세계 내로라하는 조각가들이 모여드는 이탈리아에서 자리잡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엔 한국이 어디에 붙어있는 나라인지도 모를 때였다. 조각 한번 제대로 하겠다 큰맘 먹고 떠나왔지만
녹록지 않았다.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며 매일 쉬지 않고 돌을 깎았다.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 산타고스티노 교회 일대에 박은선 작가 작품이 전시된 모습/사진제공=박은선 작가
이탈리아 피에트라산타 산타고스티노 교회 일대에 박은선 작가 작품이 전시된 모습/사진제공=박은선 작가
"열정이 없었다면 중간에 힘들고 배고플 때 그만 뒀을 겁니다. 한국이라면 부모님, 선생님, 선배들 찾아가 부탁도 할 수 있고 작업에 대한 조언도 구할 수 있을텐데 그럴 상황이 아니었죠. '내가 이렇게 무능한 사람이었나'하는 생각에 '죽음'이란 단어를 떠올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열정'이 '죽음'이란 단어를 뛰어 넘더군요. 열정은 25년간 단 한번도 배신하지 않고 지금의 저를 만들어줬다고 생각합니다."

그만의 독창적인 기법은 외로움 속에서도 끊임없이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얻은 해답을 그대로 따랐다. 박 작가는 "작품 활동을 통해 부와 영화를 누리고 싶어하는 욕구가 내 안에 있다는 걸 발견했다"며 "욕심이 커지기 시작하면 작품을 망치게 돼, 그런 생각을 억누르고 위해 애썼다"고 말했다. 이어 "노력을 한다해도 사실 마음 한 구석에 늘 그런 생각이 떠나질 않더라"며 "내 안에 있는 이중성, 기쁨과 증오 등 상반된 감정이 끊임없이 교차하며 살아가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작품으로 끌어내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1일 '아트부산 2018'이 열린 벡스코(BEXCO) 전시장 내부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옆에 서 있는 박은선 작가/사진=배영윤 기자
지난 21일 '아트부산 2018'이 열린 벡스코(BEXCO) 전시장 내부에 전시된 자신의 작품 옆에 서 있는 박은선 작가/사진=배영윤 기자
작품으로서 인정받기 전까지 작가들과 교류도 일체 하지 않았다. 공부를 위해 유적지나 미술관 등을 찾은 적은 많았지만 자신을 알리기 위해 먼저 나선 적은 없었다.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작업장에 틀어박혀 있었다. 작업 중에 누가 찾아오는 것도 싫었다. 돌로 하는 작업은 시간에 비례하기 때문에 그만큼 작업 시간이 뺏기는 걸 참을 수 없었다. 자신의 시간을 온전히 작품에만 쏟아부으니 주변에서 먼저 그의 작품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현실과 타협않고 '정석'대로 쌓은 성공의 탑은 남들보다 오래걸렸지만 훨씬 단단했다.

조각의 재료로 자연석인 대리석을 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박 작가는 "요즘 젊은 사람들은 가공된 재료 속에 둘러쌓여 살아가는데 그런 재료들은 처음엔 매력적이지만 시간이 지나면 거부감이 들고 바꾸고 싶어진다"며 "가공되지 않은 순수함, 처음 모습 그대로 변치 않는 것, 봐도봐도 지겹지 않은 돌이 좋았다"고 말했다. 그의 작품이 오래된 유적지나 최신식 건물이 들어선 대도시를 막론하고 '원래 그 자리에 있었던 것' 같다는 평을 받는 이유는 자연 그대로의 재료와 기둥·원형·사각형 등 단순한 형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다음달 중순부터 서울에서 개인전도 연다. 이탈리아에서 컨테이너 5개로 50여점의 작품을 들여왔다. 유럽서 활발히 활동한 데 비해 한국에서 여는 개인전은 9년만이다. 박 작가는 "9년 전에 비해 나 자신도 성장했고, 한국 미술 시장도 많이 달라졌다"며 "이번 개인전을 시작으로 앞으로 한국에서도 다양한 작품 활동을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에 유명한 작가들이 많지만 요즘 한국 작가들 작품 역시 그에 못지 않다고 생각해요. 다만 시장을 못찾았을 뿐이죠.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말고 자신감을 갖고 해외로 적극적으로 진출한다면 한국에서도 세계적인 작가가 더 많이 나올 수 있을 겁니다."

이탈리아 미켈란젤로 광장에 박은선 작가 작품들 전시된 모습/사진제공=박은선 작가
이탈리아 미켈란젤로 광장에 박은선 작가 작품들 전시된 모습/사진제공=박은선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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